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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내가 가장 많이 미워한 사람'

김한길 |2006.04.05 14:41
조회 71 |추천 0


내가 이제까지 누군가를 미워했던 양으로 친다면, 가장 많이 미워한 사람이 바로 내 아버지가 아닐까 싶다. 늘 민주화와 민족과 못사는 사람들의 삶을 말하면서 정작 당신이 거느린 식솔들에게는 한없이 무력했던 분, 세상에서는 옹고집 반골로 불리면서도 정작 당신 둘째 아들의 반항에는 속수무책이었던 분, 통일이고 민주화고 개뿔이고 간에 아버지 제발 우리한테도 좀 신경을 써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라고 내가 대들면 말없이 한숨만 내쉬시던 분... 1971년 선거에 아버지가 통일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을 때, 나는 갓 입학한 대학도 때려치우고 서울 변두리에서 구두닦이를 하고 있었다. 되지도 않을 일에 왜 나서십니까. 그게 내 입장이었지만 아버지는 물론 내 의견을 구하지는 않으셨다. 한 경찰관의 구두를 닦아주고 돈을 내라고 끝까지 우기다가 파출소에 끌려갔는데, 거기 있던 신문에서 아버지 얼굴을 보았다. 몇 날 몇 시에 귀국하면서 공항에서 기자 회견을 갖는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망설이다가 망설이다가 느닷없이 공항으로 나갔는데, 공항 경비원은 내 차림새를 지적하면서 입장을 허락해 주지 않았다. 회견장 건물 밖에 서서 기다렸더니 아버지가 주위 사람들을 헤치고 내게 다가와서 한마디하셨다. 『왔니.』 그게 전부였다. 버스를 타고 혼자 돌아오는 길에 왜 그렇게 눈물이 났는지... 반공법인지 긴급조친지에 걸려서 아버지가 옥살이를 할 때마다 나는 정말이지 울화가 치밀어서 미칠 지경이었다. 내 아버지처럼 국가와 민족만 생각하는 이를 자꾸만 잡아 가두는 사람들에게도 화가 났지만, 아버지에게도 하여간 무지 화가 나는 거였다. 한번은 교도소 면회실의 어머니 뒤에 서서 멍하니 면회 시간을 다 까먹은 내게 푸른 수의를 입은 아버지가 한마디하셨다. 『넌 뭐 아버지에게 할말이 없니?』 나는 끝내 아버지에게 아무 말도 토해내지 못했다. 나는 속으로만 투덜거렸다. 아버지는 왜 다른 아버지들처럼 살지 못하세요. 제게 좋은 옷을 사주거나 저를 데리고 낚시를 가거나 하지 않는 건 괜찮습니다. 그렇지만 아버지, 막무가내인 사람들 때문에 제발 이런 데서 더 이상 쓸데없이 고생하진 마세요. 내가 대학생일 때 쓴 글이 문제가 돼서 기관에 붙잡혀가 고생을 한 적이 있다. 기관에서 풀려나와 집에 누워 있는데 아버지가 내 방을 한번 둘러보고 가셨다. 그래도 나는 아버지가 무언가 한마디쯤은 나를 칭찬해 주실 줄 알았다. 『더 많이 고생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게 전부였다. 나는 화가 나서 누워 있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버렸다. 나는 얼마 후에, 이 땅에서는 가망이 없다는 주위 사람들의 말을 좇아 미국으로 도망갔는데, 아우의 편지가 나를 못살게 굴었다. 『……아버지를 보고 있으면 말이야, 내가 당신의 아들이라는 생각이 들질 않아. 위인전을 읽을 때처럼 거리감이 느껴지는 거야. 너무나 성실하게 자기 갈 길을 가는 한 거인을, 결코 좌절할 줄 모르는 한 영웅을 아버지에게서 보는 거야.』 나는 이제 아버지를 미워했던 마음의 한 열 배쯤 내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내 아버지가 자랑스러운 마음의 한 열 배쯤 지난날들이 부끄럽다. 나는 아버지를 여의고 새롭게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의 서재에서 아버지를 다시 만났고, 아버지는 죽음으로써 내 속에서 다시 태어나고 계셨다. 알고 보니 아버지는, 내가 알던 것보다 백 배는 더 큰 분이셨다. 내가 알았던 것보다 백 배는 더 지혜와 학식이 깊은 이였고, 백 배쯤은 더 곧고 강직한 분이셨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아버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었던 데에는 아버지 당신의 책임도 있다. 내 아버지는 내가 알았던 아버지보다 천 배는 더 침묵이 깊은 분이셨던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를 기억하는 40여 년 동안,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내게 당신의 유식을 드러내신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단 한 번도 당신 자신이 옳은 일이나 큰일을 하고 있다거나 혹은 신념을 지키며 꿋꿋하게 살고 있다고 내색하신 적도 없었다. 제대로 된 「앎」과 「신념」은 손목시계 같은 거라고 했던가. 누군가 물어오기 전에는 부러 떠벌릴 필요가 없다는 뜻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에게 한 번도 시간을 물어본 적이 없는 자식이었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아버지는 눈을 감는 순간까지 당신이 걸어온 자취를 후세에 남기기 위해 노력하신 것 같지도 않다. 명색이 쓰는 일을 업으로 하다 보니 종종 어른들로부터 자서전 같은 걸 써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하는데, 정작 내 아버지는 기껏 어머니를 통해서 이렇게 말씀한 게 고작이셨다. 『한길이는 좋은 소설을 써낼 거야.』 아버지는 철저하게 당신의 신념대로 살면서, 자식들에게조차 무조건 당신의 신념을 잇도록 요구하지 않았던 분이었다. 아버지가 내게 준 몇 안 되는 말씀 중의 하나가 그러했다. 『네 뜻대로 어떻게든 사는 것이다.』 어찌 보면 아버지는 당신 자신의 삶에 그만큼 당당했던 건지 몰랐다. 나는 요즈음 아버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본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과연 아버지에게 부끄럽지 않게 잘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곰곰이 생각해 보고 있는 중이다. 아버지의 묘소 앞에 가기로 한 다음 주에, 나는 아마 지난번보다 더 오래 아버지 앞에 고개 숙이고 있어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내 나이 때에 쓴 글을 다시 읽는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인생관이 너무나 단순하다 할지 모른다.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려는 큰 포부를 펼 수 있기 위하여 무슨 짓을 하여서라도 권세나 재부를 잡는 최단 거리를 달려야 한다는 인생관도 있다. 그러나 나는 부정한 수단으로 고매한 목적을 이룩한다는 것은 믿지 않는다. 부정한 수단에는 고매한 목적까지를 부식시키기에 충분한 그 자체의 병리가 숨겨져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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