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통 잠을 못잔 탓에
종일 꾸벅꾸벅 졸았습니다.
말하다 말고 조는 바람에 잠꼬대를 해서
사람들한테 헛소리도 많이 했다는....
아무튼 충분한 수면이 중요합니다.
========================== 과도한 수면이 아닙니다 =============================
연출 - 김군아~ 안주 떨어졌다! 고기 좀 더 구워봐!
김군 - 예이~. 어라?
연출 - 응? 왜 그래?
김군 - 고기 다 떨어졌는데요.
이틀 째 밤.
준비한 고기가 다 떨어졌다.
처음 세운 생존 계획에 따르면
남은 고기는 눈 속에 상하지 않게 보관해 뒀다가
조금씩 먹을 계획이었지만
회계와 연출 모두 술김에 잊어버렸던 듯.
연출 - 우리 이제 뭐 먹고 사냐?
회계 - ...... 라면하고 통조림.
여기서 나온 라면과 통조림은
오전에 식량탐사대원들이 창고에서 찾아낸 것으로
상표도 들어본 적 없는 희귀한 것들이 많았으나
유통기한이 아직 남아있어서
고립기간 동안의 비상식량으로 쓰기로 했다.
통조림의 내용물은 스위트콘, 황도 등 제법 다양한 편이다.
연출 - 넌 라면에 스위트콘 넣어 먹냐?
회계 - 뭐 나야 자취를 하니까.... 보통 그 정도는...
연출 - 난 그렇게는 못 살아.
회계
- 고립 되어있는 이상은 어쩔 수 없잖아.
서로 의지하면서 적응해가는 수밖엔....
뒤늦게 다시 진지 모드로 돌아온 회계는
차분한 말투로 연출을 설득했지만
이미 입구를 잘못 들어선 마당에
그런 표리부동한 주장이 먹힐 리가 없었다.
연출 - 시끄러! 내일 날이 밝으면 사냥을 떠난다!
이건 또 무슨 빈대떡 굽다가 외양간 터지는 소린가?
사람들은 휘둥그런 눈으로 연출을 돌아봤지만
그의 확고한 신념은 변할 줄 몰랐다.
박군 - ..... 재밌겠는데?
회계 - 자급자족, 수렵생활! 오! 그런 방법이 있었구나!
오히려 그의 추종자들만 늘어났을 뿐....
내일 일정은 이미 결정 난 듯 하다.
다음날 아침.
연출 - 제군들! 준비되었나!
연출을 선두로 한 사냥꾼 부대가 결성되었다.
참가자는 나, 김씨, 허씨, 어깨, 덩치, 회계, 김군...
박군은 아직 매몰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다.
연출 - 산이 이정도면 노루나 꿩 같은 것도 있지 않을까?
회계 - 그런 거 잡으면 불법 아냐?
연출
- 뭐 그렇다고 해도,
뼈까지 싹 발라먹으면 누가 어떻게 알 거야?
이 사람들은 지금 맨 손으로
노루나 꿩을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가...
폭설로 가뜩이나 먹이가 부족한 산 속에서
멧돼지나 늑대한테 걸리지만 않아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산을 오르기를 한 시간여.
우리의 우선적인 목표는 토끼 포획 이었다.
아무 성과 없이 험난하기만 한 원정길에
‘과연 다람쥐 한 마리라도 잡을 수 있을까’
라는 회의감마저 들 무렵
김군이 뭔가 발견한 듯 소리쳤다.
김군 - 저깄다!!
‘타타탓!’
회계 - 븅신아! 소리를 지르면 어떡하냐?!
연출 - 닥치고 달려!
한 시간 반 만에 드디어 목표 발견.
김군의 목소리에 놀라 도망가는 토끼를
우린 필사적으로 쫓아 달렸다.
김씨 - 우하하하! 저 토끼는 내가 잡는다!
허씨 - 누구 마음대로!
‘파파파파파팟!’
벌써부터 멀찌감치 앞서가는 김씨와 허씨.
대체 어떻게 하면 이 눈 속에서
저렇게 빨리 달릴 수 있는 걸까?
여기 저기 뻗어 나온 잔가지를 헤치고
눈길에 미끄러져가며 토끼를 쫓아 달리던 중
우연찮게 토끼의 바로 앞까지 접근한 김군.
김군 - 우오오오! 커헉?!
‘퍼억, 털썩.....’
다시 오지 않을 듯한 럭키 찬스에
앞 뒤 안 보고 속도를 내던 김군은
딱 목 높이 정도에 가로질러 있는 나뭇가지에 걸려
벌러덩 쓰러져 버렸다.
회계 - 저런 븅딱!
그렇게 김군의 시체(?)를 버려둔 채
추격을 계속해가는 사람들.
김씨 - 몰아 몰아!!
허씨 - 그쪽으로 간다!
어느새 사방을 에워싼 사람들로 인해
토끼는 좁은 공간을 맴돌며
아슬아슬하게 포획의 손길을 피해 다녔다.
덩치 - 으랏차!!
하늘을 나는 한 마리 돼지처럼
토끼를 압사시킬 기세로 육중한 몸을 날리는 덩치.
하지만 그는 바로 앞에 있던 나무 둥치에 머리를 받고
힘없이 바닥에 떨어졌다.
‘꿍....푸스스스스....’
나무 위에 쌓여있던 눈이 쏟아지면서
덩치는 눈 깜짝할 사이에 눈 속으로 사라졌다.
덩치 - 푸하학.... 헥....헥....
한참 후에야 눈 밖으로 고개를 내민 덩치는
체력의 한계에 다다른 듯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허씨 - 내리막길로 몰아! 토끼는 내리막길에서 느려!
김씨 - 왼쪽으로 가! 오른쪽은 내가 맡는다!
나름대로 과학적인 상식을 바탕으로
토끼를 내리막으로 몰아 세우자
과연 녀석의 움직임은 한 결 둔화되었다.
어깨 - 으라차차!!
입고 있던 잠바를 넓게 펼쳐 들고
날렵하게 몸을 던진 어깨.
하지만 토끼는 반대편으로 뛰어 그의 공격을 피했고
그는 그 기세 그대로
잠바를 썰매 삼아 내리막길 아래로 사라졌다.
어깨 - 으아아아아아아~!!!
좌좌좌좌좌좌좌좌좌....
왠지... 따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왤까.
김군, 덩치, 어깨가 무리에서 이탈되고
이제 몇 남지 않은 사냥꾼 집단.
하지만 셋이 떨어져나간 뒤에도
전력에 별 변동은 없는 듯 하다.
김씨 - 기억아! 그쪽으로 간다!
허씨 - 오리알 까면 죽는다!!
잠깐 정신을 놓고 있는 사이
어느새 내리막길로 모는 포위망 에서 벗어나
위를 향해 빠르게 올라오고 있는 토끼.
이리저리 방향을 바꾸며 달려오는 토끼를 보는 순간
내 뇌리엔 방금 전 눈에 묻혔던 덩치의 모습이 스쳤고
난 앞에 있는 나무 기둥을 발로 힘껏 내질렀다.
‘부스스스.... 쿠르르르르!!’
머리 위로 쏟아지는 엄청난 양의 눈.
베개 같은 물건으로 끊임없이 두드려 맞는 것 같은 충격에
일순 눈앞이 아찔해지면서
난 순식간에 눈 속에 매몰되어 버렸다.
덩치... 네가 봤던 광경은 이런 거였냐?!
기억 - 푸하!!
잠시 후 눈 밖으로 힘들게 고개를 내밀었을 때
난 바로 앞 눈 밑에서 달싹거리고 있는
토끼를 발견할 수 있었다.
기억 - 캐치!!
연출 - 오오오오!!
곧 눈을 뚫고 나온 토끼의 귀를 낚아채면서
20여분의 사투는 끝이 났다.
어느새 다시 언덕길을 올라온 어깨와
기운을 차린 덩치를 부축하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
계속해서 흩날리는 눈발로 인해
거의 지워져 버린 발자취를 힘들게 더듬어 가던 중
설원 한가운데 있는 봉긋한 눈무덤이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회계 - .... 저건 뭐냐?
연출 - 그냥 바위에 눈 덮인 거 아냐?
회계 - 올 때도 저런 게 있었나?
연출 - 글쎄... 아무튼 모양 묘하게 생겼네.
회계 - 언뜻 보면 사람 같지 않아?
그런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우린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한참을 가던 중
뭔가 찜찜한 기분을 느낀 회계가
사람들을 한 번 돌아보며 물었다.
회계 - ... 그런데 김군은?
그의 물음에 우린 아무 말 없이
방금 전 지나온 사람 모양의 눈무덤을 돌아보았다.
잠시 후.
다시 돌아온 산장.
박군 - 으으으...
김군 - 으득득득드드득득득드득.....
김양 - ..... 짜증나.
눈 속에 장시간 방치되었다가 잊혀져
봄철에 변사체로 발굴될 뻔한 김군은
박군, 김양과 함께 벽난로 앞에 앉아
차디차게 식은 몸을 녹이고 있다.
연출 - .... 이제 이걸 어쩐다?
기억 - 먹으려면 죽여야죠.
연출 - 누가?
오늘 포획한 토끼를 놓고
거실에 앉아 논의를 벌이고 있는 다른 사람들.
큼직한 플라스틱 버켓 속에 앉아
똘망똘망한 눈으로 우릴 올려다보는 녀석을
우린 차마 죽일 수 없었다.
솔직히 지금 이곳에 혼자 있었고
몹시 배가 고팠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토끼가 불쌍하다.’
‘어떻게 이런 아이를 죽일 수 있냐.’
라는 여론이 팽배하고 있는 지금
단지 반찬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녀석을 죽인다면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것도 한 순간이다.
처음부터 멧돼지 같은 걸 잡았다면
이런 사태는 없었겠지만...
연출 - 흐음... 그렇다고 놓아주기엔 김군의 희생이...
정확히 말하면
목표를 달성하는 데 전혀 도움이 안 됐으니
희생이라고 보는 데는 무리가 있지만
뭐... 우선은 그렇다고 해두자.
그리하여 결국....
민아 - 어머 어머, 먹는다.
한나 - 배고팠나 보네... 겨울이라.
민아 - 어쩜 너무 귀엽다~~.
저녁시간 현재
녀석은 우리가 싸온 상추나 오이를 받아먹으며
호화스러운 삶을 살고 있다.
오히려 잡히기 전보다 더 잘 먹고 있는 지도....
한편, 오전 내내 토끼 한 마리를 잡기 위해
설산 다운힐을 감행했던 우리의 저녁 메뉴는
예고되었던 데로 스위트 콘에 라면이었다.
연출 - ....
회계 - 뭐해? 안 먹고?
그리고 다음날 아침.
잠에서 깨어난 사람들이
하나 둘 거실에 모여들었다.
연출 - 벌써 4일 짼가?
회계 - 하아... 이거 안 좋은 걸....
아침부터 마주 앉아
심각한 얼굴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연출과 회계.
아마 어제 밤에 떨어져버린 술이 원인인 것 같다.
그 때 막 머리를 감고 나온 듯
젖은 머리에 목에 수건을 걸친 김양이
회계의 등을 발로 툭 걷어차며 말했다.
김양 - 야, 담배 좀 줘.
회계 - ..... 이거 돛댄데.
김양 - 구라치지 말고, 물어볼 때마다 돛대냐?
회계 - 진짜야.... 확인해보든가.
김양 - ...... 이게 다야? 더 없어?
회계 - .... 응.
회계로부터 담뱃갑을 받아든 김양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잠시 한 개비 남은 담배를 들고 갈등하던 김양은
마지못해 회계에게 담뱃갑을 돌려주었다.
회계 - 아냐, 너 피워.
김양 - ..... 진심이야?
회계 - 난 아까 아침땡 했어.
김양 - 식후땡은 어쩌려고?
회계 - ..... 그야 뭐... 어쩔 수 없지.
바로 어제 고기 고갈에 이어,
흡연자들에겐 몇 배나 더 무서운 악몽이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