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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36화> 다이내믹

바다의기억 |2006.03.23 01:07
조회 10,085 |추천 0

오늘 저녁에 시간이 남아서

 

낮잠을 늘어지게 자버렸습니다. (한 세시간쯤)

 

대체 밤에 다시 어떻게 잠들지 걱정이네요.

 

.... 외로운 밤, 함께 불태워 주실 분?

 

========================= 글이나 써 ==================================

=딸그락 딸그락=


수저와 접시가 부딪히는 소리만


간간히 울리는 거실 안.


낮은 탁자에 둘러앉아


말없이 식사에 열중하는 세 사람의 어깨 위로


무겁게 가라앉은 주변의 공기엔


허무하게 짓밟힌 한 남자의 순결과


새로운 세계를 접한 어린양의 민망함이


적당히 버무려져 있었다.



한나 - ..... 미안하다니까요.



그리고 이 모든 사태의 원흉. 한나.



기억 - 됐어요.


한나 - 어유, 말 놓으세요, 언니 남자친군데...


기억 - 하아..... 그래.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나에게 일시적으로나마 우위를 점한 나였지만


그 사실 하나로 위안을 삼기엔


지금 입은 정신적인 피해가 너무 컸다.



어쩌다보니 저녁 밥상에 앉긴 앉았지만


그냥 오늘 바로 집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 것 같다.


비록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고는 하나


이렇게 어색한 분위기에서 버티는 건


그녀에게도 심각한 민폐지 싶다.



한나 - 아이, 미안하다고요~~.


기억 - 알았다고.


한나 - 미안하다니까요~.


기억 - 알았다니까.



이번엔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이 드는지


한나는 계속해서 보채듯 사과를 해왔지만


지금은 사과를 받을 기력도,


톡 쏘듯 받아칠 기력도 없었다.


그렇게 설렁설렁 말을 받아 넘기는 나를 지켜보던 한나가


대뜸 자리에서 일어나며 소리쳤다.



한나

- 이이씨! 남자가 쪼잔하게....


나도 보여주면 될 거 아니에요!!



기억 - 에에엑?!


한나 - 내 참 치사해서.... 그거 보여준다고 닳아요?!


기억 - 아, 아니, 그, 그런 문제가...


민아

- 그만해! 네가 자꾸 그러니까


기억이가 더 곤란해 하는 거잖아!!



또다시 끝을 모르고 치닫는 한나의 대응에


보다 못한 민아가 큰 소리로 그녀를 나무랐다.



한나 - 아니 나는.... 두 사람 다 너무 침울해서 있으니까...



정말 화가 난 듯한 민아의 표정을 보고는


바로 꼬리를 내리고 자리에 앉는 한나.



.....솔직히 순간적이나마 기대는 했다.



다시 머쓱해진 분위기에


이미 자잘해진 돈가스를 조각조각 등분하고 앉아있을 때


민아가 슬쩍 내게 말했다.



민아

- 솔직히... 아까 너무 당황해서


하나도 못 봤으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 기억아.



기억 - ....... 정말?


한나

- 에이, 그렇게 정면 각도에


완전 오픈 상태였는데 어떻게 못 봐요.


그냥 안심하라고 하는 말이지.



민아 - 한나 너 정말!


한나

- ....... 솔직히 색깔이 그렇게 파격적인데


100m 밖에서 봐도 보이겠다.


무슨 남자가 그렇게 야한 팬티를...



민아 - 점잖은 검정색이었는데 무슨 소리...!!



말해놓고도 앗차 싶어 입을 막는 민아.


일순간 품었던 희망마저 깨어진 난


바람에 풍화되는 암염 덩어리가 되어


하얗게 바스러져갔다.



한나 - ..... 거봐요.


기억 - ........



그리고 나를 향한 한나의 확인사살.


다음 순간,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입술을 바르르 떨고 있던 민아가 소리를 빽 질렀다.



민아 - 한나 너어~!!!


한나 - ....... 아이 깜짝이야.


민아 - 그만 안 할 거야?!


한나 - 알았어..... 안하면 되잖아...



그렇게 한나는 완전히 백기를 든 것 같았지만


문제는 그나마 이어오던 대화의 맥까지


딱 잘려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다시 계속되는 침묵의 시간.


한나는 그 시간 내내 입이 간지러운지


입술을 달싹달싹 거리고 있었지만


강렬한 언니파워를 발산하고 있는 민아 앞에


감히 나설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었다.



..... 나라도 어떻게 나서야 하나?



기억 - ..... 저기.... 내일 뭐 할 거야?


민아

- 응? 음... 그러니까... 아!


예전에 갔던 고아원 있지?


거기 가지 않을래?



기억 - 응? 내일이 무슨 날이었나?


민아

- 꼭 무슨 날이라야 가는 건 아니잖아.


방학 땐 거의 매주 가거든....


기억이 가면 애들도 좋아할 텐데.



조금은 갑작스러운 제안이긴 했지만


이전에 갔던 봉사활동에서


아이들과 제법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만큼


딱히 거절할 이유 같은 건 없었다.



기억 - 그럼 그러자. 한나도 같이 가는 거지?


한나

- 저야 뭐 언니가 가면 가야죠.


잠깐..... 이번엔 아닌가?


둘만의 오붓한 시간이라도 보내다 올래요?



민아 - 또, 또, 또!


한나 - 아씨! 이번엔 또 왜?! 뭔 말을 못하겠네.


민아 - ....... 그래, 넌 가지 마.


한나 - 뭐? 나 혼자 집에서 뭐하라고?


민아 - ...... 게임기 있잖아!



어쩐지 점점 좋지 않은 쪽으로 나아가는 분위기에


난 조심스레 두 사람을 말리려 했다.



기억 - 저..저기, 싸우지 말고....


민아 - 네가 어영부영 자꾸 받아주니까 이렇게 된 거잖아!


한나 - 오빠는 빠져요!


기억 - ...아....네.



깨갱....




다음날 아침.


결국 우린 함께 고아원으로 향했다.


아직 서로 기분이 덜 풀린 듯한 민아와 한나 사이에서


난 어제 집으로 들어가지 않은 걸 다시금 후회했다.



민아 - 너 애들한테 쓸데없는 장난치지 마.


한나

- 언니는 내가 무슨 변태야?


어린애들한테 손을 데게?



민아

- 꼭 손을 덴다는 소리가 아니라


괜히 야시꾸리한 농담 같은 거 하고 그러지 말라고!



한나 - 야시꾸리? 어머나? 그게 무슨 뜻이야?



지나친 흥분으로 인해


의미 불명의 비속어까지 튀어나오기 시작한 민아.


어떻게든 말려야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어제 밤의 일갈을 생각하면 감히 못 끼어들겠다.



잠시 후 도착한 고아원.


운동장엔 아이들이 모여 축구를 하고 있었다.


입구를 들어서는 우리의 모습에


아이들은 잠시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더니


이내 반가운 얼굴로 뛰어왔다.



- 민아 누나~!


- 민아 언니~.


- 돌프 형아!



..... 난 결국 돌프형으로 굳어지는 걸까.



비록 루돌프일망정 나를 반겨주는 아이들의 환대에


난 제일 앞서 달려온 한 아이를 안아들었다.


이 아이 이름이... 철수였나?



기억 - 으쌰.... 잘 지냈냐?


철수 - 응, 돌프형! 녹용은?


기억 - 응? 녹용? .... 산타 할아버지가 몸보신 하러 가져갔어.


철수 - 아~. 아깝다.



뭐.... 뭐가 아깝다는 거냐 너는.



한나 - ......



민아와 내가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동안


꿔다놓은 오리 알 마냥 공중에 떠버린 한나.


뒤늦게 그녀의 존재를 깨달은 민아가


아이들에게 한나를 소개해주려 할 때


철수가 그녀를 가리키며 물었다.



철수 - 돌프형아! 저 아줌마는 누구야?



쿠궁.....


감히 그 뒷감당을 어찌할지 알 수 없는 폭탄발언에


한나의 표정이 굳어졌다.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긴 민아도 마찬가지.



기억 - 으....으응. 민아 누나 동생이야.


철수 - 에에~ 거짓말. 저 아줌마가 어떻게 동생이야.


기억 - 그게... 어쩌다보니 그렇게 됐어.


민아 - 풋...



처음엔 내심 당황했던 민아였지만


어제 밤부터 둘 사이가 몹시 안 좋았던 만큼


어느새 쌤통이라는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한나

- 호..호호호호. 네가 아직 어려서


내 다이너마이트한 매력을 몰라보는 구나.



철수

- 다이너마이트? 그거 폭탄이잖아!


에에~~ 폭탄이다~!! 도망가자~!!



철수는 그렇게 말하며


내 품에서 뛰어내려 아이들과 함께 도망치기 시작했다.


생각지도 못한 반격에 결정타를 맞아버린 한나의 얼굴에


그녀의 손상된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났다.



민아 - 아하하하.... 애들이.... 장난이 심해서....



민아는 뒤늦게나마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아이들의 편을 들어 보았지만...



한나 - 이 싸가지가..!! 너 거기 안 서~!!!



한나는 이미 저만치 도망가는 아이들을 쫓아 달려가고 있었다.



늦은 저녁 무렵에야


우린 활동을 마치고 고아원을 나섰다.


입구까지 배웅을 나온 원장님과 아이들은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손을 흔들어 주었다.



민아 - 그럼 이만 가볼게요.


원장님 - 예, 늘 고마워서 어쩌죠?


민아 - 저희가 좋아서 오는 건데요, 뭘....



민아가 원장님과 인사를 나누는 사이


아이들 틈에 있던 성희라는 아이가 내게 소리쳤다.



성희 - 돌프 오빠! 나 크면 돌프 오빠랑 결혼할 거야!


철수 - .... 바보야, 돌프형아는 민아누나랑 결혼할 거랬잖아.


성희 - 아니야! 사랑은 움직이는 거랬어!



오늘따라 폭탄발언이 많이 나오는 구나.


난데없는 성희의 발언에 위기감을 느꼈는지


어느새 내 옆으로 다가와 선 민아.


8살 꼬마의 당돌한 도전에


뭐라 말 못하고 어색한 웃음을 짓고 있는 그녀의 표정엔


제법 복잡한 심경이 교차하고 있는 듯 했다.



철수 - 민아 누나가 얼마나 예쁜데 돌프 형아가 움직이냐?


성희

- 나도 12년만 지나면 민아언니만큼 예뻐질 거야!


가슴도 언니보다 훨씬 커지고!



8살 꼬마한테 얕잡아 보일만큼


민아 가슴이 작았었나....



미처 감정을 수습하기도 전에


강력한 후속타를 맞아버린 민아는


띵한 표정으로 선희를 향해 뭔가 말을 하려 했지만


한나가 나서는 게 조금 더 빨랐다.



한나

- 미안하지만 어쩌지?


언니 다음 후보론 내가 이미 등록했는데.


다이내믹한 몸매로 승부하긴 좀 힘들지 않겠어?



한나 특유의 가슴을 활짝 편 당당한 자세.


저 자세는 남성들에겐 호감도 상승을 일으키지만


같은 여성에겐 강력한 심리적 압박효과를 주는 것 같다.



성희

- 나.... 나도 12년만 지나면


다이내믹한 몸매가 될 거야!!



한나

- 호호호, 그래. 에어로 다이내믹도(Aerodynamic)


다이내믹이라면 다이내믹이겠지.


아무것도 걸릴 것 없는 미끈한 유선형.


난 12년 전부터 이미 남다른 가능성을 보였단다.



성희 - 으.....으.... 으아아아앙!!!


철수 - 앗! 성희야! 이잇... 이 가슴 대마왕!!


한나 - 오홋홋홋!



과연 성희가 한나의 말을 다 알아듣고 상처를 받은 걸까.


아니면 단지 그녀의 분위기에 눌려 좌절한 걸까.


눈물을 흘리며 뛰어가는 성희를 좇아가는 철수의 모습에서


어쩐지 나와 비슷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민아 - 에어로 다이내믹....



그리고 한나의 떠나갈 듯한 웃음 소리 뒤로


조용히 그녀의 말을 되뇌고 있는 민아.


.... 한나의 말에 상처를 받은 건


비단 성희만이 아닌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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