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천 홍원항 부둣가 노점에서 바다 풍광과 함께 전어요리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전어, 낙지, 왕새우(대하) 등이 요즘 제철을 만났다. 오죽하면 가을 전어, 가을 낙지라고 했을까. 각 지역에서도 전어축제, 왕새우축제 등 다양한 행사를 마련해 여행객맞이에 나섰다.
지금 서해안엔 비릿한 바닷내음 속에 고소한 구이향과 펄펄 뛰는 생명력이 어우러지고 있다.
●태안 왕새우축제엔 왕새우가 없다
지난 4일 오후 충남 태안군 창기리 백사장항. 마을 어귀에서부터 새우굽는 고소한 냄새가 후각을 뒤흔들었다. “싱싱한 새우가 키로(1㎏)에 2만7000원!” “좀 많이 줘요.” 흥정소리가 활기 넘친다.
거무스름한 새우는 익으면서 색깔이 빨갛게 변하고, 기다리는 사람의 입안엔 군침이 괸다. 익은 새우를 매콤달콤한 초장에 살짝 찍어 한입에 넣고 사람들은 “쫄깃하고 고소한 게 정말 맛있다”고 입을 모았다. 간혹 껍질을 벗겨 회로 먹는 이도 있었다. 새우는 단백질과 칼슘이 풍부한 영양식품이다.
자연산을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수협 공판장(041-673-5040)이었다. 매일 새벽 40~50척의 새우잡이배가 근해로 나갔다가 오후 3~4시께 돌아온다. 그러나 조업량이 크게 줄어 4일 현재 ㎏당 값이 6만2000원, 다음날엔 6만7000원으로 올랐다. 서민들한텐 ‘그림의 새우’인 셈이다.
자연산 왕새우는 색깔이 투명하고, 몸집이 양식보다 훨씬 크다. 자연산에 비해 양식산은 엄밀히 말해 ‘중하’, ‘소하’다. 그래서 자연산 대하는 입안 가득 차오는 풍만감과 쫄깃 단단한 살맛을 더 크게 즐길 수 있다.
백사장항에선 오는 17~21일 왕새우축제를 연다. 추진위원장 염홍섭씨는 “그동안 자연산 축제만을 고집했는데, 2~3년새 조업량이 급감해 올해는 양식산을 겸하지 않을 수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어민들은 천수만 방조제 공사, 육지의 오폐수 유입 등을 왕새우 급감원인으로 들었다. 결국은 인간의 탐욕 탓이다. 또다른 새우 명소로 알려진 인근 홍성군 남당항에도 자연산 왕새우는 없었다.
그래도 백사장항 주민들은 “죽은 자연산보다야 산 양식산이 훨씬 낫지”라고 했다. 누구 노랫말마따나 ‘짜가가 판치는 시대’에 이를 위로삼는다면 양식 새우맛이 한결 나을 것이다.

△ 위부터 대하, 전어구이, 연포탕.
●가을 전어는 가정 화목의 일등공신
‘가을 전어 대가리엔 참깨가 서말.’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나오는 말로, 가을철 고소한 전어맛을 표현한 것이다. 또 ‘가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며느리도 돌아온다’는 말도 있다.
‘대체 어떤 맛이기에’라며 궁금증이 생긴다면, 충남 서천 홍원항을 찾아가면 된다.
홍원항에선 고깃배 40여척이 2척씩 한쌍을 이뤄 뭍에서 10㎞ 이내 근해에서 전어를 떼로 잡아 매일 싱싱한 전어를 공급하고 있다. 전어는 뻘을 먹고 사는데, 바닷물에서 나오면 이틀안에 죽기 때문에 양식이 불가능하다.
먹는 방법은 회, 회무침, 구이 등 세가지다. 탕을 끓이면 맛이 느끼한 데다, 살이 흐물흐물 퍼져버린다.
뼈째 가늘게 썰어 내는 전어회는 초장에 살짝 묻혀 입에 넣으면,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진다. 매콤달콤한 초장과 야채 맛을 함께 즐기고 싶다면 회무침을, 바삭바삭 고소한 맛이 좋다면 구이를 선택하면 된다.
까실까실한 맛이 싫다면 요리할때 뼈를 발라내달라고 주문하면 된다. 수분 71%, 단백질 25%로 이뤄진 전어는 지방이 2%밖에 되지 않는 다이어트식품이다. 전어는 첫눈이 내리면 뼈가 억세지고 맛이 떨어진다. 10월말까지가 제철이다.
홍원항엔 마을 이장이 운영하는 홍원항횟집(041-953-3405) 등 4곳의 식당이 있는데, 전어는 요리법이 간단해 집마다 맛의 차이가 크게 없다. 한접시 2만~2만5000원. 승용차로 5분거리에 있는 마량포구에도 전어요리집이 많다.
●가을 낙지, 그리고 넉넉한 남도 인심
‘봄 주꾸미, 가을 낙지’다. 1년생인 낙지는 봄에 우리 근해에서 태어나, 이듬해 죽는다. 9~10월에 힘이 좋고 활동력강한 ‘청년 낙지’를 즐겨먹을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산어보>엔 ‘말라빠진 소에게 낙지 서너마리만 먹이면 금방 힘을 얻는다’고 적혀있다.
서해안고속도로 끝머리 목포의 북항엔 지금 낙지의 생명력이 꿈틀댄다. 압해도, 비금도 등으로 가는 연안 여객선 선창가 뒤편에 횟집 27곳, 노점 70여곳이 성업중이다.
북항은 인근 신안군의 뻘에서 잡아오는 낙지의 최대 집산지다. 지난 6일 현재 1만원에 세발낙지 4마리, 중낙 3마리, 대낙 2마리 정도였다. 뚱보횟집 주인 김순태(55)씨는 “지난주만 해도 세발낙지가 6~7마리였는데, 어제그제 날씨가 안좋아 낙지값이 많이 올랐다”고 했다. 낙지가 가장 많이 잡히는 때는 음력 9월8일~15일(올해 양력 10월13~20일) 사이다.
산낙지 먹는 것을 잔인하다고 여기는 사람은 남도땅을 밟을 자격이 없다고 했던가. 세발낙지를 나무젓가락에 돌돌 감아 시큼한 초고추장에 찍어 한입에 먹는 진풍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얼큰한 국물맛과 담백한 낙지 살이 좋다면 연포탕(3만원)이 제격이다.
노점은 선택의 폭이 넓고 직접 고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현장에서 먹으려면 초장값 4000원을 추가부담해야 한다. 횟집의 경우 10여년 전통의 진양횟집(061-242-2115)을 비롯해 뚱보횟집(061-244-4508), 홍도횟집(061-244-1441) 등이 있다.
살때는 흥정을 잊지말자. 모질지 못한 남도의 인심 때문인지, 가게마다 손님의 ‘합리적인’ 흥정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지 못한다.
●김장걱정 더는 강경 젓갈
서천 전어를 맛본뒤 시간이 나면 논산시 강경읍에 들러 김장채비를 할 만하다. 조선조 3대 시장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유서깊은 이곳은 젓갈판매상 70여곳이 밀집된 젓갈 명산지중 하나다. 오는 12~18일 젓갈축제가 열린다.
한겨레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