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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이 지나도 한번에 알아볼수있는 너

하늘아래 |2006.03.18 03:19
조회 817 |추천 0

5살때 처음 그 사람을 만났습니다. 또래 친구 아무도 없는 낯선 그곳에서 그 사람을 처음 만났습니다.

 

눈부신 여름날 하얀 원피스에 막대사탕을 입에 물고 멀리서 걸어왔던 그 사람의 모습을 난 아직도

 

기억합니다. 엄마가 없던 내게 엄마가 되어주고 아버지 일가고 하루종일 집앞에 나와 노는내게 친구

 

가 되어주고 글자도 못쓰던 내게 한글도 가르쳐주던 그 사람...

 

우린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고 3년동안 같은반이었습니다. 못된 친구들이 그 아이를 괴롭히면 언제나

 

내가 혼내주고 맞기도 많이 맞았지만 그 아이을 위해 해줄수 있다는게 하나라도 있는 난 맞으면서도

 

웃었던것같습니다. 그리고는 아버지의 갑작스런 가출로 난 작은 아버지집으로 이사를 가게 됩니다.

 

넉넉치 않은 살림에 식구가 하나 늘었으니 좋아할리가 없었지요...집에 들어오는게 너무너무 싫었던

 

난 내가 살던 동네에 그 아이를 보러 자주 가곤 했었습니다. 그리 멀리 떨어진곳은 아니어서 마음만

 

먹으면 갔다 올 수 있는 그런거리였어요 놀이터에서 만나서 얘기하고 있으면 저녁먹으로 들어오라는

 

그 아이 엄마 부르는소리에 아쉬운 작별을 하고...이런 나날이 반복이 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갑자기 아버지 직장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는것입니다. 그래서 그 아이 엄마가 저녁식사 초대

 

한다며 오라고 하는데 집에 돌아오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고 어떻게든 나도 미국을 가야겠

 

다는 생각뿐이었죠..맛있는 저녁을 배부르게 먹고 과일을 먹는데 하나둘씩 정리된 그 집 짐을 보니

 

정말 가나보다 싶더라고요..눈물이 울컥 쏟아져나오는데 참고 참았던 나를 그 아이 엄마가 살며시

 

안아주시면서 지금 헤어져도 나중에 만날 수 있다는 말을 해줬습니다. 그때 까지 공부 열심히 하고

 

착실히 잘 커서 나중에 어른되서 데이트 하라고... 돌아가고 싶지 않은 발길을 집으로 돌리며 울고

 

또 울고 그렇게 나는 그 아이를 보냈습니다

 

그로 부터 9년이 지났습니다.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소위말하는  SKY 에서 K대를 들어가게 되

 

었습니다. 부모없이 혼자 남의 집에서 크며 눈치밥먹고 참고서 빌려가며 악착같이 다시만날날을

 

기대하며 공부만 했습니다. 대학을 가서도 그 흔한 미팅, 소개팅은 해본적도 없고 오로지 어엿한 아

 

가씨가 되어있을 그 아이만 생각했습니다. 연락을 계속 해오다가 어느날부터 연락이 중단되어서 편

 

지도 쓸 수 없고 그저 미국 어디에 있다 라고만 알고 있는게 전부였습니다. 돈을 벌어서 무조건 미국

 

을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찬 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결국 드디어 미국에 가게 되

 

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비행기도 타고 외국을 나간 저는 도착과 동시에 그 아이를 찾기 시작했습니

 

다. 엄청난 땅 덩어리에서 그 아이를 찾는건 정말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는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

 

었습니다. 이름과 살던동네를 중심으로 알아보다가 결국 주소를 알게 되어 찾아갔습니다.

 

그림같은 집에 차도 3대나 주차되어있는 정말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그런 의리의리한 집이었습

 

니다. 벨을 누르자 흑인 파출부가 나와서는 누굴 찾아왔냐 이름이 뭐냐 여러가지 묻더니 잠깐만 기다

 

리라고 하고는 들어갔습니다. 한참을 기다리던중 현관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걸어나오는데 내가 그렇

 

게 찾던 만나고 싶어했던 그 아이가 맞았습니다. 내 이름을 듣고 너무 놀랐다고 합니다 정말로 찾아

 

오다니...하나도 변한게 없었습니다 그 아이는..이쁜 모습 그대로 맑고 밝은 보고만 있어도 남에게

 

희망을 주는 그런 모습이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오랫동안 못한 얘기를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던중

 

어머님이 오셨습니다. 근데 예전의 그분이 아닌듯했습니다. 사정을 들어보니 미국에 오신지 몇달

 

안되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답니다. 아버지는 모든걸 다 포기하고 딸과 함께 귀국을 하려 했지만

 

이제 막 미국에 적응하는 딸과 자신의 일에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없어 그대로 남기로 하던중 지인의

 

소개로 지금의 새 어머니를 만나게 된거랍니다. 보는 첫 인상부터 날카로왔던 나를 아래위로 훑어 보

 

더니만 별로 관심없다는듯 방으로 들어가시고는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모습을 드러내시지 않았

 

습니다. 왠지 불쌍해 보이는 그 아이의 배웅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미국에 있는 동안 계속

 

연락하고 만나며 우리는 정말 남부럽지 않은 그런 연인이 되어가고 있는듯했습니다. 10년의 노력이

 

헛된게 아니구나, 내가 옳았다...이런 생각들이 날 더더욱 행복하게 힘이 나게해주는 하루하루 였습

 

니다. 그러던 중 교환학생 기간이 만료가 되고 난 귀국을 해야 햇습니다. 또 이별을 해야하는 순간이

 

었습니다. 어렸을땐 뭘 몰라서 그랬다지만 이젠 그 아이를 두고 갈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더더욱 미국에 남고 싶은 끝까지 함께 하고싶은 마음에 전 돌연 귀국을 포기하고 현지에서 바로 대

 

학을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학비가 엄청나게 비싸지만 밤낮으로 아르바이트 해가며 다시 난 열심히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틈틈히 일하는 곳에 찾아와 날 응원해주고 가는 그녀를 난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졸업을 할때가 되었고 난 그 아이에게 청혼을 하기로 했습니다

 

자그마치 23년을 바라본 한 사람이 었습니다. 난 나 나름대로 확신이 있었고 당연히 그 아이는 내가

 

지켜줘야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멋진 곳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청혼을 하는 나에게 정말 의외의

 

대답이 나왔습니다. 결혼은 할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뭔가에 심하게 얻어맞은 기분의 저는 물어봤

 

습니다, 이유가 뭔지. 이유는 간단하답니다..결혼 할 사람이 있다고,..말도 안되는 거짓말입니다.

 

내가 미국에 있는 동안 쭈욱 같이 지냈는데 결혼 할 사람이 있다니요...집에서 정해준 정략결혼일까?

 

이런 생각도 해보았지만 그런일이 있을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리고 자꾸 결혼하자 그러고 자기한테

 

부담주면 친구로서도 만나지 않겠다고 그러는겁니다. 상상을 할수 없었습니다. 언제나 내게 환한

 

미소와 즐거움을 주는 그 아이가 좀 냉정하게 그것도 갑작스레 그렇게 변해가는게 난 너무도 싫었습

 

니다.그냥 옆에서 지켜보다가 나중에 기회를 봐서 다시 청혼을 해야겠다 생각한 난 열심히 논문준비

 

를 하며 졸업준비를 하고있을 어느 날이었습니다. 한동안 연락도 없고 연락도 안된 그 아이 생각이

 

나서 집으로 찾아가고 있었습니다. 집에 도착해서 벨을 눌러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냥 어디 나갔나

 

싶어서 좀 기다려봐도 아무도 오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그집은 아무런 인기척이

 

없는듯했습니다. 주위사람들에게 물어보니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충격이었습니다..........내게 아무런 말도 없이 그냥 연락도 없이 이사를 가다니....

 

다시 이 아이를 찾을 생각을 하니 막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미국에 처음와서 해메던 시절이

 

생각이 나더군요..그렇게 시간이 몇개월 흘러 난 졸업을 했고 취업준비에 고민하던중 하나의 소포를

 

받게 됩니다. 보낸 사람은 없고 뭔 책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일기장이었습니다....

 

여러권이었는데 초등학교때부터 쓴것부터 작년 10월 21일이 마지막으로 되어있는 일기였습니다.

 

10월 21일은 내가 그 아이집에 그 아이를 보러 가던 그 주였습니다. 일기를 한장씩 읽어가며 그 아이

 

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떠난 이유도, 청혼을 받고 날듯이 기뻣지만 거절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이유..그 모든게 그 일기에 고스란히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는 이렇게 써있었습니다. 사랑한다고 꼭 한번만이라도 말하고 싶다고...

 

그 아이는 고등학교를 졸업할때 쯤에 이미 시한부 삶을 선고받았다 합니다.

 

암..........말로만 듣던 정말 말도 안되는 일이 그 아이에게 벌어지고 있었던 겁니다..그때 난 무엇을

 

햇나...고등학교때 열심히 공부해서 그 아이를 만나러 가기위해 발버둥 치고 있었습니다. 그때 이미

 

그 아이는 아프기 시작하고..이 무슨 운명의 장난입니까...............

 

그리고 의사가 선고한 몇개월이 기적과 기적의 거듭으로 연장이 되고 마지막엔 나까지 미국에 찾아

 

와서 이제 다 낳은듯해보였다고 합니다. 난 정말 몰랐습니다....그 맑고 밝은 아이가 어떻게 암이라니.

 

좀 몸이 약해보인건 기억나지만 그래도 암 정도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내가 졸업을 앞두고 바쁠때 많이 몸이 않좋아 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걷지도 못할 정도로...

 

그래서 병원으로 옮기면서 아버지도 집을 이사를 햇다고 합니다. 어짜피 집을 정리를 할 생각이었는

 

데 딸이 더더욱 원했답니다 빨리 처분하자고....내가 오기전에...

 

그리고는 병원에서 요양을 하다가 마지막 한달을 선고 받고 병원을 나왔답니다.

 

우리 학교도 왔었다더군요..근데 난 이미 졸업을한 상태였고 내 얘기를 묻고 다닌 모양입니다...

 

우린 이렇게 엇갈려만 왔는데 이제 만나고 떨어지고 싶지 않은데 결국 이렇게 되네요...

 

그리고는 어느 시골에서 조용히 요양을 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합니다. 그래서 유언대로 그 일기장이

 

내게 온거고요.....

 

일기를 덥는순간 난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내 인생 목표, 나의 반쪽, 내 모든게 없어졋으니까

 

요..그것도 내가 전혀 모르는 이유로 나없이 이 세상을 떠났다는거...후회와 자괴의 반복된 생활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좀만 더 신경썼더라면, 조금더 같이 있을걸, 조금더 안아줄걸...후회만 하고있습

 

니다. 취업도, 결혼도, 뭐도 내겐 의미가 없어져가고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사는거 하늘에서 보고

 

좋아할리는 없겠지만 너무도 내 자신이 싫은 나는 이렇게 오늘도 하늘만 바라보고 그 아이를

 

그리워 합니다.

 

"연주야, 사랑한다는 말 한번도 못했는데 그냥 가면 어떻게해 이렇게 너만 바라보고 평생 함께 할

 

나를 남겨두고...그곳이 외롭지는 않니? 내가 없으니 심심하지? 보고싶다....미치도록......

 

이제 말하면 무슨 소용이니 넌 없는데.................................그래도 연주야.........

 

사랑해.....나 자신보다 널.........

 

사랑해  널 이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해 연주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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