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운동을 안 해서 그런지
몸이 영 밋밋해진 것 같습니다.
지방이 늘고 있는 건지 어쩐 건지....
날씨 풀리기만 기다릴 게 아니라
슬슬 활동을 재개해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 지금도 충분히 풀렸다 ===========================
회계 - 아니.... 그게.... 난....
김양
- 그냥 좀 닥칠래?
지금 뭐라고 말해도 열라 비굴해 보이거든?
그렇게 회계를 일갈한 김양은
한숨을 내쉬며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입에 물었다.
어떻게 했는지는 몰라도
아까 말던 종이를 붙이는 데 성공한 것 같다.
민아 = 기억아, 그쪽에 무슨 일 있어?
기억 - 아.... 응. 잠깐만.... 조금 있다 올라갈게.
지금 꾸물꾸물 들어가기도 어색하고
그렇다고 자리를 지키고 있기도 난처한...
한 마디로 뻘쭘한 사태다.
필터도 없는 담배 두 모금을
깊이 빨아들인 김양은
간만에 마신 연기에 머리가 띵했는지
잠시 이마를 짚고 서있었다.
회계는 계속 뭔가를 말하려 주춤거리다
그녀가 한숨 돌리는 틈을 타 입을 열었다.
회계
- 난.... 그냥 이 기회에....
네가 담배를 끊을 수 있을까 싶어서....
나도 그동안 한 개비도 안 피웠어.
봐, 포장도 안 뜯었잖아.
김양
- 그동안 몇 갑을 피우고 몇 갑을 꼬불쳤는지 알게 뭐야?
그리고.... 담배를 끊어?
네가 그런 말 할 자격 있어?
회계 - ......
김양
- 어차피 잃을 거 다 잃은 마당에
지금 와서 말 뒤집지 마, 구역질 나.
냉소적인 얼굴로 말을 마친 김양은
다시금 담배 한 모금을 길게 빨았다.
회계 - ..... 미안해.
김양 - 아... 나.... 진짜....
회계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짜증이 난다는 듯
김양은 땅을 보며 휙 도리질을 치더니
다음 순간 넘어질 듯 크게 휘청 거렸다.
회계 - 기... 김양?
김양 - 건드리지 마!!
자신을 잡아주기 위해 다가서는 회계를
팔을 휘둘러 제지하는 김양.
곧 비틀비틀 자세를 바로 잡은 김양의 눈은
마치 술에 진탕 취한 사람처럼 반쯤 풀려있었다.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회계와 나는
김양으로부터 두어 걸음 물러서
그녀의 다음 행동을 주시했다.
김양 - 나쁜 새끼.... 죽어! 장~ 풍~!!
그리고 김양은 회계를 향해 장풍을 쐈다.
회계 - ...... 뭐... 뭐?
기억 - 장풍이라는데요?
당황한 회계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얼어있는 동안에도
김양은 두 손바닥을 회계를 향해 뻗은 채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도저히 장난치는 걸론 보이지 않는 그 표정.
잠시 망설이던 회계는 괴성을 지르며
뒤로 몸 펴 한 바퀴 반 틀어 배로 착지를 선보였다.
회계 - 크아아아악~!!!
김양 - ........ 하하하하! 맛이 어떠냐!!
회계가 쓰러지는 걸 확인한 김양은
당당하게 허리에 손을 짚고 껄껄껄 웃더니
마지막 한 모금을 빨아 들이고
남은 꽁초를 눈 손에 버린 뒤
기분 좋게 산장으로 돌아갔다.
그녀가 자리를 떠난 후
죽은 듯 눈 위에 엎드려 있던 회계가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회계 - ...... 뭐.... 뭐였냐 지금?
기억 - ...... 장풍.... 맞는 거 같은데요.
도저히 정상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녀의 행동에
미심쩍은 기분이 든 난
그녀가 버린 담배꽁초를 다시 주워들었다.
회계 - .... 그거... 마리화나나 그런 거 아니냐?
기억 - .... 대마초요? 아닌 거 같은데요.
처음 재료가 담배꽁초인데
갑자기 내용물만 대마초로 돌변할 리는 없고....
혹시나 하는 기분에 꽁초의 냄새를 슬쩍 맡아보자
담배 냄새 사이로 자극적인 다른 냄새가 섞여 났다.
기억 - .... 본드?!
회계 - 뭐?
기억 - .... 이거 본드로 붙은 건데요?
과연 종이 접착면엔 황색의 본드 얼룩이 남아 있었다.
산장에서 풀을 찾다가 실패한 김양은
우리가 깡통 전화기를 만들 때 썼던 본드로
담배를 말아 붙였던 것이다.
회계 - 얘가 정말 미쳤나....어떻게 이런.....
회계는 끈적한 기운이 남아있는 본드자국을 손끝으로 비비며
망연자실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회계의 얼굴과 담배를 숨긴 행동 사이에서 느껴지는 괴리감에
난 조금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기억 - 그러게 좀 나눠 피고 했으면 좋잖아요.
회계 - ..... 이거?
기억 - ..... 예.
내 말에 아까 떨어뜨렸던 담뱃갑을 주워든 회계는
잠시 착잡한 눈으로 담뱃갑을 내려다보더니
손으로 꾸깃 움켜쥐고는 산장 뒤 수풀을 향해 힘껏 집어던졌다.
회계 - 흐읍!!
푸석 푸석.... 하고 풀잎 사이에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수풀 깊숙이 숨어버린 담뱃갑.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할 말을 잊은 난
멍하니 담뱃갑이 사라진 수풀 쪽을 바라보았다.
회계 - ...... 이러려고 나온 거야.
기억 - ...... 에?
회계 - 들어가자.
일말의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는 회계.
난 뒤통수라도 맞은 것 같은 기분으로
그를 따라 산장 안으로 돌아왔다.
김양
- 냐하하하!!! 변~~ 신~~! 세일라~~ 문~!!!
정의의 이름으로 널 용서하지 않겠다~!!
산장 안에선
아직 본드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한 김양이
무시무시한 괴력을 발휘해
연출을 비롯한 악의 무리(?)들을 처단하고 있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김양의 폭력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된 그들.
아무래도 이 사태가 진정되는 덴
다소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다.
그때, 어느새 탁자가 있는 곳으로 다가간 회계가
탁자 위에 쌓여있던 담뱃잎과 종이 따위를 집어
벽난로 속에 집어던졌다.
타닥! 하고 장작 불꽃이 튀기는 소리에
뒤를 돌아본 김양이 일순 비명 같은 고함을 질렀다.
김양 - 야아아아!!! 너 뭐하는 짓이야!!
성큼 회계에게 다가서 멱살을 움켜쥐는 김양.
당장 귀라도 물어뜯을 것 같은 그녀의 눈을
정면으로 주시하고 있던 회계는
거칠게 그녀의 두 손을 잡아 뿌리쳤다.
회계 - 적당히 해! 네가 무슨 마약 중독자야?
김양
- ...... 허, 허허. 야 네 입에서 지금 그런 소리가 나오냐?
넌 꼬불쳐놓은 거나 실컷 피워!
왜 남의 밥상을 뒤집고 지랄이야!
회계 - .... 그거 버렸어. 그러려고 나갔던 거야!
김양
- 구라 깐다 또.... 끝까지 그러고 싶냐?
왜? 이번에도 돛대라고 하지?
회계 - .... 제발.. 그만 하자.
김양 - 꺼져 새꺄. 그냥 주기 싫으면 싫다 그래.
회계 - .... 그래, 주기 싫다.
김양
- 허! 그래, 얼마나 좋아,
더럽고 치사하게 굴지 말고 아예 처음부터 그러지.
회계 - 난 네가 담배 피우는 거 싫어. 그래서 싫어.
김양 - ........ 장난 하냐?
여전히 반쯤 풀려있는 김양의 눈을 보고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난
주변에 흉기로 돌변할 만한 물건은 없는지 재빨리 살폈다.
.... 컷터칼? 빈병? 부지깽이? 스위트콘캔? 장식용 사슴뿔?
우선 컷터칼은 치워놔야 겠다.
김양
- 몇 번을 말해야 아냐?
넌 그런 말 할 자격 없다니까. 모르냐? 왜 그런지?
회계 - 알아. 지금도 후회하고 있고.
김양 - 하...하하하. 웃긴다 너....
뭔가 상당히 심각한 뒷이야기가 있는 것 같은 두 사람.
어느새 내 곁에 다가온 민아가
내 소매를 슬쩍 잡아당기며 물었다.
민아 - 밖에서 무슨 일 있었어?
기억 - 응..... 회계선배가 담배를 숨겨놨다가 김양한테 걸렸어.
민아 - 뭐? 회계오빠 그렇게 안 봤는데....
기억
- 숨겨놓고 피우거나 한 건 아니고....
포장도 안 뜯었다가 그대로 버렸어.
아무래도 무슨 사정이 있나봐.
연출 - 그 이야기는 내가 해주지.
민아 - 끼얏?!
그때 불쑥 우리 사이로 끼어든 연출.
세일러김양의 공격에 인간의 형상을 잊은 그의 모습을 본 민아는
일순 짧은 비명을 흘렸다.
기억 -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데요?
연출
- 음.... 때는 1년 전.
회계가 갓 군대 다녀왔을 때 이야기지.
원래 복학생이라는 존재가
여학생들한테 소외받기 쉬운 편인데
김양은 성격이 원체 털털하고 하다 보니
복학생들이랑도 잘 어울렸거든. 회계를 비롯해서....
그 때 김양은 연극부 외에
신야(晨夜)라는 밴드 보컬로 있었는데...
기억 - ..... 김양이 보컬이요?
연출
- 네가 몰라서 그렇지... 김양 노래 끝장난다.
민아 넌 들어본 적 있지? 작년 초 쯤....
민아 - 아.... 네. 그 때 카페에서 공연하는 거....
연출
- 그래 아무튼..... 그 때 회계가 김양을 무척 좋아했거든.
그런데 김양이 물어본 거야
‘담배 피우는 여자 어떻게 생각하냐’ 고....
그 때 회계는 김양이 남들 모르게 담배를 피우는 줄 알고
‘섹시해 보이고 괜찮다고 생각한다.’
라고 대답을 했는데.... 그게 어긋난 거지.
김양은 밴드 드럼 치는 녀석이
담배 피우는 여자 멋있어 보인다는 말을 하는 걸 듣고
확인 차 물어봤던 거거든...
기억 - 그럼 김양은...... 드러머를 좋아했던 거예요?
연출
- 뭐, 인생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아무튼.. 그때부터 김양은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한참 지나서 자연스럽게 피울 수 있게 됐을 때
담배를 피우면서 드럼 치는 놈한테 고백을 했데.
민아 - ....... 결과는요?
연출
- 결과고 뭐고... 상당히 처참했나봐....
무슨 보컬이 담배를 피우냐면서
대판 싸움이 나서 밴드도 해체되고....
그 전에 목소리 때문에 말이 좀 있긴 있었거든.
기억 - .... 그 책임을 전부 회계가 진 거예요?
연출 - 책임을 졌다하기 보다는 그냥 덮어 쓴 거지.
그래서 모든 걸 다 잃은 마당에... 라고 했던 건가.
사랑도 끝나고, 밴드도 끝나고....
하지만 그렇다고 욕을 먹기엔 회계가 너무 불쌍한 걸.
우리가 이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두 사람의 싸움은 막바지를 향해가고 있었다.
김양
- 이제 와서 괜한 참견 말고 꺼져.
네가 뭔데 이래라 저래라야?!
회계 - ..... 나 너 좋아해. 그걸로 안 되겠냐.
김양 - ............. 엥?!
회계
- 처음에 담배피우는 여자가 좋다고 했던 것도
네가 몰래 담배피우는 줄 알고 그랬던 거고
만날 돛대밖에 없다고 했던 건
네가 돛대를 뺏어 피고 나면
그날은 거의 담배를 안 피워서 그런 거였어.
그래서 항상 돛대만 있는 담뱃갑을 따로 가지고 다녔어!
........ 난 네가 담배 끊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나랑 사귀자.
갑작스러운 회계의 프로포즈에
김양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그건 이전 사정을 모두 알고 있던 연출도 마찬가지였다.
한참의 침묵이 흐르고,
멍하니 서있던 김양은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회계에게 물었다.
김양 - 너..... 바보냐?
회계 - ..... 응. 그런 거 같다.
김양 - ..... 이잇... 바보 새끼....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가리며
황급히 2층에 있는 방으로 뛰어가는 김양.
그녀가 떠난 후에도 자리를 지키고 서있는 회계의 입가에
미미한 미소가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