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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어디엔들 살 수가 없을까?

kkil길 |2002.12.23 00:00
조회 205 |추천 0
원래 고향이 시골이고, 농부의 자식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가슴속에 향수를 간직하고 있다면 어릴 때 농촌의 생활 속에 잊혀진 것들이다.
겨울 이맘때면 자치기와 팽이치기를 하며 놀았고 썰매를 탔다.
썰매는 판자를 잘라 굵은 철사로 양옆에 두개의 골을 만들어 그 위에 올라타서 못을 박아만든 꼬질 대로 얼음을 지치면 미끄러지듯 얼음장을 스치는 것이다.
스케이트란 말은 들어보지 못하고 자랐다.
초등학교3-4학년 때인가? 동네 부잣집형이 스케이트를 사 가지고 와 멋지게 타는걸 보곤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내가 스케이트를 신어본 경험은 단 한번뿐이다.
어른이 다되어 스케이트장에서 빌려 신고 얼음을 지치다 넘어지고 다시는 신지 않았다.
농촌 생활은 너무나 빠듯해 우리 집 여러 식구 밥을 먹기에는 그리 넉넉지 못했다.
그래서 겨울이면 뒤뜰에 묻어놓은 김장 무우를 까먹는 게 간식이었다.
가을에 도토리를 주어다놓으면 어머니는 그것을 가루로 내어 보관했다가 반가운 손님이 올 때마다 별식으로 묵을 쑤었다.
온 동네엔 울타리 있는 집은 거의 없고 삽작대문을 지친 것이 다였다.
방물장수 아주머니들이 오면 밥 먹여주고 잠재워주는 넉넉한 인심이 있었다.

도시화되어 가는 농촌으로 돌아왔다.
농촌에도 있는 것은 모두 있다.
냉장고 세탁기며, 전자제품 역시 모두 갖출 수 있어 맑은 하늘, 맑은 바람맞으며 먼 산을 고향처럼 바라보는 것을 잊고 산다.
도시에서처럼 휘황한 거리는 없어도 농촌에서 사는 재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은 그래도 도시보다는 넉넉한 사람의 마음이다.
도시에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의 무표정한 모습보다는 시골 오일장에 가면 사람 사는 맛이 난다.
세끼 밥 먹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은 언제나 주변에 산재하여 있어 할 일 많은 젊은 시간이 아니라면 은근한 세월을 음미하기엔 농촌의 느린 분위기가 좋다.
재미로 세상을 살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잊혀져 가는 농촌의 현실을 몸으로 이해하기만 하면 해결된다.
일일이 따지지 않고 그러려니 하며 한 템포 늦추고 살면 그만이다.
지금 당장 숨넘어가고 바쁜 게 있을 수도 있겠지만 바라보는 모든 게 자연의 이치대로 흘러가기에 그 흐름에 조바심만 내지 않으면 그만이다.
휘황한 색깔의 삭막한 도시에다 비하랴...
아직은 살만한 곳, 농촌은 우리의 가슴에 남아있는 유일한 안식처다.
도시에 사는 친구나 친척들이 농촌에 오는 것을 꺼리는 이유중의 제일먼저 꼽는 것이 문화적 체험의 결여이다.
문화를 즐기지 못하는 것이라지만 농촌엔 농촌다운 문화의 체험이 있다.
농부들이 농사짓는 것을 몸소 체험하는 것도 봄 들녘의 양지쪽에 바구니를 들고 나물 캐는 것도, 여름냇가에 송사리 잡는 것도, 가을들녘에 참새를 쫓는 일도 모두 문화의 체험이다.
영화나 연극이나 음악회를 다녀야 문화를 느끼는 것만이 아닐진대, 나름대로의 가슴에 닿는 체험은 농촌이라 해도 그 나름대로의 수많은 것들이 우리를 기다린다.
요즘엔 도로가 확충되어 도심에 병원을 가려해도 한시간이면 도착한다.
그래서 농촌생활 중에 의료 혜택 역시 문제지만 그것 역시 그리 크게 걱정할 일은 아니다.
사람다운 사람들이 정을 나누며 정다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사는 농촌은 우리의 영원한 보석이다.
공해에 찌든 도심의 나무아래서 느끼는 바람이 아니라, 저 산 넘어 에서 불어오는 맑고 시원한 바람은 마셔보면 안다.
무수한 들꽃과 그 꽃들이 주는 감동은 아름다운 장미 빛보다는 더욱더 감미롭다.
소박한 사람들의 표정과, 만들어 모양을 내진 않았어도 검은 주름이 진 얼굴이 더 정겹다.
칠하고 만들어지고 가려진 얼굴보다 맨 얼굴의 소박하고 투박한 손은 그 의미가 다르다.
우리가 김치를 먹지 않고 살 수 없듯이 농촌을 잊고서는 살 수 없는 것이다
된장 맛 같은 우리들의 고향은 어느 누구의 가슴에서도 살아 숨쉬는 땅이다.

원래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는 농부였고, 그 아버지들이 몸으로 자연과 벗삼으며 살던 우리가 간직해야할 마지막 보석은 지금 남아 우리를 기다리는 농촌들녘과 아름다운 산하다.
누가 농촌을 두려워하는지 모른다.
농촌에도 얼마든지 사람들이 살며 사는 재미가 새록새록 살아난다.
어제 울던 부엉이 소리가 오늘밤에도 들릴 것이다.
부엉이도 이름 모를 자연의 소리도, 함박눈 내리는 고향 들녘에 희디흰 순백의 빛에 언제나 향수 같은 그리움이 있다.
나는 농촌에 살며 이렇게 누리며 산다.
누가 농촌으로 오길 두려워하랴...
다만 농촌사람들의 삶을 도시에 사는 사람과 경제적인 면에서만 비교하기 때문이다.
돈만이 전부는 아니다.
우리는 서로 나누는 정을 더욱 더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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