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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이야기

여유 |2003.01.23 16:05
조회 576 |추천 0

겨울 바다처럼 사랑이 스스로를 주체하지  못하고 넘친다. 물이 제 터전처럼 마구 드나들더니 모래톱을 갉다가 속으로 스민다.

 

까닭이야 있겠지만, 겨울 한가운데에서 결혼하다니... 式은 저녁 무렵, 그것도 야외에서 치른다. 뉘엿거리는 해를 이고, 일과를 마친 사람들이 여유롭게 모여든다. 사실 새로운 날을 꿈꾸는데, 굳이 석양이 장애가 되겠는가.

 

정원 곳곳에 선 브래킷型 나트륨 燈이 샤프란 꽃처럼 소담하게 핀다. 다른 때보다 이르게 햇볕이 사그라지자 소름이 돋았다. 군데군데 모닥불을 피워 사람들이 모인 채 옹송거린다.  장작 동강이를 뒤척일 때마다 불길이 힘을 받았다. 까마득하게 불티가 치솟아 땅에 내린 별이 한꺼번에 오르는 듯 하다.

 

대궁만으로 겨울을 나는 화초들이 밟혔다.

삶이 병 속 공기처럼 有限하다고 익히 알지만, 그래도 봄빛 내리면 서리라. 끈질긴 집념만 있다면, 다시 올곧게 영근 삶의 향기를 내뿜을 수 있으리라.

 

세상으로 나아갈 길을 밝히기 위해 혼주들이 나서 초에 불을 당겼다. 촛불은 가볍게 흔들리다가, 본심을 세우듯 일어나 여린 빛을 떨친다.

 

환호가 가볍게, 점차 커지며 파문이 인다. 사람들이 갈라선 사이 날아갈 듯 하얀 연미복을 걸친 신랑이 늠름하게 들어선다. 이어 화동을 앞세우고 신부가 아버지 손을 잡고 나와 나붓이 조아린다. 고사리손에 집혀 뿌려진 꽃잎이 나부꼈다. 동심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꽃잎 속에 언뜻 미소가 서럽다. 찬탄과 함께, 그 어머니 눈에 딸의 모습이 보석처럼 박힌다. 더 이상 되새길 수 없는 아름다움이 영롱한데, 차츰 불빛 속에 흐려진다.

 

'...이렇게 좋은 날...웃어야지...'

꼭 쥔 손수건으로 누가 볼새라 살며시 눈가를 누른다. 와중에도 가슴은, 예전 당신이 시집 갈 때처럼 사정없이 두근거린다.

 

어쩌면...신랑보다 신부가 더 용감하지 않았을까. 정원 구석에서 으르릉대는 날 세운 바람이나 하얀 눈은 차라리 아무것 아니다. 백옥처럼 드러난 신부의 하얀 맨살 위에서 뽀얗게 불빛이 미끄러진다. 신부가 낯선 사람을 대하듯 어색하게 신랑의 팔을 잡고 걷는다. 자리한 사람들 사이에 밝은 웃음이 피어나 졸고 있는 파도처럼 일렁거린다.

 

화려하며 육감적인 드레스를 입은 친구들이 섬세한 손길을 바쁘게 놀린다. 현악4중주에 따라 빈 고전파인 Haydn과 Mozart, Beethoven...의 레퍼토리가 쏟아진다. 모든 사람이 우레같은 손뼉을 친다. 한 줄기 빛으로 쏘아진 폭죽이 작렬한다. 가지마다에서 환상으로, 혹은 폭포처럼 불꽃이 피어 흐른다.

 

바이올린과 비올라, 첼로, 콘트라베이스의 앙상블이 숨가쁘게 두드러졌다. 밤마저 물러나 앉은 잔디 위에서 하객들은 둥글게 방원을 그렸다. 오늘 기쁨을 안고 맴도는 한 쌍의 춤은 감미롭다.

 

사랑은 외줄타기처럼 시작하는 것일까. 한 線상에서 마주 걸어가 그윽히 서로의 눈을 들여다 본다. 새록새록 돋는 미소를 머금으며 손을 잡는다. 따뜻한 피와 감정의 교감을 느끼며, 둘이 한 방향으로 사뿐사뿐 나아가는... 이 밤 별이 보이지 않아도, 함초롬한 눈망울에서 아련함을 느낄 수 있다면 충분하다.

 

늦어서야 내밀한 나의 방으로 돌아온다. 칠흙같은 어둠 속에 흐느낌이 가라앉아 있다. '딸깍...' 스위치를 올리자, 기우뚱거리는 기척이 있다.

 

외줄 위에서 내 위태로운 사랑은 마구 울다가...또, 환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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