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 글 참 잘 읽었습니다... 정말 고생도 많으셨고...
열심히 사시는 모습 너무 보기 좋고 뿌듯합니다...
지금 스물이면 저보단 4살이 어리시네요...
님글을 보고 백번 천번 부끄러워야 하지만...
제가 너무 이기적이라 그런지... 여전히 제 부모님이 참 밉네요...
아버지가 너무 밉네요... 참...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참 불쌍한 인생을 살아오셨는데 말이죠...
제가 너무 힘들다보니... 이해는 할려 노력해도 안될땐 어쩔수가 없네요...
저는 14개월만에 교통사고로 친엄마를 잃었습니다...
아버지가 음주운전을 하시는 바람에 어머닌 돌아가시고 아버진 근 3개월을
의식불명으로 계셨다 깨어나셨다더군요... 5
살때까지 할머니와 이모들 고모들 손에 자랐습니다...
늘 엄마의 빈자리를 느끼면서 왜 엄마가 없는지 궁금해 하면 미국에
다리고치러 갔다며 열밤자면 엄마가 돌아온다는 어른들의 말을 믿으며 살았죠...
5살 되던해 새엄마가 생겼습니다... 다들 제게 친엄마라고 했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어린나이에도 사람들이 하는 말에 새엄마라는걸 알게 됐죠...
새엄만 구박도 많이 했고 손찌검도 심했습니다...
어른들 앞에서는 제게 세상에 둘도 없을만큼 잘해주는 계모로 보이고 돌아서면
차갑고 싸늘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전 없던 엄마가 생겨서 너무 좋았습니다...
늘 눈치 보며 살고 거지처럼 돌아다녀도...
동네 북처럼 맞아도 온갖 구박을 다들어도... 사람들 앞에선 엄마였기에... 사랑했습니다...
새엄마와 아빠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아빠는 친엄마가 돌아가신후 술로 살았고 알콜 중독에 당뇨병을 앓았습니다.
눈이 나빠져서 하시던 일도 그만두고 돈을 벌어도 집에 제대로 가져오는 날이 없었습니다.
새엄마완 매일 밤낮을 칼부림까지 하며 싸우고
초등학교 2~3학년이던 전 어린 동생들을 데리고 엄마나 아빠가
죽을까봐 두려움에 울며 보냈습니다...
정서 불안이 심했습니다...
새엄마는 아빠와 결혼해서 아들둘 딸하나 이렇게 셋이나 낳았습니다...
셋째와 막내는 아버지에게 임신한 사실도 숨기고 거짓말까지 하며 낳았습니다.
술과 담배로 그리고 죽이내 살리내 하며 싸우시던 아버지는 제가 초등학교 6학년때
미국으로 떠나셨습니다.
미국에 고모가 한분 계셨는데 도와주셔서 아버지를 미국에 데려 가셨습니다...
저를 데리고 가려고 하셨지만 전 싫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뭐래도 전 새엄마라는걸 인정 하고 싶지 않아서 알면서도
모른체 부정하던 제게... 아버지 입으로 새엄마란 사실을 밝히셨고
제가 미국으로 가면 새엄마와 동생들은 버리겠단 식이었습니다...
새엄마가 좋진 않았지만... 전 동생들과 함께인게 좋았습니다...
제가 아버지를 따라가면 가족이 정말 없어 질까봐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남았습니다...
또 알고 싶어하지 않던 사실을 아버지가 직접 말해서 제가슴에 못을
박았단것도 너무 싫었습니다...
미국에 간 아버진 생활비를 보내시지 않아서 새엄마는 언제나 절 이용했습니다...
학비를 내야 한다면서요...
무조건 제 핑계로 돈을 보내라고 했습니다.
새엄마는 제가 친엄마 쪽 식구들이랑 연락하는걸 무척 싫어했습니다.
방학때만이라도 절 보고 싶어하시던
친외할머니가 제게 몇십만원씩 쥐어주던 돈을 챙겨받은 후부턴
방학만 되면 외할머니댁에 보내주었습니다.
외할아버지 장례식엔 보내주지도 않았습니다...
그래도 전 엄마한테 사랑받고 싶어서 노력했습니다...
동생들과 달리 차별받아도 동네 사람들이 넌 왜 안닮았냐는 말을 할때도...
왜 너만 구박 하냐는 말을 들어도 전 엄마를 원망 해본적이 없었습니다...
다른 엄마가 있어본적이 없어서 엄마가 원래 그런 존재인지 알았기 때문입니다...
중2때 다시 한국에 나오신 아버진 모아오신 돈을 술마시고 노는데
다쓰고 또 술로 세월을 보냈습니다.
집안은 다시 기울어졌고.. 새엄마는 남에게 돈을 빌리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어릴때 부산에서 살다가 담보로 잡힌 집을 엄마가 날려 먹고 인천으로
이사를 하게 됐죠.
인천에서도 엄마는 쉬지 않고 수많은 돈을 빌렸습니다.
치장을 하거나 명품을 쓰거나 그런사람은 절대 아니였습니다...
하지만 돈이 자꾸 새나가고 없었습니다...
나중에 알았지만 새엄마도 초혼이 아니었습니다. 그
전 남편에게서 난 자식이 둘이나 있었고..
아버진 돈이 다 그쪽으로 간것 같다고 했습니다...
고1여름 아버진 다시 미국으로 가셨고 저와 새엄마 그리고 동생들은
다시 술주정에 시달리진 않아서 좋았습니다...
정말 밤을 새우며 아버지와 주먹다짐으로 싸우기도 했고 잠도 못자고 학교에
가야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물론 7살때부터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며 살았지만...
고등학교때 정말 제일 심하게 시달렸습니다...
11살 9살 4살짜리 동생들과 칼로 위협 받으며 협박도 받아보고
맞기도 많이 맞았고 욕도 많이 먹었습니다...
새엄마는 어린 우리에게 거짓말을 시키는데 급급했고...
한때 전화소리에도 소스라치게 놀라며 노이로제에 걸렸었습니다.
지금도 전화기 별로 안좋아 합니다.
고1 겨울엔 전기 수도 보일러 심지어 먹는것 조차도... 모두 없이 살았습니다...
쌀 살돈이 없어서 학교에서 과자 한봉지로 끼니를 떼우고 그랬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친구들은 제게 군것질을 많이 한다며 면박을 주곤 했습니다...
라면 하나로 네남매가 나눠먹으며 살았습니다.
추운겨울 맨바닥에 잠바와 이불을 둘둘 말고 잠이들어야 했던때가 있었습니다..
.
새엄마는 결국 도망 치기로 했고 겨울방학이 끝나도 전 학교로 돌아갈수 없었습니다...
저와 동생들 모두 학교도 못가고 숨어지냈습니다.
더이상 견딜수가 없어 미국행을 택했습니다...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학비가 없던 제 사정을 담임 선생님이 아셔서 보조금받으면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그동안 새엄마는 미국에 있던 아빠에게서 제핑계로 돈을 챙겼습니다..
저희 친할머니한테도 저를 미끼로 돈을 요구 했습니다..
제 앞에선 아닌척 절위해 고생하는것처럼 온갖 쇼를 다하고서 이용해먹었습니다.
제가 아니였다면 아빠도 할머니도 새엄마에게 돈을 줄일은 없었으니까요...
친외할머니가 절 키우겠다고 했을때 새엄마는 펄쩍 뛰었습니다...
그게 다 돈때문이었단 생각을 하니 기가 찼습니다...
나중엔 절더러 전화해서 돈을 달라고 하라기에 아빠에게 가기로 맘을 먹었죠.
10살 12살 짜리 남동생들 둘을 데리고 가기로 했습니다.
혼자 가면 가족들이 완전 헤어질테니까요...
그리고 6년전 오늘 미국에 왔습니다...
영어한마디 못하고 향수병에 우울증에 정말 죽을것 같이
힘들어도 나아질거란 희망으로 살았습니다...
17살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고 동생들 둘 키우고 학교 다니고 일해서 돈 버는건 집에 다 보태고...
쉽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한국에서 처럼 술은 많이 드셨지만 때리거나 난리를 피시진 않았습니다...
그랫다간 경찰에 바로 잡혀가니까요...
하지만 석달에 한번꼴로 사고를 치셨습니다
생활비를 복권 긁는데 다쓰거나...술집에서 쓰고...
아니면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나 내고...
몇번은 걸리지도 않았습니다...
한번은 성추행 사건으로 법원에 또한번은 술집에서 난동피워서...
술집여자 몸에 손대서... 법원에 갔고 판사들이 아빠한텐 국선 변호사도 안줬습니다.
힘들게 벌어서 생활비 보태고 남은돈으로 착실히 모아 제 스스로 학비를 내며
2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었는데 모아놓은돈 아버지 변호사비로 다 날리고
휴학도 여러번 했습니다. 지금도 휴학 중입니다
이번엔 음주운전으로 제대로 걸려서 변호사비며 벌금이며 장난이 아닙니다
작년겨울엔 어디에 썼는지 이천만원 정도 빚까지 져서 달달이
이자만 20만원씩 내고 있습니다. 여기저기 외상도 많이 해놓고 지난 몇달은
일도 안하고 놀았습니다...
이제 동생들은 고2 중3인데 공부를 하는지 않하는지 관심도 없고
부모로서의 도리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저희 아버지가 삼대 독자라 오냐오냐 컸습니다.
사실 음식도 제일 잘하면서 자식들한테 따듯한 밥한끼 해먹일줄 몰랐습니다.
제가 학교에서 또는 일터에서 집에 늦게 오는 날이면 밤 11시가 다되도 손하나
까닥안하고 밥차려줄때까지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입도 정말 무지하게 까다롭습니다.
동생들 둘 키우는거 보다 아버지 수발 드는게 더 힘들었습니다.
집에 돈이 없어서 쩔쩔매고 아버지가 진 빚 때문에 또 휴학하고
돈을 벌기 시작했지만 제가 먹고 살려고 발벼둥 치는 사이에 아버진
어떤 여자랑 바람이 나서 집에 오지도 않고 일주일에 5일씩 집을
비우곤 했습니다...
제가 아직 어리고 딸이라서 그런지 친엄마도 죽게 하고 새엄마와
이혼도 하지 않은체 그것도 저와 동생들이 힘든시기를 보내고
돈도없는 상황에서 가장의 도리를 생각조차 안하고 여자와 만나 밥먹으러
다니고 놀고 한다는게 전 용납이 안됐습니다.
미국에서 외로우시겠단 생각 안한적 없습니다..
하지만 전 이때까지 먹고 사느라 연애한번 못해봤습니다...
또 그럴 여유도 없었구요.
하지만 정말 긴박한 상황에서도 책임감 없이...
자식들이 어찌 돼든 나몰라라 하는 아버지가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웠습니다...
솔직히 막말로 하자면 제동생들 저한테는 배다른 남매입니다.
지들은 엄마도 아빠도 다있는데..
배다른 누나인 제가 하고픈 공부도 못하고 젊은 시간을 이렇게 보내고
있는게 억울할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저말고는 친척도 없는, 있지만 아는척도 안하고 삽니다.
어쨌든... 너무 불쌍해서.. 또 부모가 없는 서러움이 뭔지 너무 잘알아서...
여지껏 뒷바라지를 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착하고 공부 열심히 하고 대학교 장학금까지 미리 받아놀만큼
듬직한 녀석들이라 힘들어도 고생하는 보람 있습니다...
저희가 미국에서 쌔가 빠지게 고생할동안 새엄마는 전화로 저희를 괴롭혔습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엄마가 걱정할까봐 힘든내색 절대 안하고 아파도 안아픈척하며
견디던 저희 에게 엄마는 언제나 힘들다는 말뿐이었고 막내가 학교를 못가고
있으니까 미국에 데려가라는 말만 했습니다.
돈은 없고... 막내와 전 11년 차이가 납니다.
미국에 오면 제가 또 그앨 키워야 하는데 그럼 전 정말 제인생이 없는겁니다...
새엄마는 저더러 막내까지 데려가서 키우라며 난리였습니다...
막내까지 미국에 보냐면 자긴 뭫라고 살건지 정말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동생들 한테 잘안해주면 죽여버린단 말까지 하고 제가 죽을만큼 힘들어서
정말 죽고 싶단 말을 해도 엄마는 늘 니가 죽으면 내 아들들은 누가 돌보냐며 혼을 냈습니다...
전화번호를 바꾸고도 싶었지만...
그래도 동생들한텐 친엄마이기에...
차마 그러진 못하고... 제가 전화를 받지 않았습니다.
5년내내 막내가 학교를 못간다는 사실에 큰언니로서 전 어떻게
하지도 못하고 힘들어 했는데... 1년전에 거짓말 이었던게 들켰습니다.
또 한창 사춘기인 동생들에게 새엄만 씻을수 없는 상처를 남겼습니다..
동생들은 제가 배다른 누나인지 몰랐습니다...
제가 새엄마와 사이가 나빠지고 동생들은 저와 사니까 절 더 따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먹고 살려고 남자들이 하는 힘든일도 마다 않고 일해서
돈벌고 하니까 고생하는줄 알고 고마워합니다...
그러니까 새엄마는 동생들한테 니누나가 친누나가 아니라며...
저와 동생들 사이를 이간질 시켰습니다...
정말 전 끝까지 동생들이 몰랐으면 했습니다...
사실을 아는게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알았기에.. 또 알게 된다해도 좀 더 큰후에...
이해할만한 나이가 되면 해주고 싶었는데...
새엄만 자기 자식들이 다치는것도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6개월이 넘게 녀석들은 저몰래 괴로워했습니다..
성적이 떨어지고 반항도 심해지고... 나중에 알고보니 새엄마 때문이 었습니다...
다 알고 난후 전 더 죽고만 싶었습니다...
녀석들 가슴에 난 상처가 어떤건지 너무 잘알기에...
마음 내킬때마다, 잊혀질만하면 몇달에 한번씩 전화
하는 새엄마가 너무 미웠습니다... 제가 잘키워서 대학보내놓으면 자기는
엄마니까 새끼들 덕보려 하는 심보가 너무 고약했습니다...
전화하면 동생들 한테 보고싶다... 사랑한다...엄마 잊지 않았지 라면서 늘 울고 불고...
얼른 성공해서 엄마 미국에 데려 가서 호강 시켜 달라는둥...
6년동안 늘 같은 소리만 합니다... 동생들은 질렸다고 합니다...
누나인 저도 손발이 부르트게 일하고 동생들 하고싶은거 다 시켜 주고
싶어서 저 사고 싶은옷 먹고 싶은것 안하고 해주는데..
부모인 엄마나 아빠는 해주는거 하나없이 괴롭히기만 하면서 어떻게 하면
나중에 자식덕보나 이런 궁리만 하니까 질린다고 하더군요...
그게 너무 빤히 보여서 몸서리가 쳐진데요...
전 미국이 너무 싫습니다... 절위해서 한게 아무것도 없었거든요...
동생들은 미국이 좋답니다... 없는 살림에 그래도 남들하는거 다시켜줬습니다..
운동도 악기 배우는것도 여기저기 여행가는것도... 사달라는것도 왠만하면 다해줬습니다...
물론 그냥 해주진 않았습니다...버릇없이 키우진 않았습니다.
그냥 꿀리지 않게 키웠단 말입니다. 엄마 없이 커서 버릇이 없다는둥 그런티가
난다는둥 이런만 듣는게 제일 싫었기에...
죽이고 싶을만큼 미운 부모라도 동생들 한텐 그래도 엄마 아빠니까 잘해야
된다고 자식으로서의 도리도 가르치고 한국사람으로서 이 미국땅에서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도 가르치고 있습니다...
지금 저는 학교를 휴학하고 식당에서 웨이트레스로 일하고 있습니다.
하루에 13시간 가량 일하고 있습니다. 손이 트고 아침저녁으로 퉁퉁 부어도
뼈 마디마디가 시려도 이 악물고 버티는 이유는 나아지겠지란 희망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막말로 외갓집은 잘삽니다...
한국으로 나가면 편입해서 서울에 있는 왠만큼 좋은 대학도 다닐수 있고
학비도 다대주시고 저 하고픈거 다할수 있게 밀어줄 능력이 되시고
지금도 한국으로 나오라고 난리십니다.
하지만 이제까지 혼자 해왔고 24살이나 먹어서까지 걱정 끼치며
도움 받고 싶지도 않습니다.
저한텐 죄인인듯 더 못해줘서 미안하다며 쩔쩔매시는 모습 보는것도 죄송스럽습니다.
한국에선 영어를 하니까 할수 있는게 많다고 하더군요...
물론 그것도 다 나름 가보면 다르겠지만 말입니다...
또 아직은 동생들이 어려서 대학갈때까지만이라도 기다려 줘야 하기 때문입니다.
휴... 저는 그냥 제구실 못하는 부모님 때문에 너무 힘들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친구들한테도 부모님 계실때 잘하란말 많이 하는데...
제 스스로가 그게 잘 안될때가 있습니다. 친엄마의 빈자리는 너무나도 큽니다...
동생들을 키우다보니... 새엄마가 제게 어떻게 했는지 잘 알겠더군요...
친딸이 아니라서 그랬나 싶지만 그래도 씁쓸하고 속상합니다...
부모님이 안계시는 분들은 제가 이런말 하면 욕하실지 모르겠지만...
정말 없는게 나을것 같다 기분이 듭니다... 새엄마는 사기꾼에...
아빠는 알콜 중독... 거기다 사고란 사고는 다치고 다니고...
정말... 사회학 교수님이 하신 말이 너무 맞는것 같습니다...
누구나 어머니나 아버지란 사람이 될수 있다 하지만 좋은 부모가 되기란 어렵다...
부모님이 안계신 분들은 제가 그걸 이해못해서 이런말 한다 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도 어머닌 안계십니다... 다행스럽게도 제곁엔 어머니 대신 다른 좋은분들이
계셔서.. 이렇게 버티며 살아가는것 같습니다...
이런 먼 미국까지와서 힘들게 사는게 고통스럽지만...
하루하루 웃으며 버티다 보면 언젠가 해뜰날 있을거라 믿고 그
냥 열심히만 살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제가 조금더 성숙해 진다면...
저도 저희 부모님을 용서하고 이해하며... 잘해드릴수 있겠죠... 그런날이 꼭 왔으면 좋겠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건 정말 힘든 일이잖아요...
어릴때 부모님을 잃고 힘든 시간 보내신 님!! 그리고 누나분... 정말 대단하십니다...
부모가 있어도 잘 못배우고 크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힘든 시간속에서도 바르게 자라신 두분이 참 자랑 스럽습니다...
앞으로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빌어봅니다...
저도 타지에서 열심히 생활하렵니다... 부모님 미워하는 제맘이 완전 가시진 않았지만...
님 글 통해서 다시 한번 맘을 고쳐 먹어봅니다...
감사하구요!! 우리 힘내고 삽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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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충 엔터 쳐놨습니다 엔터치면서 글 읽어보았는데 정말 힘내시고 화이팅이요!!
정말 좋은날이 올겁니다 ^ ^
엔터 쳐놨더니 스크롤 압박이 좀 있네요 ^^;; 리플은 글쓴분 페이지로~ 리플은 글쓴분 페이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