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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여옥의 TV읽기] ‘야인시대’가 넘어야 할 ‘벽’

임정익 |2002.10.16 13:05
조회 321 |추천 0

'야인시대’ 바람이 거세다. 낡은 표현이지만, 진짜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야인시대’에 매혹돼 있다. 그곳엔 요즘 보기 드문 ‘진짜 남성’들이 나온다. 약자를 지켜줄 수 있는 우람한 근육과 여자들이 까무라칠 배짱과 너그러움이 있는 남자들이다. 함량미달인 영화와 드라마의 홍수 속에 ‘야인시대’는 바람을 일으킬 요건을 풍부히 갖추고 있다.

 

우선 작가 이환경의 프로페셔널 정신이다. 나는 TV 드라마 작가들을 존경도 하고 동정도 하고 그리고 한심해 하기도 한다. 한국의 방송작가 중 자신의 원래 의도대로 드라마를 이끌어갈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작가의 의도는 시청률 싸움과 사공 많은 방송사 구조, 변덕스러운 시청자들의 딴죽걸기로 나달나달 누더기조각이 되고 만다. 이에 대응할 배짱과 뚝심은 커녕 탄탄한 실력마저 갖추지 못한 작가들이 적지 않은 게 현실이다. 그런 우리 상황에서 이환경은 자신의 의도를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는 드문 작가이다. 개인적으로는 그가 훌륭한 추리소설 작가로 남길 원했지만, 최근 그의 작품을 볼 때 그 어떤 길도 좋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둘째는 연출자다. 장형일 PD는 TV 연출이라는 조그만 새장에서 뛰쳐나왔다. 적어도 볼거리 많은 ‘테마 파크’엔 도달한 느낌이다. 여기에 더해, 연극과 영화판에서 수혈한 혹은 그 세계를 거친 참신한 연기자들이 경합하듯 펼치는 ‘주연급 연기’가 더 없이 맛깔스럽다. 주인공 안재모와 이원종, 박준규는 TV 드라마에서도 카리스마적 연기가 충분히 먹힌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런 미덕(美德)들에도 불구하고 ‘야인시대’는 주위 도처가 지뢰밭이다. 우선 TV에서 보여줄 수 있는 폭력의 정도이다. 영화는 ‘대부’나 ‘LA 컨피덴셜’처럼 자유롭게 폭력의 미학을 보여줄 수 있다. 그러나 ‘가족 매체’인 TV는 아무리 등급제를 둔다해도 절대 폭력을 미화할 수 없다. 일제 강점 아래 법을 우선한 폭력의 응징을 얼마나 슬기롭게 다루느냐 하는 게 너절한 ‘조폭 영화’들과 ‘야인시대’가 차별화되는 관건일 것이다.

다음은 인물에 대한 역사적 해석이다. 실존 인물에 대한 ‘평가’는 매우 엄격한 문제이다. 과연 김두환은 무결함의 독립투사이며 애국적 인물인가? 이후 그의 정치적 활동은 여전히 ‘영웅신화’의 대상인가? 작가를 비롯한 제작진이 심각하게 고민하고 또 고민할 문제가 아닐 수 없다.

 

TV가 바로 살아있는 역사교과서가 된다면, 역사적 인물에 대한 정확한 잣대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한국사회의 발전에 대한 기여이다. ‘야인시대’에 거는 기대가 크기에 그 높은 벽에 도전하길 기대한다.

 

 

 

조선일보 : 전여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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