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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4화> 신입생들

바다의기억 |2006.05.10 18:55
조회 8,788 |추천 0

 

=얼음마녀=


모든 사람들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단신의 도도함을 지켜온 그녀.


그런 그녀가 나에게만은 친절했다.



=왜?=


평소 의문을 가져보지 않은 건 아니었다.


나의 서투름과 부족함에 비해


그녀와의 관계는 이상하리만치 순탄하게 발전해왔다.


물론 이런 저런 사고가 없었던 건 아니었지만


시작도 못해본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면


분명한 플러스알파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째서?=


지금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두 가지다.


그녀가 원래 나와 비슷한 스타일을 좋아했거나,


예전에 그 사람이 좋았기에 나도 좋거나.



전자의 경우라면 그와 나 사이엔


어떤 연관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그녀와 만났던 순서의 차이가 있을 뿐


그가 없었어도 지금 내 상황에 변화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내릴 수 있는 결론이라고 해봐야


그녀의 취향이 좀 독특하다는 정도?



단, 후자의 경우라면


나의 지금 위치는 지극히 비참해진다.


그의 후광이 있기에 그녀가 나를 아껴주는


일종의 기생관계.


그 남자가 했던 일이 표준, 즉 플러스가 되고


거기서 벗어나는 행동은 마이너스가 되는


전혀 달갑지 않는 판단기준이


그녀 속에 있게 되는 것이다.



다른 사람 대신에 사랑 받는다는 건...


혹은 누군가의 대용품이 된다는 건...


결코 달갑지 않은 일이다.



....... 여기서 가장 큰 문제점은


전자보다 후자의 가능성이


커도 수십 배는 더 크다는 것.



기억 - .......하아.




그리하여....


피로와 착잡함 속에 주말을 보내고


다시 찾아온 월요일.



난 처음으로


내가 먼저 그녀와의 점심을 거절했다.



기억

- 응. 과제를 깜빡한 게 있어서


점심시간에 베껴야 할 것 같아.



민아

=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뭐.


나중에라도 점심 꼭 먹고.



기억 - 응, 알았어. 미안해.



정확히 말하면


적당한 핑계로 넘겨버린 거지만....


그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일탈이었다.



기억 - ...... 후우... 그럼 이제.....



그렇다고 딱히 점심시간에 할 일도 없었던 나.


이제부터 뭘 해야 하나 한참을 방황한 끝에


내가 찾아간 곳은 음습한 공대 한 구석에 있는 과방이었다.

(과방 = 각 학과별로 주어진 휴게실 같은 것)



평소 같으면 코빼기도 안 비칠 공돌이들의 아지트지만


괜히 밖에 어정거리고 돌아다니다


그녀와 마주치기라도 하면....


그 때 상황은 별로 상상하고 싶지 않다.



....... 무슨 놈의 일탈이 이렇게 소심한 건지.



아무도 없는 텅 빈 과방에 앉아


오는 길에 매점에서 산 김밥을 우물거리고 있으니


참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왜 내가 이 궁상을 떠는지,


난 이제 그녀를 어떻게 봐야하는지...


그 중 가장 큰 의문은 단연


=대체 그는 누구인가?= 였다.



= 담임선생님? 과외교사? 꽃집주인? 연예인? =



통상적인 여학생들의 감성 속에 잠재된


장미빛 로맨스를 일깨울 수 있는


30대 남성의 직종에 대해 심도 있게 고찰해본 결과


나온 결과값은 전부 제로, False 였다.



나도 이미 인정하고 있는 일이지만


나와 닮았다는 것은


결코 사회적으로 볼 때 긍정적인 일이 아니다.


오히려 주변으로부터 소외되거나,


아무 이유 없이 아이들로부터 돌팔매질을 당하거나


뒷골목 파이낸스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을 가능성이 농후한


반인류적인 외모를 가졌다는 소리다.



이런 얼굴로 교단에 섰다간


학교 전체로부터 배척받아


도서지역을 전전하기 일쑤일 것이고


꽃집은 개점과 동시에 폐업이다.


TV 출현 따위 9시 뉴스 사건·사고 란 외엔 방송불가다.



...... 그럼 난 뭐해서 먹고 살아야 하지?



나와 닮은 사람에 대해 생각해보다가


이런 결론이 나온다는 게 참 암담하긴 했지만


그것이 현실이다.


그가 민아와 정말 특수한 관계에 있지 않은 다음에야


접근하는 것만으로 범죄가 성립될 수 있다.



그럼 정말로 그는 누구란 말인가?


역시 한나한테 가서 물어봐야 하나....



끊이지 않고 떠오르는 의문 속에


위험한 해결책을 내놓는 순간


시끌벅적한 목소리와 함께 과방 문이 열리면서


몇몇 사람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남1 - 야, 이번에도 완전 전멸이야.


남2 - 진짜 밥값이 아깝다 밥값이..


남3 - 전번 받은 사람 있냐?


남4 - 미쳤냐? 그걸 어디다 쓰려고?



과방을 들어선 다섯 명의 남자 중


구면인 듯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아직 까슬해 보이는 어설픈 스포츠머리와


실내에 들어서는 순간 무의식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특유의 행동으로 미루어 볼 때


그들의 정체는 01학번 신입생인 듯 하다.



그동안 연극부 행사만 쫓아다니느라


새터니 신환회니 하는 건 한 번도 안 나갔으니

(새터 = 새내기배움터 / 신환회 = 신입생환영회 )


아는 사람이 없는 것도 당연하지만....


막상 이렇게 만나니


=그동안 내가 너무 겉돌았나...=


라는 생각도 없잖아 들었다.



......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이 녀석들이랑 인사라도 해둘까?


군대 갔다가 복학하면 만날지도 모르는 일이고....



기억 - ......



그런데 뭐라고 말을 꺼내야 하지?



=어이=


..... 아냐, 내 외모를 생각할 때


이건 너무 폭력적인 성향이 짙어.


자칫하면 삥 뜯는 걸로 오인 받을 수 있다.



=저기...=


..... 이건 너무 약해 보여.


그래도 나는 선배고 저쪽은 후밴데


자신감 있게 다가서야지.



=어, 안녕?=


..... 아냐, 이미 늦었어.


이걸 쓰려면 처음 들어왔을 때 썼어야지


이미 안에 들어와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처음 마주친 듯한 인사는 영 안 어울리지.


흠... 그럼 대체...



남1 - 저....혹시.... 기억선배 아니세요?



예상 밖에도,


먼저 인사를 걸어온 건 후배들 쪽이었다.



기억 - 음, 맞긴 한데.....



생면부지의 후배들로부터 불쑥 튀어나온 내 이름에


난 내심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녀석들의 정보원이라고 해봤자


한두 학번 선배가 고작일 지금,


나에 대한 소문이란 뻔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남1 - 맞으시다는데, 어떡하지?


남2 - 뭘 어떡해, 언능 @#$@.....


남3 - 쉿쉿, 야, 이쪽으로 와 이쪽으로.



.....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지만


나의 정체를 파악한 녀석들은


자기들끼리 속닥속닥 이야기를 나누며


과방 구석으로 몰려갔다.



아마 이제 곧 있으면 꽁지가 빠져라


다른 곳으로 도망가겠지....


하아.... 결국 내 후배관계는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렇게 체념의 한숨을 내쉬며


과방 천장에 있는 얼룩들을 한 번 휘~ 둘러보고 있을 때


제일 처음 내게 말을 걸었던 녀석이


대뜸 내게로 달려와 무릎을 꿇으며 소리쳤다.



남1

- 선배님!! 저희 소개팅 좀 시켜주십쇼!


저희의 희망은 이제 선배님 밖에 없습니다!


제발! 저희를 불쌍히 여기셔서....



그것이


01학번 신입생들과의 첫 만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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