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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들 안방극장 '접수'

김효제 |2002.09.25 08:40
조회 118 |추천 0

방송3사 건달드라마 경쟁

 

스크린을 점령한 ‘주먹’들이 브라운관까지 점령한 태세다. 방송 중이거나 방송 예정인 밤 10시 이후 드라마들을 살펴보면 ‘건달’과 ‘주먹’이 어느 때보다 많이 눈에 띤다.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SBS TV 시대극 <야인시대>는 소재부터 종로를 중심으로 한 파란만장한 주먹들의 이야기다. 같은 방송사의 <정>에서는 김석훈과 류수영이 돈과 여자 문제를 둘러싸고 주먹 다툼을 자주 벌인다. 휘황찬란한 나이트클럽 불빛 아래 쇠파이브까지 등장한다. 또 <라이벌> 역시 주인공 김재원의 ‘직업’이 깡패다. 드라마 전개와 상관 없지만 KBS 2TV 미니시리즈 <천국의 아이들>의 주인공 중 한 명인 이민우(양길 역)는 ‘패밀리’와 늘 붙어 다닌다. 최근 방송을 시작한 MBC TV 미니시리즈 <리멤버>의 주인공 박정철(동민 역)은 주먹을 잘 쓰는 검사다. 소탕하러 간 조폭들과의 화끈한 액션신이 브라운관을 달군다.

 

▲ ‘대한민국=조폭 공화국?’

지난 해 한국 영화 부흥의 일등 공신은 단연 조폭이었다.

<친구>(전국 820만여 명)를 시작으로 <파이란> <달마야 놀자> <두사부일체> <신라의 달밤> <조폭 마누라>까지 다양한 장르의 조폭 영화들이 뒤를 이었다. 최근 개봉한 <패밀리> <보스상륙작전> <가문의 영광> 등 올해도 그 흐름은 이어진다.

스크린을 통해 입증된 조폭의 ‘흥행력’을 브라운관이 가만 놔둘 리 없다.

삼각관계와 신데렐라식 구도 등 식상한 드라마 포맷에 ‘시원한 볼거리’와 ‘극적 긴장감’을 주는 ‘조직 이야기’는 딱 들어맞는 양념이다. 밋밋하고 말랑말랑한 드라마에 힘과 매서움이 덧붙여졌다.

 

▲ <피아노>가 <친구> 구실

올 1월 종영된 SBS TV <피아노>는 이런 흐름의 물꼬를 튼 드라마로 꼽힌다.

80년대 중반 부산 부둣가를 근거로 밑바닥 인생의 가슴 찡한 부성애을 그린 작품. 비틀린 삶을 지탱하는 아버지와 아들의 직업은 조폭이었다.

소재의 선정성과 매회 나오는 폭력 장면 때문에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평균 24.4%의 높은 시청률(닐슨미디어리서치 조사)과 평단의 찬사(백상예술대상 드라마 부분 작품상)를 받았다. 조폭 아버지 역을 맡았던 조재현은 스타덤에 올랐다.

그 덕분에 스크린에서 한건 올렸던 조폭들의 브라운관 진출이 한결 탄력을 받았다. <피아노>가 브라운관의 <친구> 구실을 한 셈이다.

 

▲ 영화와 TV 주먹의 차이

TV는 영화와 다르다. ‘18세 이상 관람’ 딱지를 뗀 ‘주먹’만 브라운관 입장이 가능하다.

선혈 낭자한 폭력은 일단 안 된다. 조폭 영화의 흥행 코드 중 하나였던 ‘진하고 통쾌한 욕지거리’도 불가능하다.

드라마의 조폭은 배경으로 활용된다. <피아노>의 밑바닥 인생을 표현하기 위해, <정>은 ‘양아치’임에도 가족에 대한 사랑은 누구보다도 크다는 아이러니를 설정하기 위해 조직의 힘을 빌려왔다.

코믹한 상황 연출을 위해 조폭 코드를 빌린 것은 <천국의 아이들>. 어깨 힘 넣고 “형님” 하고 고개 숙이는 어리숙한 분위기가 웃음을 낳는다. <야인시대>와 <리멤버>는 드라마 스토리상 ‘주먹’의 등장을 피할 수 없다.

 

▲ 문제는 없는가

‘상상력의 빈곤’이나 ‘소재 편의주의’라는 비판을 받기 쉽다. 영화계에서도 조폭 바람이 한국영화의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분석이 있다.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폭력 장면 또한 유행 따라하기의 혐의가 짙다.

<피아노>에서 조폭의 삶은 밑바닥 삶의 속살을 드러냈다. 하지만 최근 드라마에서는 ‘극단적 갈등’과 시청률을 잡는 ‘액션신’만 남았다. 조폭을 통해 살펴 본 ‘삶의 속살’이 사라지고 있다. <피아노>가 성공했던 건 조재현이 조폭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피아노>에서 화제가 됐던 ‘이복 남매의 사랑’이라는 설정이 최근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했던 것은 조폭과 함께 소재주의의 한계를 드러내는 단적인 사례다.

또한 이런 드라마들은 어김없이 주말 오후에 재방송돼, 폭력신이 모든 청소년에게 노출된다는 점에서도 문제다.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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