이십대 초반 첫 직장에서 맘고생한 뒤 깨끗하게 사표써버리고 들어간 곳은 어느 대기업이었습니다.
그 때 한창 구조조정이다 뭐다해서 여직원이 많이 없을 때 였는데 제가 55명 남직원 가운데 홍일 점이었습니다. 부서 하나가 한 층을 쓰고 있어서 55명 남성들과 저 매일 얼굴 마주치며 살아야했습니다.
그 전까지는 나이가 좀 있는 언니가 있었는데 술잘드시고 호탕한 아주 맘에 쏙드는 스탈이었다고 사람들이 그러더군여..
첫회식 날 고민했습니다. 들어오자 마자 귀엽다고 밥도 사주시고 과자도 사주시고 힘든일도 안시키시고 등등 모든 배려를 아끼지 않으셨던 분들이어서 얼굴을 나름데로 익혔는데 회식날 저에게 술잔이 안온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겠죠..
뭐.. 나름데로 머리썼습니다.
일단 약국에서 겔포스 한봉먹구 술이 잘안취한다는 약 사먹었습니다. 몰래....
서서히 술이 돌아가는데 이거 참 55명이 순서대로 소주병들고와서 한잔씩 따르더이다.
그래도 아가라고 반잔씩 주시더이다. 다 마셨습니다.
경악의 박수가 나오더군여... 술을 정말 잘마신다고...어떻게 된 애가 취하지도 않는다고...
재밌으셨는지 너도나도 오셔서 주시더이다. 시험삼아 취하는지 안취하는지 주시더이다.
담날..저 속탈난척했습니다. 화장을 안하니 효과 만점이더군요....
화장실가서 아래위로 좔좔했다고..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더니.. 다들 미안해 하더군요..
속푸는 약도 사다주시고....일인분에 만오천원인가 하는 복어요리도 사주셨습니다.
그래도 안쓰러우셨는지....여러가지 해장 비결도 알려주시더군여..아이스크림, 커피, 라면...
오후 4시부터 사무실에서 나와서 얻어 먹으러 다녔습니다. 차례대로...
워낙 남자들이 많은 부서라 해장의 내공도 다년간 축척되있더군여..
담에 회식때는 고기집가서 자리에 앉자 마자 밥시켰습니다. 된장찌계...40분동안 밥알 세가며 먹었습니다.
답답해진 차장님 아니 술 한잔 해야지...하시길래...
제가 저번 술자리에서 속을 워낙 버려서 밥을 먹고 속을 보호한 후 마셔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밥먹을 땐 아무도 안건드리더군여..
40분후에 모든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취해서 제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더군여...젭싸게 가방들고 귀가했습니다.
그치만 시간이 흐르니 점차 약발이 떨어지더군여...
그래서 작전을 바꾸었습니다.
식당 냉장고를 들여다보고 그 집에 없는 술을 시켰습니다. 백세주...
그 술 없다고 하길래 그 술 아님 못먹겠다고했습니다. 속을 워낙 버려놔서 소주는 못먹겠다구여..
이제 스킨냄세, 소주냄새만 맏아도 구역질난다고 하면서 시범한번 보여드렸더니...많이 미안해 하시더군여..
2차로 맥주 마시자고 하셔서 맥주집에 가서 500 한잔을 씹어 마시고 있었더니..
옆자리에 근무하던 계장님... 선물할게 있다고 주머니에서 뭘꺼내시더군여
내가 먹던 백세주.. 일부러 뚜껑 버렸던 그 백세주를 휴지로 뚜껑 만들어서 품고 오셨더군여...
네가 백세주 남겨서 아까웠다고.. 가게까지 뛰어가서 사왔는뎅... 하시면서..
정성에 감복해서 한잔햇죠.
뭐 그뒤로도 여러가지 방법을 썼습니다.
사람이 많으니 상이 많다는 걸 착안 여기저기 돌아다녀 내 존재를 희미하게 만들기...
퇴근 시간 맞추어 학원 끊기...
토해서 옷버려주기...등등...
그치만 지금도 느끼는게 술자리에서 술 적게 마시는 법은 천천히 마시는거 밖에 없더군여... 남들 취할때까지 천천히...그럼 나름데로 두세잔 마시고도 분위기 봐서 탈출할 수 있더군여..
가끔 후배들에게 그럼니다. 쎈척하지말고 약먹고 마시라고요... 남는건 건강뿐이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