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께 차를 물려받았습니다.
기쁜마음에 세차도 하고 이것저것 정리할겸 셀프 세차장에 갔죠.
운전석위 햇빛가리게를 열었는데 작은 주머니 안에 사진몇장이 있더군요.
무심코 꺼내어 열어봤는데...
살아생전 꽃밭옆에서 환하게 웃고 계시던 할머니의 사진이 있었습니다.
저의 초등학교 6학년 졸업식을 몇달 앞두고 돌아가신 할머니...
환하게 웃는 할머니의 사진을 보고 왠지 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렸을 적 전 말썽꾸러기에 철부지였죠.
학교에 교과서를 빼먹고 가기 일수였고 도시락도 두고 가는 경우도 파다했습니다.
제가 마지막 국민학교 세대거든요.
저녁 때 열심히 했던 숙제를 집에 두고온 날이였습니다.
역시 교과서도 빼먹고 왔죠.
자기전에 책가방을 챙기라는 할머니의 말씀에 "알았어~" 하고 대충넘겼었죠.
서둘러 교문옆에 있는 공중전화로 달려가 집에 전화를 했죠.
"할머니! 책상위에 [수학]책이라고 써있는거 있어. 그거좀 가져다 줘. "
"무슨 그림 있는거니?"
"그냥 앞에 5-2이라고 써있는거 있어. 빨리빨리!"
"알았다."
전 한시간이 끝나고 다시 교문으로 달려 나갔죠.
멀리서 숨을 헐떡거리시며 파자마바람에 학교앞까지 뛰어오신 할머니가 보였습니다.
그때는 왠지 할머니의 모습을 아이들에게 들키기가 싫어 교문 담벼락 뒤에 숨어있다가 할머니가 다가오면 뛰어 나가서 책만 받아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수학책을 가져다 달라고 했는데 국어책을 가져 오신거에요.
할머니는 글을 읽을 줄 모르셨던 거죠.
전 교문앞에서 교과서를 패대기 치며 왜 국어책을 가져 왔냐며 화를 냈습니다.
할머니가 흐르는 땀을 닦아내시며 떨어진 교과서를 주워 돌아가시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이 납니다.
지금... 글을 쓰면서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제 자신이 너무 밉네요.
정확히 그 일이 있은 후 몇일 뒤부터 저희 할머니는 여성회관에 마련된 노인들을 위한 학교에 나가기 시작하셨습니다.
한글을 배우기 시작하신 거죠.
한달이 지나고 할머니가방에서 공책한권을 발견해 꺼내 보았습니다.
깍두기공책에 삐뚤빼뚤하게 쓰인 글씨들.
가나다라... 부터 시작해서 몇장뒤에 아버지, 어머니가 쓰여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장에 이렇글씨가 쓰여 있었습니다.
[준형아 한나야 사랑한다.]
지금도 이 공책은 제 최고의 보물입니다.
제 책장에 어린시절 앨범들중 할머니의 공책이 있습니다.
어린시절 제 장래희망은 치과의사였습니다.
할머니의 틀니를 꼭 제손으로 고쳐드리고 싶었거든요.
이제 그 희망은 현실과 조금 멀어졌지만^^ 할머니의 사랑은 잊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아쉬운것은 보고싶어도 다신 볼수 없고 그 뜨거운 사랑에 보답할 길이 없다는 것이죠.
하늘에 계신 우리 할머니가 기뻐하시도록 오늘 하루도 열심히 살아가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