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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과 2006년 길거리 응원

낭떠러지 인생 |2006.06.20 18:49
조회 1,261 |추천 0

목표

2002년 : 월드컵 첫승, 16강 진출

2006년 : 얼마나 벗어야 매스컴 탈까, 이런 X들을 주물러 볼 수 있을까?

 

뒷풀이

2002년 : 흥에 겨워  "자기 차" 에 올라간다.

2006년 : 흥에 겨워  "남에 차" 에 올라간다.

 

2002년 : 너나 할 것 없이 주변 사람 얼싸안고 즐거워 한다.

2006년 : 안을만한, 또는 안길 만한 넘,또는 X을 찾는다.

 

월드컵은?

2002년 : 축구

2006년 : 축재

 

프랑스전에 TV화면에 비친 붉은 악마 원정단...

배가 넘는 파란색 프랑스 응원단들 사이에서도 경기장이 울리도록 오!~필승 코리아!와 대~!한민국, 그리고 아리랑을 외치던 모습, 과다한 노출과 추태로 얼룩진 한국의 길거리 응원이 아닌 선수들 한사람, 한사람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응원.

전,후반 90분 동안 게속 자리에 서서 제자리 뛰기를 하면 응원가가 한번도 끊기지 않던 모습.

그들이 붉은 악마 입니다.

 

어제 아일랜드에 있는 누나에게 전화가 왔다.

그곳에도 축구가 한참 이야기거리라고 하면서 주변에 있는 사람들(아일랜드인) 그러더라고 하더라.

한국 서포터들 정말 환상적이라고...저런 서포터를 가진 한국 대표팀이 부럽고,  한국 대표팀은 저들(붉은 악마)을 위해서라도 승리해야 한다면서...

 

응원이란 목적을 버린 길거리 응원....을 다시 한번 생각해 봅니다.

 

"이번 대의원회 결의로 붉은악마는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붉은악마는 화려한 응원도구가 아닌 대표팀 서포터로서 탐탐이 몇 개와 박수, 그리고 힘찬 목소리로 응원을 할 것이며 이것이 우리 본연의 모습입니다. 돈을 내고 만드는 현수막이 아니라 한푼 두푼 모아 밤새 투박하게 페인트로 그린 걸개와 게이트기를 들고 열차 입석을 타고 승리를 노래하며 경기장을 찾는 게 서포터의 본연의 모습니다.

끝으로 붉은악마 초창기 시절을 되새겨 봅시다. 우리는 선수들이 그라운드에 등장하기 전부터 땅에서 20센티미터 이상 뛰며 응원을 했으며, 90내내 단 한순간도 박수치는 손을 내리지 않았으며, 박수치는 손은 눈높이 이상을 유지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목소리를 냈으며 경기 후에는 모두 쉰 목소리로 함께 웃었습니다. 경기 중에는 잡담이나 군것질도 금지했습니다. 모임에 따라서는 응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고 오히려 방해가 되는 과도한 노출이나 하이힐 착용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강력한 서포팅을 위해 모든 역량을 집중했습니다. " (신 붉은 악마 선언 중")

이들은 자신들이 한 이말을 책임지듯 정말 목이 터져라 응워했습니다.

자랑스럽습니다. 한국인이라는 것이...

 

이상...인터넷 찌질이가...

 

그리고 또 한명에 붉은 악마에게 힘찬 응원에 박수를 보내 주세요...매일 경재 신문에 난 기사 입니다.

"필승 한국. 대~한민국."

19일(한국시간) 새벽 프랑스전에서 극적으로 터진 동점골. '대~한민국'을 외치며 번쩍 팔을 들고 싶었지만 마음뿐이다.

목이 터져라 고함을 지르고 싶지만 발음조차 힘들다.

불편한 몸이 또 꼬이기 시작한다.

혀도 말린다.

하지만 응원 열정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12번째 붉은 전사 최창현 씨(42)다.

그는 그리스에서 독일 라이프치히 젠트럴슈타디온까지 왔다.

비행기나 차를 타고 온 게 아니다.

두 발로 걷는 것은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사치다.

선천성 뇌성마비 1급 장애인 최창현 씨. 그는 손조차 쓸 수 없어 입으로 전동 휠체어를 몬다. <IFRAME name=newsad align=middle src="http://manager-ams.mk.co.kr/newadview11.html" frameBorder=0 width=225 scrolling=no height=230 valign="top">

입으로 프랑스전이 열린 라이프치히까지 온 것이다.

"휠체어에 태극기를 달고 온 것이 태극전사 단 한 명에게라도 힘이 된다면 제가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는 거예요. 프랑스와 비겼으니 이제 마음이 편하네요."

그는 남북통일을 기원하며 2만2000㎞ 유럽 20개국 종단 대장정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5월 10일 그리스를 떠났으니 벌써 40여 일이 다 돼 간다.

전동휠체어를 움직이느라 리모컨을 입에 물고 있는 탓에 입술은 곪아터진 지 오래다.

루마니아와 헝가리 국경을 통과한 뒤 평균 기온은 섭씨 30도를 넘나들었다.

진물과 범벅이 된 물을 먹어가며 불어터진 '입'으로 이 먼 곳까지 왔다.

그는 프랑스전 응원을 위해 기네스북 기록에 도전하는 행보를 잠시 접었다.

차량으로 그를 보조하는 최재혁 씨(22)는 그의 라이프치히 행을 극구 말렸다.

팔 대신 입으로 리모컨을 물고 조종한 탓에 입안 한쪽이 다 헐어버렸기 때문이다.

이도 하나 둘 떨어져 나간다.

이 대신 악문 잇몸조차 헐어 고름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지난주부터는 침이 새는 양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옆에서 지켜보기조차 안쓰럽다.

창현 씨는 시속 16㎞로 하루 평균 80㎞씩을 달린다.

밤이면 전동휠체어를 꼬박 3시간 이상 충전해야 하는 강행군이다.

"저를 보고 대한민국인들이 낯선 땅에서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요. 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이 하나도 부끄럽지 않아요."

경기가 끝난 뒤 젠트럴슈타디온을 빠져나가는 창현 씨를 보고 붉은악마들이 '대~한민국'을 연신 연호했다.

눈시울이 잠시 붉어졌다가 이를 악물더니 다시 리모컨을 물었다.

90분 내내 '대~한민국'을 외치며 지칠 대로 지쳤지만 S자로 전동휠체어를 몰며 답례를 했다.

그는 또 대장정에 오른다.

오스트리아~슬로바키아~폴란드로 이어지는 장도다.

꿈에도 그리는 통일을 위해 2만2000㎞를 꼭 완주하겠다는 의지다.

그는 희망을 버리지 않는다.

아니 한번도 버린 적조차 없다.

남북이 하나돼 '대~한민국'을 외치는 그날까지 쉼없이 질주할 각오다.

그에게는 누구보다 튼튼한 마음의 두 '다리'가 있기 때문이다.

[라이프치히 =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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