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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 花[설화] . . . [8]

悲... |2006.02.25 09:36
조회 1,280 |추천 0

 

[8] . . .

 

 

 

 

째깍째깍, 저녁 아홉시를 향해 규칙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시계바늘 소리가 60평 넓은 거실안을 공허하게 떠다니고 있었고 마치 그곳엔 시계소리 이외에 아무런 소리도 존재하지 않는듯 해보였다. 그렇게 고요하기만한 거실엔 단아한 아름다움을 가진 여자가 고급스러운 쇼파에 인형처럼 앉아있었다. 여자의 눈동자는 자신의 무릎위에 올려진 책속에 고정되어 있었지만 몇시간째 책장은 단 한장도 넘어가지 않고 있었다.
깊은 생각에 잠긴듯 조금의 흔들림도 없던 여자의 맑은 눈동자가 잊었던 일을 생각해 낸듯 단 한줄도 읽어내지 못한 책에서 눈을떼고 시계를 바라봤다.

 

"당신, 오늘도 늦을건가요?"

 

여자는 넓은 거실 한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 자신의 결혼사진을 바라보며 슬프게 중얼거렸다.
국내에서 손꼽히는 유명 사진작가에게 찍은 여자의 결혼사진은 어느곳 하나 흠잡을수 없을만큼 훌륭했다. 하지만 그 속에서 아름답게 미소짓고 있는 남자의 눈동자엔 여자를 향한 사랑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와 반대로 남자의 품에 안겨 고운 얼굴가득 행복한 웃음 짓고있는 여자의 눈동자엔 남자를 향한 끝없는 사랑이 조금의 거짓도 없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그런 남자와의 결혼생활 2년째….
남자의 다정한 몸짓에도, 자신을 향한 깍듯한 배려에도, 아무리 바빠도 기념일 만은 잊지않고 챙겨주는 세심함에도 여자는 외로웠다. 그저 부부라는 이름으로 함께 하기에 당연히 해야하는 의무를 이행하는듯한 남자의 행동이 여자는 못내 서운했다. 그런 남자에게 진심으로 사랑해 달라고, 당신의 가슴속으로 온전히 들여보내 달라고 소리내어 투정부리지도 못하는 자신의 용기없음이 답답했다.

처음….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나간 저녁식사 자리에서 여자는 남자를 만났다. 스물다섯, 이미 사랑이란 감정을 알고있는 나이였던 여자에게 남자는 하나의 운명처럼 혹은 거부할수 없는 이끌림으로 그렇게 성큼 다가와 버렸다.
그만그만한 집안끼리의 만남 이후 양가에선 자연스럽게 두사람의 결혼이야기가 오고갔고 남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너무나 당연한듯 자신과의 결혼을 받아들였다. 그런 남자를 보며 여자는 남자도 자신과 같은 마음일 것이라는걸 조금도 의심하지 않은채 곱디 고운 사랑을 키워가고 있었다. 하지만… 여자의 빛깔고운 사랑은 남자의 말 한마디로 인해 산산히 부숴져 버리고 말았다.


'서현씨와의 결혼생활, 저 최선을 다할겁니다. 하지만 내게 그이상의 것은 기대하지 말았으면 합니다.'

 

그렇게… 너무도 담담한 얼굴로 그럴수 없이 조용한 목소리로 남자는 서현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는 상처를 남겼다.
그날 서현은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은 암담함을 느껴야 했다. 하지만 이미 사랑해버린 남자를 자신의 가슴에서 차마 밀쳐낼수 없어서 그리하곤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너무도 당당히 사랑은 줄수없다 말하는 남자를 끝끝내 선택하고 말았다. 아무리 그리 말했어도 한집에서 서로 정붙이고 맨살을 비비며 살다보면 서현은 남자의 마음도 얻을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자신이 노력하고 인내하면 굳게 닫아놓은 사랑의 문을 열어줄것이라 믿었기에 서현은 행복했었다.
하지만…. 남자의 마음을 얻기위해 끝임없이 노력하는 그녀를 남자는 돌아봐 주지 않았다. 한번도 사람냄새 나는 눈빛으로 바라봐주지 않았고 온전히 사랑받지 못하여 아파하는 여자를 단 한번도 따뜻한 손길로 다독여주지 않았다. 그런 남자를….

 

"무슨 생각을 하길래 사람이 들어오는 지도 몰라?"

 

"……!"

 

사랑하고 사랑하고 사랑한다.

 

"왜 그렇게 놀래? 못볼것 본 사람처럼, 어디아파?"

 

어느새 서현의 곁으로 다가온 성민이 걱정스러운듯 자신의 차가운 손을 들어 하얗게 사색이 되어있는 여자의 이마를 짚어주었다. 자신의 이마에 와닫는 성민의 손길에 서현은 열여덜 어린 소녀처럼 괜스레 설레고 가슴이 뛰었다.

 

"아프긴요, 저 안아파요…."

 

서현의 곁에 서있는 성민에게서 차가운 바람내음과 함께 옅은 위스키 향이 전해져왔다.

 

"언제왔어요? 기척이라도 좀 하지 놀랐잖아요. 회사에서 바로 오는거에요? 저녁은요? 나 당신이랑 저녁 같이 먹으려고 여태 기다렸는데…. "

 

오늘 저녁도 함께 식사를 하긴 틀렸다는걸 여자는 이미 알고있었지만 조금만 이라도 그와 함께하고 싶은 욕심에 여자의 입에선 두서없는 말들이 끝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미안해서 어쩌지? 당신 혼자 먹어야 겠다. 일이 좀 남아서 서재에 있을께 기다리지 말고 당신 먼저 자."

 

같은 공간에 함께 있지만 언제나 자신만의 울타리 안에서 나오려 하지도 그 어떤 누구도 들여보내주려 하지도 않는 얼음같은 남자는 여자에게 그 어떤 이유도 설명해주지  않은채 또다시 자기만의 공간으로 몸을 숨겼다.
'당신이 몸을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당신에게서 떨려져 나온 거겠지….' 서현은 이미 돌아선 성민의 넓은 등을 바라보며 왈칵 쏟아질것만 같은 울을음 삼켜내고 있었다. 그렇게 여자는 또다시 홀로 남겨졌고, 닫혀진 서재의 문을 향해있는 여자의 서러운 눈동자는 또다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
.
.

 

창넓은 서재의 방안으로 은은한 달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 달빛을 벗삼아 성민은 불조차 켜지 않은채 조금의 미동도 없이 앉아있었다.
[어디로 간다는 얘기도 없이 꼭 만나야 할 사람이 있다며 떠났어요. 떠난지 일주일이 다 되어 가는데 연락 한번이 없네요.]
찬미의 부제에대한 설명을 들을수 있을거라 생각하고 몇번의 망설임 끝에 찾아간 미경의 가게에서 성민은 결국 원하던 대답을 듣지 못했고, 그로인해 하루종일 아무것도 할수없을 정도로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했다.
언제나 한결같이 자신이 원할땐 곁에 있어주던 찬미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처럼,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절대로 볼수없는 그림자처럼 늘 자신의 주변에서 따뜻한 기운을 느끼게 해줬던 그녀였다.

 

돈은 줄수 있어도 영원히 함께할수 있다는 약속은 해줄수 없다 단호히 잘라 말하던 자신에게 그녀가 울며 매달리면 혹여 자신이 힘들어 질까봐 금방이라도 쏟아질듯한 눈물을 아픈 가슴으로 참아가며 애써 말간 웃음을 지어 보이던 찬미였다.

 

찬미에게 만나자 약속해도 다른 약속이 생겨 그녀에게 미처 알리지 못해 연락이 없는 자신을 한번의 투정도 없이 매번 참아내 주던 착한 찬미였다. 그렇게 늘 자신의 주위에, 그의 손이 닫는곳에 찬미가 있었기에 단 한번도 그녀를 소중희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 누구도 성민에게 서현과의 결혼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저 성민 자신의 필요에 의해 서현과의 결혼을 선택했고 그는 후회하지 않았었다. 그때도 성민은 단 한번의 변명도 조금의 죄책감도 없이 찬미가 아닌 다른 여자와의 결혼을 통보했었다. 자신에 대한 찬미의 깊은 사랑을 알면서도 그의 결혼에 생살을 찢으며 아파할 그녀라는걸 알면서도 성민은 냉담했었고 너무도 당당하게 자신이 결혼한 후에도 만날것을 강요했었다.
그러면 않되는 거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하던 찬미의 모든 말과 행동을 무시해 버렸었다. 그로인해 아파하고 괴로워할 그녀를 위해 당연히 놓아주어야 했지만 성민은 용납하지 않았었다. 그 고통 또한 자신의 몫이 아니었기에….

 

혹여 가정이 있는 성민에게 누가될까 두려워 삼년동안 그 작은 가슴속 깊이 묻어 두었을 한마디, 단 한번도 자신에게 사랑한다 말하지 않았던 찬미의 입에서 꿈인듯 단 한번 들었던 그 한마디 '사랑해요…. 당신을 사랑해요….'  그것은 그에게도 어쩔수 없는 사랑이었다. 절대로 사랑은 아니리라 다짐했던 그의 모든 것을 한번에 흔들어 버리고, 정직한 자신의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럼에도 사랑은 아니라며 자신의 눈앞에서 질척거리지 말고 죽어 없어지라 말하던 그의 잔인함 앞에서도 끝까지 자신을 사랑해 주던 찬미…. 그 진한 사랑을 끝끝내 인정하지 않았던 오만한 그의 마음은 찬미의 마지막 안녕으로 무너져 버렸다.

그의 말대로 자신의 눈앞에서 완벽하게 사라져 버린 지금 이순간 그는 찬미가 너무도 그리웠다. 가슴에 사묻히게 보고 싶었다. 그녀가 없인 숨조차 마음대로 쉴수 없을것만 같았다.
'찬미야…. 나의 찬미야….'
차마 입밖으로 소리내어 부르지 못한 그 애틋한 이름 하나에 힘없이 감겨진 성민의 눈속으로 꽃처럼 웃음짓는 찬미의 모습이 떠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 매일 내게서 등돌려 나가는 당신 넓은 등에 대고 마음속으로 매일 같이 소리쳤어요. 돌아올 대답이 없다는거 뻔히 알면서도 사랑한다고… 사랑한다고… 현관문을 닫고 나가기전 당신이 나를 바라보며 사랑한다 말해 줄것 같아서 당신이 돌아가고 나서도 땅속깊이 뿌리내린 나무처럼 몇시간씩 문앞에 서있곤 했어요. 」
데일듯 뜨거운 눈물을 참아가며 한번도 소리내어 말하지 못했던 자신에 대한 감정을 힘겹게 털어놓던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의 가슴을 울리는 분명한 목소리에 감겨져 있던 성민의 눈동자가 아찔하도록 짙은 푸른빛 을 뿜어내고 있었다.

 

온 세상을 이잡듯 뒤져서라도 널 찾아낸다!

 

나에게 오지 않겠다면 네 날개를 부러뜨려서 라도 내곁에 잡아둘꺼야!

 

이것이 널 죽이는 일이 된다 하여도!

 

내가 살아 숨쉬기 위해서!

 

반드시 내곁에 너여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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