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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 花[설화] . . . [2]

悲... |2006.02.21 16:18
조회 1,145 |추천 0

[2] . . .



눈처럼 하얀 의사 까운을 깔끔하게 차려입은 중년의 남자가 자신과 똑같은 얼굴을 가지고 있는 젊은 남자에게 명령하듯 낮은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만 들어오너라. 너무 오래 밖으로 돌았어. 병원으로 오라 소리는 하지 않으마, 그러니 집으로라도 들어와. 네 어머니도 너때문에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시다."

 

결코 편안해 보이지 않는 젊은 남자의 얼굴이 중년 남자의 입에서 너무도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어머니'라는 말에 한층더 딱딱하게 굳어가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얼굴이 아버지 한박사의 눈엔 보이지 않는것일까? 무섭도록 무심한 얼굴로 태진의 대답을 재촉하고 있었다.

 

"네 어머니도 그만큼 했으면 되었어. 언제까지 그렇게 소 닭보듯 하며 살 생각인게야."

 

"……."

 

태진은 아버지의 물음에 이번에도 역시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돌처럼 굳어버린 그의 표정이 아직은 아버지를 이해할수 없노라 대답하고 있었다.

그런 아들의 표정을 바라보는 아버지 한박사의 입맛은 지독히도 씁쓸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해 얽혀버린 아들과의 관계였다. 오랜시간 정성을 들여 한올한올 풀어보려 애쓰지 않은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철옹성처럼 단단히 마음의 빗장을 걸어버린 자신의 고집쟁이 아들은 얽혀버린 실타래를 끓어안고 좀처럼 자신에게 내어주려 하지 않았다.

한박사는 고집스레 자신과 마주보길 거부하고 있는 아들 태진을 향해 아까까지와는 달리 조용한 어조로 얘기했다.

 

"태진아, 나를 조금만 이해해다오. 하늘에 있는 네 어미도 너와 내가 이렇게 사는걸 바라지는 않으실게야. 내 잘못은 부정하지 않으마. 허나,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 하였어. 이제그만 네 어미는 잊거라."

 

"……!"

 

'잊거라….' 무심한듯 던져진 그 한마디가 태진의 귓속을 울리고 가슴을 적신다.

무엇을 이해하고 무엇을 잊어야 하는 것일까? 탐스럽게 피어나 조금은 추(醜)하게 져버리는목련꽃 처럼 그렇게 내 어머니를 잊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그렇게 져버린 가지에 또다시 녹색의 싱그러운 잎사귀가 돋아나듯이 그렇게 새로운 어머니를 받아들어야 하는 것인가? 태진은 정리되지 않은 복잡한 얼굴로 아버지를 응시했다. 그리고 너무도 쉽게 잊으라 말하고 있는 아버지를 향해 그또한 조용한 어조로 대답했다.

 

"내 어머니를 잊고 아버지를 이해할 때가 오겠지요.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아버지를 용서하기엔 제 가슴에 남은 상처가 아직은 너무나 크고 아픕니다. 그 상처가 아물어 새 살이 돋아 날때쯤 아버지도 그리고 집에 계신 그분도 진심으로 받아 들이겠습니다."

 

그럴수 없이 평온하고 담담하지만 얼음처럼 냉정한 목소리로, 남자의 아픔이 가슴으로 느껴지지만 선뜻 다가가 쓰다듬어 줄수 없을 만큼의 거리를 두고 태진이 다시한번 입을 열었다.

 

"늘 당당했던 아버지를 항상 자랑스러워 하고 존경 했습니다. 하지만 제 어머니가 폐암 말기 선고를 받고 수술하던날 그 날을 전 아직도 잊을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아버지가 집도 하리라 생각했던 어머니의 수술은 아버지의 부제로 인해 다른이에게 맡겨졌고 어머니가 힘겨운 수술을 견뎌내고 있던 그시간 아버지는 다른 여자의 품에 안겨 웃음짓고 계셨어요. 아버지를 사랑하고 사랑한다던 어머니는 마지막 길을 떠나던 그날도 당신을 져버린 아버지를 사랑한다 했습니다. 어머니는… 내 어머니는 그렇게 쓸쓸히 홀로 세상을 떠나셨어요. 전 아직도 그분의 마지막 모습을 잊을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십년넘게 한번도 소리내어 말한적 없었던, 자신의 가슴속 깊숙히 품고 있던 아버지를 향한 분노였고 원망이었다.

태진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미련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냉정히 돌아선 그의 넓은 등뒤로 후욱- 하고 마른 한숨을 들이쉬는 아버지의 떨리는 음성이 들려 왔지만 태진은 끝내 돌아보지 않았다. 그리고 처음 들어왔을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히 문을 열고 그곳을 빠져나왔다.


'아직도 나는 자라지 못한 것인가?'

 

아무런 생명력 없이 딱딱하게만 느껴지는 병원의 건물을 올려다 보며 태진은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나는 아직도 자라지 못한 것인가….' 그래, 어쩌면 그는 이미 대답을 알고 있는지도 몰랐다.

그것을 느끼는 순간 태진의 얼굴엔 한없이 쓸쓸한 미소가 퍼지고 있었다.

나 스스로 자라고 싶지 않은 것이겠지. 이젠 자신의 기억에서 조차 희미해져 가는 그옛날, 쓸쓸히 어머니의 마지막 임종을 지키던 그때부터 그는 더이상 자라기를 거부했다.


병원의 하얀 시트보더 더 하얗고 창백했던 어머니의 얼굴…. 마지막 생명이 빠져 나가듯 조금씩 조금씩 차가워져 가던 어머니의 바짝 말라버린 손을 잡고있었을때 뼈속까지 시려왔었던 절망감…. 그리고 하나의 신앙 같았던 어머니를 잃는다는 그 두려움을 아버지는 모르리라!


당신이 가려하는 마지막 길에 그토록 사랑하는 아버지의 얼굴을 스치듯이 한번만이라도 보고싶어 하시던 어머니의 애처로웠던 눈동자를… 병색 짙은 뺨위로 흘러내리던 데일듯이 뜨거웠던 그 서러운 눈물을… 아버지는 모르리라!


미칠듯한 슬픔에, 이미 싸늘히 식어버린 어머니의 야윈 손을 차마 놓지 못하고 당신이 그토록 소원하는 아버지의 얼굴이라도 보고 떠나시라 소리지르며 오열하던 그 가슴 아픔을 아버지는 절대로 모르리라!


어머니의 임종을 알리기위해 떨리는 손을 애써 가누며 받지않는 아버지의 휴대폰 번호를 누르고 누르고 또 누르며, 전화를 받지않는 그 횟수가 더해지는 만큼 태진의 가슴에 쌓여갔던 아버지를 향한 증오와 배신감을 아버지는 절대로, 절대로 모르리라!


아마도 그래서 였을 것이다.

흰머리가 히끗히끗하게 자라고 어느새 이마와 눈가에 주름이 깊게 패여가는 아버지의 얼굴에 나타나는 흐르는 세월을 느끼면서도 그는 눈을감고 바라보려 하지 않았다. 조금씩 아물어 가고 퇴색되어 가는 상처에 스스로 새로운 생채기를 만들어 가며 아버지에 대한 원망을,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끝끝내 놓아주려 하지 않았다.

태진은 눈이 시리도록 맑은 하늘을 조금은 우울한 시선으로 올려다 보며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았다.

당신이 평생을 사랑했던 아버지를 전 단 한순간도 사랑할수가 없습니다.

그런 저에게 어머니도 아버지를 용서하라 하실 겁니까?

세월이 흐른만큼 이젠 저도 당신을 내 마음 밖으로 밀어내야 하는겁니까?

어머니, 그래야 하는 겁니까!

그러나…. 

태진의 물음에 파란 즙이 뚝뚝 떨어질것만 같은 푸른하늘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펄떡이는 심장이 태진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그의 몸속에서 끝임없이 들끓고 있는 더운 피가 소리치고 있었다. 아직은 그럴수 없노라고….

태진은 하염없이 바라보던 하늘에 의미를 알수없는 희미한 미소를 지어보이곤 이내 고개를 돌렸다.

이젠 돌아가야할 시간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실력있는 의사를 꿈꾸던 이곳, 중앙병원이 과거 자신의 모든것 이었다면, 최고의 마케팅 전략가를 꿈꾸고 있는 대한그룹은 그의 미래이고 전부이다. 이제 자신이

있어야 할곳은 절대로 이곳이 아닌 것이다.

태진은 긴 다리를 움직여 조금쯤 빠른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때 아직은 차가운 3월의 바람을 타고 얇은 담요하나가 그의 발치에 떨어졌다.

그는 자신의 발치에 떨어진 분홍색 담요를 주워들고 주인을 찾기위해 주위를 살폈다. 그런 태진을 향해 환자복을 입은 한 여자가 답답하도록 느린 걸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타박타박 조금씩 가까이 다가오는 여자…. 이상하게도 태진은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여자에

게서 눈을 뗄수가 없었다. 어디에선가 본듯한 그녀, 무언가에 상처받아 아프게 웅크리고 있는 슬픔의 나무같은 이여자가 태진은 왠지 낮설지 않았다. 그렇게 여자를 기억해 내려 애쓰고 있는 사이 어느새 여자는 그의 시야에 꽉 잡힐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금새 부서져 내릴것 같은 가녀린 여자가 태진의 큰 손에 들려있던 담요를 건네 받자 희미하게 웃음지으며 무섭도록 정중하게 인사 해왔다.

 

"감사합니다."

 

그순간….

 

"아…."

 

태진의 기억속에 자리잡고 있던 눈앞의 여자와의 첫만남을 기억해 냈다.



몇달전 그는 친구 선우의 부탁으로 한 카페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약속시간 보다 조금 일찍 카페에 도착한 태진은 창가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웨이터에게 따뜻한 커피를 주문하고 습관처럼 주위를 둘러봤다. 그때 태진의 눈속으로 낮선 여인의 눈동자가 스며들어와 그의 눈동자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여자는 소리없이 울고있었다. 굳게 닫혀있는 카페의 문을 바라보며 누군가가 저 문을 열고 들어오길 간절히 바라는 눈빛으로…. 여자는 그렇게 소리도 없이 서럽게 서럽게 울고 있었다.

무엇일까? 그순간 태진의 심장이 거세게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랜시간 그 낮선 여인을 바라보고 바라보고 또 바라봤다.

이상하게도 그녀에게서 나무 냄새가 전해져 왔다. 뼈속까지 얼어버리게 만드는 매서운 눈보라가 치는 숲속에 홀로버려진 외로운 나무… 그녀의 외로움이, 혹은 알수없는 절망감이 태진에게 까지 느껴지는것만 같았다. 아마도 그래서 였을 것이다. 태진은 한번의 주저함도 없이자리에서 일어나 울고있는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처음 보는 그녀에게 손수건을 내밀었다.

 

"닦으세요."

 

갑작스런 태진의 등장에 여자는 당황한듯 했지만 이내 자리에서 일어나 무섭도록 예의바르게 얘기했다.

 

"고맙습니다. 하지만 사양 할께요."

 

여자는 그 한마디만을 남긴채 뒤돌아 카페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태진은 여자가 나가버린문을 한동안 무언가에 홀린듯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여자의 가늘게 떨리던 작은 어깨가, 아픔이 담겨져 있던 까만 눈동자가 그의 가슴에 오랫동안 남겨질 것만 같았다.



나무…. 

 

하얀 눈꽃을 가득 안고 있는…

 

눈부시게 아름답지만 한없이 차가운 설화(雪花)….

 

태진은 그렇게 눈앞의 여자를 기억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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