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웃고 넘어가자는 생각에 20년전의 야그를 하겠습니다.
촌놈이 취직하여 서울에 발을 담그고 살면서 겪은 황당하고도 조금은 우스운 일이랄까....
정신없고 긴장의 연속인 회사 신참시절입니다.
입사한지 10개월 즈음인가 되었을 것입니다.
점심은 항상 그렇듯이, 인근 식당에 가서 부장님과 여럿 윗사람들이 "가자!"고 하면 그때서야 싫든 좋든 따라가야 했습니다. 그 당시의 분위기는 부서의 부장이 왕인 시절입니다.
지금의 젊은 사람은 잘 이해가 가시질 않겠지만, 회식도 사전 예고식이 아닙니다. 그날 담당과장에게 통지만 하면 모든 부서원 사람들은 선약을 취소하기하기 위해, 집에 알리기 위해 전화통이 불날 정도입니다. 상상이 가시겠습니까? 그 당시는 가능한 시절입니다. 무시무시한 전대가리 시절이니까요.
사건의 그 날도 우르르 떼지어 부장님이 좋아하는 메뉴가 즐비한 식당으로 몰려갔습니다. 항상 그랬듯이 부장님이 앞서고 그 좌우로 과장님들이 경호원처럼 붙어서 담소(?)를 하고 과장진급 반열에 접어드려는 고참대리들도 또 그 옆에 도열하여 열심히 맛장구 치면서 앞서고, 우리네 신참(1,2년 선배 포함)들은 눈치껏 보폭을 맞춰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뒤에서 따라가는, 정말 군대식 분위기가 서려있었습니다.
들어가면 벌써 코에 익은 음식냄새와 주변에 많은 손님으로 복작거려습니다. 그 당시 저의 나이는 20대 후반으로 정말 요즘 젊은이 답게 톡톡튀는 야생마같았는데..... 이런 냄새를 좋아할리가 없죠.
입사한 후, 매일매일을 군대신참처럼 참으로 눈물께나 쏙빠지는 시절이라 그 패기는 사라지고 소금뿌린 배추김치처럼 추~~욱 쳐진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어찌 좋다싫다 가타부타 입에나 올리겠습니까?
그 식당주인 아줌마! 알아서 자리 다 만들어 놓습니다.
전 가능한 가장 구석진 곳에 가부좌틀고 앉아 윗사람들의 식사속도를 맞추면서 맛도 모르고 배만 채우고 있는거죠.
한 번은 멋도 모르고 식사가 좀 늦는 나로서는 윗 사람의 눈치도 보지않고 먹다보니 나만 빼고 모두 식사를 완료하고 빤히 나를 쳐다보지 않겠습니까? 급히 먹느라 혼쭐났습니다. 문제는 우리 왕같은 부장님이 식당문을 나서면서 "에이~"하는 한마디가 나의 심장에 대못을 치는 충격이 오더군요. 그 후부터는 눈치껏 먹었습니다.
각설하고,
그 날도 마찬가지로 아무 문제없이 그날의 의무방어전을 무사히 마치고, 마지막으로 나오는데 웬걸!
아끼는 구두, 산지가 만 하루도 지나지 않는 새신발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 날따라 그 식당이 복잡했고 우리팀이 가장 늦게 나왔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제일 늦은 게 아닙니까? 이리저리 찾아보니 저기 떠밀려 있는 헌 구두가 눈에 보이길래 그것이라도 먼저 신고 찾아볼 심산으로 눈을 부라리며 찾아보았지만 가출한 새구두는 영영보이지 않더군요.
주인 아줌마를 불러 신발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아줌마는 대수롭지 않게 말하더군요. "잘 찾아보세요."
한참을 찾고 있으니 밖에서 빨리 나오라고 하길래 문을 열고 신발이 없어졌다고 말하자, 부장님 들어오시더니만 "왜 신발이 없어져?" 라고 하시면서 식당 여주인과 눈을 마주치면서 물음에 답하기를 기다리더군요. 그러자 여주인은 "글쎄요, 다른 손님이 신고 가셨나?" 우리 부장님은 "그럼! 할 수 없지""이봐 그냥 가지. 다음에 잘 찾아봐"
뭐 눈치가 군대밥과 10여개월의 회사 신참밥을 합쳐 고단수인 저는 그 관계의 오묘함(?)에 포기를 하고 사무실로 돌아왔습니다.
점심을 조금 지나니,
우리과에서는 유일한 총각인 나에게 지방으로 출장명령을 내리는 게 아닙니까?
그때는 오히려 출장가는게 숨통이라도 풀릴 것 같아 좋다는 표현을 하지 못하지만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환호했습니다.
지방에 소재한 공장에서 근무하는 입사 동기생에게 연락을 하여 모처럼 회포도 풀고 그간에 쌓였던 스트레스도 조금은 풀렸습니다. 상상이 가시겠죠?
중요한 것은, 그 친구가 기거하는 총각들의 사원주택에 1박을 하고 늦은 아침에 일어나 나가려고 하니, 제가 귀신에 홀렸는지, 신발장에 신발은 도통 눈에 보이지 않고 슬리퍼만 있기만 하였습니다. 눈을 비비고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고 주위에 물어볼 사람도 없어 단념하기로 하고 그 중 맘에 드는 슬리퍼를 신고 나와버렸습니다. 정장 차림에 007가방을 들고 슬리퍼 신은 젊은 사람을 한 번 상상해보시라. 다행히 사람만나서 상담하고 처리하는 일은 전날 끝내버렸고, 몇 군데 둘러 서류만 챙기면 되길래, 급한대로 택시를 타고 돌아다녔습니다. 순간 슬리퍼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가끔씩 쳐다보는 사람들의 시선도 인식 못한체, 출장의 목적을 다 이루고 역에서 서울행 열차표를 끊고 기다리고 있다가 순간 생각이 돌아왔습니다. 내가 슬리퍼를 신고 있구나하고....
시간적으로 신발을 구입기에는 짧아 그냥 얼굴에 철판을 깔기로 했습니다.
그럭저럭 서울역에 도착하여 택시장에 바로가서 택시를 타고 자취방으로 직행하였습니다. 피곤도 하고 짜증이 한껏나 아무 생각도 하기 싫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