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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외전 -오군과유니-

바다의기억 |2006.06.18 23:00
조회 13,175 |추천 0

오늘 새벽

 

한국 - 프랑스.

 

하루만 새벽형 인간이 되어 보렵니다.

 

============================== 지금 자자. ===============================

 

 

공부를 하건 안 하건


늘 반뼘 두께의 전공서적 두 세권씩을


짊어지고 다녀야 하는 것이 공대생들의 숙명.


난 오늘도 변함없이


이공계가 짊어져야 할 미래의 무게를 실감하며


셔틀버스를 타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저만치 보이는 정류장엔


이미 바글바글 모여있는 사람들.


이거 오늘도 까딱하면 지각이겠는데?



=훙~ 훙~ 봉봉봉~ 훙~ 봉봉봉~ =


그 때 옆에서 슬라임아 뛰는 것 같은 경적소리를 울리며


오토바이 한 대가 내 걸음을 따라오는 게 느껴졌다.


돌아본 그곳엔


귀여운 경적소리와는 극명하게 대조를 이루는


캔디메탈 블랙의 GSX- R1000 이 있었다.



....이거 완전 사자가 야옹~하는 꼴 아닌가?



적어도 내가 아는 한


주변엔 이런 괴물 같은 걸 끌고 다니는 녀석이 없었기에


난 =길이라도 물어보려나....= 생각하며


탑승자의 말을 기다렸다.


내가 길에 서는 걸 확인한 그는


얼굴을 완전히 덮고 있던 검은색 헬멧을 벗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나온 얼굴은....



오군 - 서, 선배!


기억 - ..... 오, 오군?!


오군 - 태워다 드려요?



야옹하고 우는 사자.


그 위에 타고 있는 소심모드 100%의 소년.


이런 걸 설상가상이라고 하는 건가....


조합도 이정도로 어긋나면 엽기다.


어쨌든 지금은 어떻게든 지각을 면해야 하는 처지라


난 두 말 없이 오군의 뒷자리에 올라탔다.



오군 - 갑니다~.


=훙!! 후우우우우우우우웅~~~~ =



언밸런스한 조합에도 불구하고


부드럽게 자동차 사이를 누비며


빠르게 학교를 향해 달려가는 오군의 바이크.


R차 특유의 기울어짐에도 불구하고


별다른 불안감이 느껴지지 않을 만큼


녀석의 주행은 깔끔했다.



=후우우우웅~~~ 봉봉봉봉! 후우웅~~ =


슬라임들의 합창 같은 저 경적소리만 아니면....


살짝 멋있을 것 같기도 하다.



=끼익~ . 흉~ 부르릉. =


오군 - 다, 다 왔습니다.


기억 - 아아... 땡큐.



아무리 운 좋게 와도 15분은 넘게 걸릴 거리를


3분만에 도착한 난


잠시 오군과의 대화시간을 가졌다.



기억 - 오토바이 잘 모네... 오랫동안 탔나봐?


오군 - 예, 여, 열다섯... 부터...



....열다섯 살이면 무면허잖아?



기억 - 의외네... 이런 걸 끌고 다닐 줄은 몰랐는데...



나도 타고난 천성이 공돌이인지라


녀석의 바이크엔 관심이 안 갈수가 없었다.



깔끔한 칼라에 자잘한 흠집도 보이지 않는 도장.


적당히 텐션이 잡힌 체인.


얼룩 없이 매끈한 광택을 자랑하는 서스펜션과 휠...


참 자잘한 곳까지 정성스레 관리한 티가 나는 물건이었다.



기억 - 무척이나 아끼나보네... 엔진소리도 좋고.


오군 - 아...예, 그치만... 조만간 처분해야 할 것 같아요.


기억 - 응? 왜? 아직 얼마 된 것 같지도 않은데?


오군 - 누나가.... 싫어하거든요. 걱정되나 봐요. 사고날까봐....



유니 선배가 싫어하면


아끼는 바이크라도 팔아버린다는 건가?


오군.... 어느새 그런 사이까지?



기억 - 그래, 그건 그렇고... 오군... 말 더듬는 거 많이 고쳐졌네?


오군 - 아, 아, 네. 유니 누나가 매일... 도와줘서요.


기억 - 오, 어떻게?


오군 - 그, 그, 그, 그, 그건....비, 비밀이에요.



순간 얼굴을 붉히며 눈길을 피하는 녀석.


아무래도... 말하기 머쓱한 뭔가가 있는 것 같다.



그로부터 며칠 후.


수업을 모두 마치고 집에 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유니 선배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유니 - 조금 술에 취해.... 기억아, 지금 시간 돼?


기억 - 아.... 네.


유니 - 그럼.... 잠깐 나와 줄래? 여기....



평소와는 사뭇 다른 그녀의 목소리에


걸음을 서두르긴 했지만


근처 술집 지리에 빠삭하지 못했던 나에게


유니 선배의 횡설수설하는 설명을 근거로


원하는 가게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복잡한 골목을 빙빙 돌다 힘들게 가게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이미 만취상태에 빠져있었다.



유니 - 기억아~ 왜 이렇게 늦었어~! 기어왔구나~!


기억 - 아니,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신 거예요? 무슨 일 있어요?


유니

- 괜찮아! 형이야!


형이 술 마시면 개가 되서 그렇지 마시긴 잘 마셔.



기억

- 무슨 형이에요, 형은?


선배 너무 취했어요. 일어나요.



유니

-아우, 기억아! 형이 마시긴 마셨는데 돈이 없어!


술값은 네가 내면 안 되겠니?



...... 목적은 그거였던 건가.



기억 - 알았어요... 나중에 꼭 갚아요?



난 그렇게 대답하며


유니 선배의 어깨를 잡아 일으키려 했지만


선배는 그런 내 손을 제지하며 자신의 앞자리를 가리켰다.



유니

- 농담이야, 농담.... 그냥.... 고민이 좀 있어서 그래.


맞은편 의자를 가리키며.... 잠깐만 앉아 볼래?



아무래도 술이 과한 것 같았지만


무작정 일으키기엔 나름의 사정이 있는 것 같은 그녀.


잠시 고민하던 난


결국 그녀와 술잔을 마주하고 앉았다.



유니 - 갑자기 실실 웃으며...기억아, 너 그거 알아?


기억 - ... 뭘요?


유니 - 오군 글 되~게 잘 쓴다? 나중에 대본도 쓸 거야.


기억 - 아... 그래요? 의외네요.


유니 - 기억아~. 너 그거 알아?


기억 - 에? 또 뭘요?


유니 - 오군 오토바이 무~지 좋아한다? 타기도 무~지 잘 타.


기억 - 아, 네. 며칠 전에 봤어요.


유니 - 그래? 그럼 그것도 알아? 그...뭐냐면...



아무래도 그녀의 고민이란 오군에 관한 것 같다.



유니

- 오군 진~짜 귀엽지? 머리도 복슬복슬 강아지 같고...


- 오군 무지 겁 많다? 도깨비 집 들어가서 막 울고...


- 오군 부끄러움도 잘 타. 머리만 쓰다듬어도 얼굴 빨개지고...



한참동안 주절주절 오군에 대한 이야기를 늘어놓던 그녀는


대뜸 앞에 놓였던 술잔을 비우더니


왈칵 눈물을 쏟았다.



유니 - 기억아... 나 어떻게 해야 되니.


기억 - .... 뭘요?


유니 - 나 오군이 좋아.



유니 선배의 연애 상담이라....


그동안 민아와 일이 생길 때마다 도움을 주던 그녀가


지금은 내게 조언을 구하고 있었다.



기억 - ....오군도 유니 선배 좋아해요.


유니 - 그러게.. 걔 왜 날 좋아하니....하하....



유니는 고개를 숙인 채 한 손을 들어 눈가를 짚으며 허탈하게 웃었다.


웃음에 어깨가 흔들리면서


눈가에 가득 고여 있던 눈물들이


투툭- 하고 테이블 위로 떨어졌다.



유니

- .... 처음엔 그냥 동생 생각이 나서.... 너무 닮아서....


그냥.. 귀엽다고 생각했는데.....


이젠 그게 아닌 것 같아.



기억 - ...동생이 있었어요?


유니 - 눈물을 닦으며......응. 있.었.어.



=있었어=라는 말에 악센트를 주며


유독 과거형임을 강조하는 그녀.


지금은..... 없는 건가?



유니 - 실없이 웃으며.... 나 말투 이상하지?


기억 - 고개를 끄덕이며.... 좀.. 독특하죠.... 아, 전염성도 있고.


유니

- 이거 내 동생 때문이다?


내 동생.... 눈이 안 보여서....


어렸을 때부터.... 이렇게 말해주는 걸 좋아했어.


잠시 술잔을 빙빙 돌리며....


동생..... 사고로 떠난 뒤에....


고치려고 해봤는데... 고치려고 해봤는데....


안돼..... 아무리 해도..... 고칠 수 없어....


잊혀지지가 않아.... 아무리 떠올리지 않으려 해도...



기억 - 교통...사고죠?


유니 - 응..... 어떻게 알았어?



유니 선배가 처음 오군을 만났던 때가 떠올랐다.


얼굴이 빨개져서 뛰쳐나가던 오군을


서슴없이 따라나섰던 그녀.


그때 그녀의 그 행동도...


오군이 오토바이 타는 걸 싫어하는 것도....


아마 동생의 영향인 것 같다.



기억 - 남동생이었어요?


유니

-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아니~ 여동생.....


근데 닮았어.... 오군 머리 뒤로 넘기면 되~~게 예쁘다?



..... 확실히 곱상하게 생기긴 했다.


더군다나 요즘은 패션까지 여성화의 길을 걷고 있어서...


설마, 그 배후에도 유니선배가?



유니

- 나 바보 같지.... 맨 날 배 놔라 감 놔라 하다가...


막상 내 일은 해결도 못하고....


문득 폭소를 터트리며.... 근데 넌 더 바보 같았어....헤헤....



기억 - 예, 저 바보 맞아요.


유니 - 부끄러운 듯 고개를 숙이며.... 이게 웬 주책일까....


기억 - ...요즘 연상이 유행이라잖아요....


유니 - 나 오군한테 몹쓸 짓 한 것 같아....


기억 - ......에? 설마?


유니

- 정색을 하며.... 아니,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오군.... 너무 순진해서.... 날 진심으로 사랑해....


난.... 환상을 좇고 있을 뿐이었는데...


자책감에 사로잡혀.....


큰 죄라도 지은 것 같은 기분이야.



말은 이렇게 하지만....


유니 선배도 그 사이 오군에게 푹 빠져버린 것 같다.


시작이야 어찌됐건 말이다.



기억 - 오군이.... 오토바이 팔 생각이래요.


유니 - 깜짝 놀라며.....뭐?!


기억 - 유니 선배가 걱정한다고... 오토바이 팔 거래요.


유니 - 황급히 핸드폰을 찾으며..... 안돼!! 얼마나 아끼는 건데!



난 핸드폰을 꺼내드는 그녀의 손을 막으며 말을 이었다.



기억 - 오군은.... 그만큼 진심이에요.


유니 - 도리질을 치며..... 나도 알아. 그래서 슬퍼.


기억 - 유니 선배도 진심이잖아요.


유니 - .....아니, 난...



기억

- 시작은 신경 쓰지 말아요.


단지 동생 그림자에 끌렸을 뿐이라고


그렇게 단정지어버리니까


자신에게 솔직할 수 없는 거에요.


나이 차이 좀 나면 어때요... 둘이 참 잘 어울려요.



유니 - 그녀는 참았던 설움에 목이 메여 말을 잇지 못했다....



말 잘 하는구먼. 뭘...



유니 - 아, 이거 읽어봐, 오군이 쓴 거야.



옆에 있는 가방에서 대본 하나를 꺼내주는 그녀.


난 말없이 대본을 받아들고


빠른 속도로 읽어 내려갔다.



유니 - 긴장감에 연신 잔을 비우며.... 괜찮지?


기억 - ....찡하면서도.... 흥미진진하네요.


유니 - 그지? 괜찮지?


기억 - 예.


유니 - 안심한 듯 ..... 다행이다....



=쿠당.=


말을 마친 그녀는 그대로 테이블 위에 엎어졌다.


결국, 술값을 계산한 뒤


술에 절은 그녀를 들쳐 업고 가게를 나섰다.



기억 - 선배, 집 어디에요? 어디로 가요? 택시 타요? 아님 걸어가요?


유니 - 일루~ 쭉~ 가서 오른쪽으로 휘리리리릭~.



.... 대체 어디로 가란 말이야?


골목이 나올 때마다 인사불성인 그녀를 닦달해가며


힘겹게 그녀의 집에 도착한 나.



유니 - 피시식 웃으며.... 기억아.. 고마워....


기억 - 이마에 맺힌 땀을 닦으며..... 됐어요, 들어가서 쉬어요.


유니 - 그녀는 기억의 어깨를 툭툭 치다 균형을 잃고 쓰러졌다....앗!!



.....쓰러질 거 알고 쓰러지지 마!!


난 쓰러지기 직전의 그녀를 부축해서 다시 일으켰다.



기억 - 선배, 괜찮아요?


유니 - ....고마워.... 정말로.



그렇게 내 목을 잡고 매달리듯 기대선 유니는


잠시 내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조용히 흐느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사랑 앞에선 강할 수 없다는 걸..


난 그때 알았다.



기억 - 응?


유니 - 갑작스런 그의 행동에 깜짝 놀라.... 왜 그래?


기억 - 아뇨... 별 거 아니에요.



방금 누가 보고 있었던 것 같은 느낌이....



유니 선배 집을 나서 전철역을 향하는 길.


=우우우웅!!!! 끼리리리리리릭!!!=


갑작스레 골목에서 튀어나온 오토바이 한대가


뒷바퀴를 미끄러트리며 빙글 돌아


나와 마주보고 멈춰 섰다.



어두운 골목길,


눈을 찌르는 듯한 헤드라이트 불빛에


난 손을 들어 불빛을 가리며 운전자를 바라봤다.



오군 - ..... 할 말 있습니다..... 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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