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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다빈치코드'의 허구성-영화는 영화일뿐입니다.

조대혁 |2006.05.27 09:56
조회 1,860 |추천 0

* 거짓으로 꾸며진 영화 ‘다빈치코드’


다빈치 코드의 작가 댄 브라운은 역사적 사실에 종교적, 예술적, 상징적인 자료와 근거를 사실처럼 구성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댄 브라운은 분명 아주 머리가 좋은 작가이다. 그의 짜집기 기술은, 소설이지만, 읽는 이로 하여금 마치 사실처럼 받아들이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작가이다.

댄 브라운은 한때 지능지수 148이상의 천재들의 모임이라는 멘사에 회원이기도 하였고, 작사가, 피아니스트, 가수, 유럽에서 음악활동을 하면서 미술사를 공부하기도 하며, 1998년 소설로 데뷔하기 전까지 영어교사로 활동을 했다. 댄 브라운은 미술분야, 예술분야 등 많은 분야에서 얻은 경험으로 소설 '다빈치코드'를 완성한 것 같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가 좋은 댄 브라운도, 소설속의 인물과 역사속의 인물을 대입시키는 과정에서 곳곳에서 허점을 들어냈다. 또한 그가 역사적인 사실로 대입시켰던 ‘시온수도회’ 역시 위조된 문서에 의해 설립연도가 거짓임이 1996년에 확연히 드러났다. 하지만 댄 브라운은 이러한 사실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소설에만 몰두하였고, “이 세상은 거짓과 음모로 가득차  있으니 독자는 내가 폭로하는 진실을 믿으라”고 말하며 책을 출간하였다.


그럼, 그가 폭로하는 진실이라고 말하는, 소설 ‘다빈치코드’의 허구를 알아보자.

첫번째, 다빈치코드가 주장하는 시온수도회에 대해 알아보자.

소설 속에서는 1975년 파리 국립도서관에서 발견된 문서를 근거로 1099년에 설립된 유럽의 비밀단체 시온수도회를 묘사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서는 위조로 밝혀졌고, 실제로 그 문서에서 언급되는 시온수도회는 1956년에 ‘피에르 플랑타르’라는 프랑스 몽상가에 의해 설립됐다. 1960년대 그는 파리 국립도서관에 위조된 이 문제의 수도회 문서들을 등록했다. ‘피에르 플랑타르’는 자신이 679년 다고베르트 2세의 피살로 공식적으로 사라졌던 메로빙가 왕조의 후손이며, 예수의 27대 후손이라고 주장하며,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다.

하지만, 1983년~84년 샤멜이라는 사람에 의해 ‘피에르 플랑타르’의 부끄러운 과거가 폭로되고, 1993년 ‘피에르 플랑타르’의 아파트에서 플랑타르 자신이 프랑스의 왕이라는 위조문서를 발견했다. ‘피에르 플랑타르’는 1996년 영국의 BBC2 방송에 출연해 모든 이야기가 허구이며 거짓이라는 사실을 공개했다. 댄 브라운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러한 사실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자신의 소설에만 몰두 하여 소설 ‘다빈치코드’를 완성한 것이다.

두 번째, 소설 속에서 프랑크왕국의 장군 ‘카를 마를텔’이 메로빙가 왕족의 다고베르트 2세를 죽일 때 그의 아들 지기스베르트 4세는 마르텔의 핍박을 도망쳤고, 블레시아에 있는 샘물 가까이서 기적적으로 되살아났다고 한다.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다. 이유는 다고베르트 2세는 650년에 태어나 679년에 죽었다. 다고베르트 2세를 죽였다는 ‘카를 마르텔’은 686년에 태어나 741년에 죽었다. 어떻게 태어나지도 않은 사람이 다고베르트 2세를 죽였단 말인가? 또한 블레시아에는 샘터가 있지도 않다고 한다.

세 번째, 예수의 결혼을 주장하기 위해 댄 브라운은 영지주의자들의 익명의 저자물들인 ‘나그함마디’ 문서들 가운데 ‘도마복음서’와 ‘마리아복음서’ 등을 거론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의 내용을 살펴보면,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막달라마리아와 결혼했다는 내용이 없다.


이렇게, 댄 브라운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한 자세한 지식이 없는 독자들을 우롱하여 자신의 주머니에 부를 축적하고 있다.



* 역사속의 프랑크 왕국


프랑크왕국은 서로마제국이 476년 멸망 후, 게르만족의 한 부족인 서게르만 계통의 프랑크족이 세운 왕국이며, 서유럽 중심지를 통합한 최초의 그리스도교 국가이다. 843년 메르센 조약에 의해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로 나누어진다. 현재 독일은 게르만족, 프랑스 이탈리아는 라틴족으로 구성되어있다.


메로빙거 왕조의 왕들(클로디오부터 클로비스 1세까지. 메로빙거왕조의 마지막 왕)

1. 클로디오(-447) - 재위기간(?-?)

: 잘리어 프랑크족에 속하는 한 부족의 왕이었으며, 메로빙거 왕조의 창시자이다. 클로디오 부족은 428년 이후 로마의 종주권을 거부하고 스헬데 강을 건너 갈리아 남쪽으로 내려와 투르네와 캉브레에 이르렀다.

2. 메로베치(?-?) - 재위기간(448-457)

: 450년경 활동한 살리 프랑크족의 왕이며, 클로디오의 후계자로 프랑크족의 전설에 따르면 그의 이름에서 메로빙거 왕조의 이름이 유래했다고 한다. 그의 생애는 확실하게 알려져 있지 않으며, 투르 주교 게오르기우스의 ‘프랑크족의 역사’에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3. 힐데리히 1세(?-482) - 재위기간(458-481)

: 잘리어 프랑크족의 왕이며, 메로베치의 아들이다. 로마제국과 맺은 조약에 따라 투르네를 수도로 삼았다. 투르네에서 1653년 무덤이 발견되었다.

4. 클로비스 1세(466-511) - 재위기간(481-511)

: 힐데리히 1세의 외아들이며, 프랑크 왕국 메로빙거 왕조의 실질적인 창시자이다. 그가 세운 프랑크 왕국은 중세 초기에 서유럽의 대부분 지역을 지배했다. 그는 로마인이 아닌 이방인의 왕으로는 처음으로 로마 카톨릭교도가 되었다.

5. 다고베르트 2세(650-679) -재위기간(674-678)

프랑크 왕국의 아우스트라시아를 다스린 메로빙거 왕조의 왕이다. 679년 암살당한다.

6. 힐데리히 3세 - 재위기간(743-751)

: 메로빙거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이름뿐이었던 그는 피핀에게 해위 당했다. 이후 프랑크왕국의 카롤링거 왕조가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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