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雪 花[설화] . . . [9]

悲... |2006.03.01 03:05
조회 1,335 |추천 0

 

 

 

[9] . . .

 

 


유난히도 햇살이 좋은 오후였다.
서현은 오랜만에 베란다 창문을 활짝열고 노란 병아리처럼 살며시 눈을 감은채 하늘을 올려다보며 따스한 햇빛을 즐기고 있었다.
여자의 우유빛 투명한 피부를 간질이는 한줄기 바람에서 봄내음이 뭍어오는것 같아 서현의 입가엔 아이같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고, 거실 한켠에 자리잡은 오디오에선 멘델스존의 봄의노래가 온 집안을 즐겁게 떠다니고 있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평온함에 어젯밤 성민에 대한 서운함이 조금쯤 사라지는 듯 했다. 
그때 손님이 왔음을 알리는 벨소리가 서현의 행복한 휴식을 방해했다.
그이일까? 아직은 시간이 너무 이르다는걸 알고 있었지만 왠지 성민이 돌아와 자신과 함께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에 발걸음이 빨라지는 서현이었다.
현관문을 여는순간 여자의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지만 성민보다 더 반가운 손님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머님!”


갑작스런 시어머니 박여사의 방문에 서현의 작은 얼굴에 싱그러운 미소가 드리워졌다.


“연락이라도 하고 올것을 쉬고있는데 내가 방해한건 아닌지 모르겠구나.”


아이같은 선한 웃음 깔깔 웃으며 매번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자신을 싫은내색 한번없이 언제나 반가운 얼굴로 맞아주는 착한 며느리가 너무도 어여뻐 실례인줄 알면서도 박여사는 항상 연락도 없이 갑자기 찾아오곤 했다.


“남에 집에 오시는 것도 아닌데 그런 말씀 하시지 마세요. 어머님 자꾸 그러시면 저 너무 서운해요.”


금방이라도 눈물이 그렁그렁 맺힐것 같은 맑은 눈으로 발을 동동 구르며 서현은 박여사의 팔에 매달려 아이처럼 투정부렸다.


“어린애 같기는 여전하구나. 어서 들어가자.”

 

박여사와 함께 집으로 들어온 서현은 갑자기 바빠지기 시작했다. 냉장고를 뒤져 가장 예쁘고 신선한 과일로만 접시에 담고, 자신이 가장 아끼는 찻잔을 꺼내어 손수만든 대추차를 정성스레 끓여냈다.
따스한 햇살이 스며드는 거실 한켠에 마련된 티테이블엔 준비한 사람의 정성이 가득 담긴 다과상이 금새 차려졌고 다정하게 마주앉은 두여자의 눈길이 봄햇살 만큼이나 따스했다.


“향이 좋구나.”


“가을볕이 좋아서 그런지 이번에 잘되었어요. 보내 드린것은 다 드셨어요?”


“네 아버지가 매일저녁 이것 않드시면 잠을 않주무시지 않니. 매일 잡수시면서 솜씨좋은 며느리 얻어 당신 입이 호강한다며 얼마나 좋아하시는지 모른다. 덕분에 나는 아주 솜씨없는 마누라가 되어버렸어.”


“어머니 또 저를 놀리시는 거지요~”


“놀리기는, 난 그런것 못한다.”


자신의 칭찬 한마디에 금새 홍당무처럼 변해버린 서현을 바라보며 박여사는 기분좋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런데 저번보다 얼굴이 많이 상했구나. 어째 꼬챙이처럼 점점 마르기만 하는지 모르겠구나.”


온화하게 미소짓던 박여사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어렸다.


“죄송해요…. 제가 변변치 못해 자꾸 걱정만 끼쳐 드리네요.”


자신의 조그마한 변화도 금새 눈치채고 마음써주시는 다정한 시어머니 앞에서 서현은 죄인처럼 자꾸만 고개가 숙여졌다.


“별소리를 다하는구나. 손뼉도 부딪혀야 소리가 난다 하였다. 그게 어디 너혼자 노력한다고 될일이더냐. 변변치 못한 못난 아들놈 때문에 이렇게 고운사람 데려다 마음 고생만 시키는데….”


생기없이 자꾸만 야위어만 가는것이 무슨 이유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박여사는 안타까운 마음에 헬쓱해진 서현의 볼을 조심스레 쓰다듬었다.
하늘거리는 민들레처럼 곱고 단정하기만 하던 서현의 얼굴에 자꾸만 깊게 드리워지는 검은 그림자가 박여사는 못내 가슴이 아팠다. 뜨거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기다리며 터널처럼 길기만한 어둠속에 고개숙인채 생명력을 잃어가는 해바라기처럼 자꾸만 땅속으로 파고 들려는 서현이 가여웠다.


‘내 죄구나…. 내 욕심이 저 착하기만 한것을 끝내 아프게 하는구나….’


박여사는 자신의 선택에 가슴을 쳤다.
유명한 화가인 서현의 아버지는 박여사와 오랜 지기였다. 유난희도 사이가 좋던 아내가 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아직 어리기만한 서현을 곱고 반듯하게 키워냈다.
누가 보아도 보석처럼 반짝이는 아이였다. 비어있는 어머니의 자리를 야무진 손끝으로 매꿀줄 아는 아이였고, 자신보다 모자란 이에게 선을 베풀줄 아는 마음씨 착한 아이였다. 그런 서현이 탐이나 자신에게 며느리로 달라 박여사는 조심스레 청을 넣었었다.
그녀의 청에 오랜 지기는 온전하게 부모사랑 충분히 받지 못한 가여운 아이, 가진것 많지않은 평범하고 가슴 따뜻한 남자와 짝지어 더 이상 외롭지 않게 해주고 싶다며 그게 아비의 마음이라며 정중히 박여사의 청을 거절했었다.
그런 친구에게 박여사는 약속했었다. 자신의 딸처럼 아끼고 사랑해 주겠노라고… 티없이 맑은웃음 평생 웃으며 살게 해주겠노라고… 못난 아들놈 혼자 외롭게자라 차갑고 고집쟁이 같지만 타고난 천성만은 따뜻한 아이라 자기여자 외롭게는 않할거라고 그러니 자신을 믿고 혼사를 치루자 했었다.
그리 어렵게 내식구로 맞아들인 고운아이를 저리 마음고생만 시키는것 같아 박여사는 자신의 가슴을 쳤다.


“죄송해요… 죄송해요 어머니….”


너무도 따뜻한 박여사의 손길에 참고 참았던 아픈 눈물이 기어이 터져나와 서현의 얼굴을 적셨다. 그리하면 몇날 몇일을 그녀 걱정에 편한잠 못주무실것을 알면서도 한번 터져버린 눈물은 쉽사리 가셔주질 않았다.
어느새 서현의 곁으로 다가온 박여사는 서러운 눈물 토해내고 있는 자신의 며느리를 따뜻한 가슴으로 끌어 안았다.
자신을 포근히 안아주는 그 가슴이 너무도 따뜻해서… 모자라고 부족하기만한 서현을 항상 친딸처럼 사랑해주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곪을대로 곪아버린 여린 마음의 상처를 진심으로 쓰다듬어 주는 부드러운 박여사의 손길에 꼭꼭 숨겨왔던 자신의 속내를 털어냈다.


“아버님 어머님처럼 다정하게 살고 싶었어요. 서로 아껴주며 존중하며 끝없이 사랑하며 그리 살고 싶었어요. 성민씨 닮은 아이도 낳아 저처럼 상처없이 모자란 구석없이 어여쁘게 기르고 싶었어요.
힘든일 하는 그사람, 쉼없이 끝임없이 세상과 홀로 싸우는 외로운 그사람 곁에서 유일하게 편히 쉴수있는 포근한 그늘이 되어주고 싶었어요.
어머니… 어머니… 저 그리 살고 싶었어요.
처음 시집와 데면데면해 하는 제손 꼭 잡아주시며 딸처럼 사랑해 주겠노라 하시던 고마운분…. 어머니를 친정어머니 처럼 믿고 따르며 행복하게 사는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요 어머니, 그사람… 그사람의 사랑을 얻기가 너무도 힘들어요. 아무리 두드리고 정성스레 매만져도 절대로 열리지 않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제 곁에서 자꾸 숨으려고 해요. 자꾸만 절 밀어 내려고만 하네요.
모자란 저 아껴주고 사랑해주시는 어머니에게 걱정 끼치지 않고 예쁘게 사는 모습만 보여 드리려고 했는데 그런데… 그런데… 이렇게 불효만 하네요. 제가 못나고 부족해서 이런 모습만 보여드리네요.“


꺼억꺼억 소리내어 울지도 못하는 서현의 여린 가슴이 기어이 투둑- 투둑- 터지며 붉은 꽃잎처럼 짙은 피눈물을 흘려내고 있었다.


“이 미련한 것아! 그리도 아프면서 어찌 그동안 내색 한번을 않한게야. 소리내어 울지도 못할 정도로 힘에 붙였으면서 왜 그리 차곡차곡 가슴속에 쌓아 두고만 살았어. 자식 잘못키운 내 죄가 무겁고 커서 이리도 착한 너를 자꾸만 힘들게 하는구나.”


그 아프고 애닳픈 눈물을 마주하는 박여사의 가슴은 미어지는듯 아파왔다.


‘어찌해야 하나… 이 죄를 어찌 해야 하나… 하느님….’


상처입은 새끼 짐승처럼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신의 가슴으로 자꾸만 파고드는 서현의 작은 등을 쓰다듬는 박여사의 손길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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