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탐 II in Europe : 토니 블레어와 제 3의 길(2편)
한혜민
|2006.04.06 09:20
조회 25 |추천 0
영국은 가장 먼저 산업혁명이 시작된 곳입니다. 그 계기와 함께 산업 혁명이 경제 이론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대해 살펴보기로 해요. 원래 영국에서는 양을 키워서 그 양모를 깎아 모직물을 만드는 산업이 흥했었죠. 이는 산업 혁명 이전에 농업 국가였을 때부터의 일입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일찍부터 봉건제도가 해체되었습니다. 봉건제도는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왕이 있고 왕국이 있으면 왕국의 모든 땅을 왕이 직접 다스리는게 아니라 그 아래의 신하들과 계약을 맺어 분할하는 제도였죠. 즉, 왕은 땅의 주인이 되는 신하인 영주들에게 일정한 토지와 그에 딸린 세금을 받을 권리를, 대신 영주는 왕에게 충성과 비상시 군대를 지원할 의무를 지게 되는 계약을 맺게 되는 것이죠. 또, 영주는 자신이 받은 모든 땅을 전부 직접 다스리는게 아니라 왕과 자신이 맺은 계약처럼 그 땅들을 더 작은 영주, 그리고 기사들에게 나누어주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그 토지에 소속되어 자신의 주군에게 세금을 바치고 충성을 바치게 되죠. 봉건제도는 이처럼 왕을 중심으로 하여 계약을 통한 계층 구조를 만들어 낸 데 특징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봉건제도가 무너지게 되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것은 바로 ‘십자군 전쟁’입니다. 여러분들도 십자군 전쟁이 무엇인지는 잘 아시죠? 그것은 성지 회복을 명분으로 하여 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연합하여 동방을 정벌한 일이죠. 열 번에 달할 정도로 여러 차례 실시되었던 십자군 전쟁은 결국 실패로 돌아갑니다. 정치적 분열, 영토 내 반란 문제 등으로 인한 것이었죠. 이러한 십자군 전쟁의 실패는 결국 봉건제도의 붕괴를 불러오게 됩니다. 왜냐? 십자군 정벌에 참여한 기사들은 대부분이 봉건 영주들이었겠죠? 그런데, 전쟁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이 사람들이 엄청나게 전사하게 됩니다. 결국, 계약을 통해 영지에 지배권을 행사하던 봉건 영주들은 점점 사라져가고 반대로 중앙 집권적인 왕권이 더더욱 강화되게 됩니다. 그리고, 산업 혁명의 계기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상업과 공업이 발달했다는 것이죠. 먼 곳으로 수 많은 물자와 무기들을 생산하고 수송하려다 보니 그러한 산업들이 발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농민들 중이나 상공업자들 중에서도 스스로 재산을 축적하여 영향력을 지니게 되는 세력이 출현하게 됩니다. 프랑스에서는 그들을 부르주아(bourgeois)라고 하였고 영국에서는 젠틀맨(gentleman)이라 하게 됩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 속에 영국에서는 산업 혁명의 조짐들이 서서히 싹트기 시작합니다. 아까 영국은 전통적으로 모직물을 가공하여 판매하는 산업이 흥했다고 하는데요, 여기에 필요한 중요한 자원 중 하나인 목재가 16세기 들어서부터 서서히 심각해졌다고 합니다. 부족한 목재에도 불구하고 상공업은 점점 더 발달하니 더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겠고... 그러다 보니 석탄이라는 새로운 자원을 본격적으로 이용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에 따라서 석탄을 이용하는 산업의 혁명도 움트게 되는 것이죠. 와트, 모즐리등에 의해서 석탄을 이용한 증기기관이 발명되자 상공업은 더더욱 발달하게 되겠죠.
런던, 브리스틀, 만체스터(영국에서는 Manchester를 맨체스터가 아니라 만체스터라고 하더군요 ^^) 등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점점 많은 공장들이 세워져가고 일자리를 구해 찾아 온 사람들도 몰려들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부터 근대 경제학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죠. 이전부터 큰 자본을 가지고 있었던 젠틀맨 등의 자본가들은 대량 생산 체제 구축을 위해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할수록 이득도 더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부터 근대 경제학, 즉 고전 경제학이라고 불리는 자본주의적 경제 이론은 싹트기 시작했죠. 이러한 근대 경제학의 아버지라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 우리가 수능을 통해서 너무나도 지겹게 이름을 들은 그는 과연 어떤 이론을 펼쳤는지 알아보기로 할까요.
스코틀랜드의 수도인 에든버러에서 태어난 스미스. 그는 10년에 걸쳐 역작인 “국부론”을 완성했습니다.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그의 경제 사상을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어요. 그는, 부의 원천은 노동이며, 부의 증진은 노동생산력의 개선으로 이루어진다고 주장하고, 생산의 기초를 분업에 두었습니다. 그리고 분업과 이에 수반하는 기계의 채용을 위해서는 자본의 축적이 필요하며, 자유경쟁에 의해서 자본축적을 꾀하는 것이 부를 축적하는 가장 중요한 일이라 이야기했죠. 아까 이야기한 것처럼 자본주의, 자유주의를 전격적으로 주장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시장에 의한 경쟁이 조절되는 ‘보이지 않는 손’의 개념을 도입하기도 하고 자본주의 체제가 가격에 의해 형성됨을 설파하고 있죠. 이러한 그의 이론에 따라 자본주의 경체 체제는 점점 더 발달해 갔습니다. 이윤 추구를 위해서는 더 많은 자본을 투입하고, 더 많은 노동을 투입하여 결과적으로 대량의 생산물을 만들어 내는 것... 이것이 당시 자본가들의 가장 중요한 목표이자 그들의 일과가 되어갔던 것이죠.
이 과정에서 엄청난 부작용들이 일어났습니다. 시장에 모든 것을 맡기고 국가는 뒷짐지고 있는다는 자유주의 풍조는 자본가들만 이익을 보게끔 하고 그 외의 다른 것들은 황폐화시킨 결과를 가져온 것이죠. 먼저 환경 오염. 런던 스모그라는 걸 들어보셨을겁니다. 석탄의 연소에 따른 여러 황화물들이 안개와 결합하면서 황산성의 독성 스모그를 만들어내어 수 많은 사람들이 사망한 것. 산업 혁명이 이루어진 뒤 공장이 엄청나게 들어섰던 19세기의 일입니다. 그리고, 자본가들의 횡포에 의해 시장에서 독과점과 담합이 이루어졌던 것도 심각한 문제죠. 기업주들끼리 서로서로 짜고 가격과 품목 같은 것들을 마음대로 짜고 시장에서 물건 값을 올려받으려 했던 것이죠. 마지막으로, 무엇보다도 노동자들에 대한 인권 문제가 매우 심각했습니다. 노동자들, 여자, 어린이 할 것 없이 하루에 6시간도 채 자지 못하고,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습니다. 노동 단가를 낮추려다 보면 노동자들에 대한 복지는 형편없을 수 밖에 없었죠. 더 싼 노동가에 더 많은 노동력을 짜내려다 보니 그런 일들이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겠죠. (우리 나라에서도 근대화가 진행되면서 전태일 같은 분들이 그런 상황에 대해 항의하며 자신의 몸을 불태우셨죠. 최근에도 신자유주의가 힘을 얻으면서 배달호씨가 분신자살했습니다만... 자세한건 종섭형의 리포트를 보세요 ^^)
자유주의. 언제까지나 계속 될 것 같았지만 심각한 타격을 받는 때가 도래합니다. 세계의 경기가 전쟁 종전 등과 연관하여 얼어붙기 시작하면서 그 때까지 경제계를 주도하였던 애덤 스미스의 고전 경제학, 자유주의적 경제 이론은 비판을 받게 됩니다. 언제까지나 국가가 이런 불황을 놔두어야만 할까... 그 때 케인즈라는 경제학자가 등장해서 일대 충격을 안겨주게 됩니다.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의 경제학자로서, 그때까지의 자유주의적 경제 이론에 비판을 가하게 됩니다. 즉, 국가가 시장에 직접 개입하는 것, 재정 지출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였죠. 실제로 미국은 이러한 이론을 받아들여 대규모 사업을 여럿 추진하였습니다. 후버 대통령 당시 콜로라도의 강을 막아 만든 후버댐은 가장 유명한 케이스죠. (저도 한 번 다녀왔답니다 ^^;) 결국, 정부가 적극 개입한 여러 사업들은 당시의 경제 불황을 타개할 좋은 해결책이 되었답니다. 이러한 입장을 예전의 자유주의에 대비하여 ‘수정 자본주의’, ‘국가 개입 주의’등으로 부른답니다.
하지만, 개입도 결국 한계에 부딪히는 법. 70년대 들어 원유파동이 시작되면서 스태그 플래이션이라는 기묘한 현상이 발생합니다. 불황 속의 인플레이션이라는 것이죠. 기름값이 오르면 당연히 물가는 오른 것이고, 그에 비해 원자재와 에너지가 부족해진 이유로 공업은 점점 침체될 것이고... 그러다 보니 물가가 오르면서 경기가 침체에 빠지는 기묘한 현상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이 상황에서 정부는 별 역할을 하지 못했어요. 케인즈 이론에 따른 정부의 개입도 유가 급등으로 인한 요인은 어떻게 해결하지 못한 것이었죠.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금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입장이 기를 펴게 됩니다. 하이에크 등에 의한 새로운 자유즈의. ‘신자유주의’가 바로 그것이죠. ‘신고전주의’라고도 부르는 이 입장은 지금껏 심화되어 온 국가의 개입을 철회하고 다시금 시장으로 돌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이 즈음에 등장한 신자유주의는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죠. 물론, 옛 자유주의로 인한 문제점들을 일으키고는 있지만...
요런 상황에서 최근의 영국은 새로운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라크전 개입으로 인해 상당히 욕(?)을 먹고 있는 노동당 출신 수상 토니 블레어. 노동당은 전통적으로 국가에 의한 개입을 중시하는 입장을 취하는 당이었죠. 이름부터가 노동자들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당임을 알리는 것 아닌가요. 노동당은 자본가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당에 대응하는 당으로써 노동자 권익 향상을 위한 여러 정책들을 펼치게 되고, 그에 따라 복지 정책과 여러 경제 개입 정책을 펼치는 정치적 입장을 가져 왔습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가 등장하고, 토니 블레어가 등장하면서 노동당의 상황도 바뀌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지금 살펴 볼 ‘제 3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 제 3의 길은 과거의 자유주의도, 완전한 개입주의도, 사회주의도 아닌 중도의 길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스태그 플레이션과 세계화 등 변화하는 경제 환경의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 EU에서 나타난 유력한 대안인 제 2의 길. 어떤 것일까요? 토니 블레어, 그리고 독일의 슈뢰더의 정책을 통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토니 블레어 영국총리와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총리는 지난달 공동으로 ‘유럽 제3의 길―신중도(新中道)’라는 유럽사회민주주의 강령을 채택했습니다. 강령이 ‘국가는 기업을 지원하되 기업의 역할을 대신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듯이 정부역할 축소와 기업경쟁력 향상이 그 핵심이에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회주의적 요소인 사회 복지의 전면적 축소를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프랑스 파리 고등사회과학원(EHSS) 로베르 부아이예교수는 “신사회주의는 국가의 개입을 통한 분배의 정의(좌파)와 자유시장경쟁을 통한 효율성(우파)을 동시에 추구한다”고 말했죠. 이러한 유럽의 ‘새로운 길’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영국은 일하려는 의지가 없는 사람에 대한 지원을 줄이고 실직자의 재취업을 위한 훈련에 초점을 맞추고 있죠. 한편, 독일은 고용증대를 위한 근로시간 조정과 감세, 사회보장제도 보완 등을 추진하고 있어요.
이렇듯 영국을 중심으로 한 경제 이론의 발달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다양한 모습을 띄어 왔습니다. 과거 봉건 주의 경제 체제에서부터 애덤 스미스의 자유주의, 고전 경제학. 케인스의 개입주의와 수정 자본주의. 석유 파동 이후 나타난 신자유주의. 그리고 최근 나타난 신사회주의라 불리는 제 3의 길 까지. 정말 수 많은 변천 과정을 겪어 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