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梅一生寒不賣香 얼핏 보아서는 매향의 이름에서 딴 것 같지만, 일생을 얼어지내도 향기를 팔지는 않는다는 내용이 일제말 권번기의 속치마에 어떻게 어울리겠는가. 그러나 지금까지도 남모르는 부끄러움으로 남아있는 일은 정작 그 뒤에 있었다. "이 매가 어찌 이렇게 춥고 외롭습니까.?" 낙관이 끝나고 매향이 그렇게 물었을 때 그는 매향에게만 들릴만큼 낮고 침중하게 대답했다. "정사초의 난에 뿌리가 드러나지 않은 걸 보았느냐?" 그리고 뒤이어 역시 궁금히 여기는 좌중에게는 정월의 매화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지만, 매향은 분명 알아들은 눈치였다. 정사초의 난초를, 망국의 한과 슬픔을 표현하는 그 드러난 뿌리를. 그 밤 매향은 스스럼없이 그에게 몸을 맡겼다. "이 추운 겨울밤에 제 속치마를 적시셨으니, 오늘밤은 선생님께서 제 한몸을 거두어주셔야겠습니다." 그 뒤 그는 매향과 함께 넉 달을 보내었다. 언젠가 흥겨움에 취해 넘은 봄꽃 화려한 영마루의 기억처럼 이제는 다만 즐거움과 달콤함의 추상만이 남아 있는 세월이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그들의 날은 끝났다. 그가 망국의 한을 서화로 달래며 떠도는 선비가 아니었던 것처럼 그녀 역시 적장을 안고 강물로 뛰어드는 의기는 아니었다. 그가 자신도 모르는 열정에 휘몰려 떠도는 한낱 예인에 불과하다면 그녀도 또한 돌보아야 할 부모형제가 여덟이나 되는 가무기 일 뿐이었다. 둘은 처음부터 결정된 일을 실천하듯 미움도 원망도 없이 헤어졌다. 매향은 권번으로 돌아가고, 그는 그 무렵 전주에서 열리게 된 동문의 전람회를 바라고 떠났다. 그것이 이 세상에서는 마지막 이별이었다. 이문열-금시조 중에서. 처음은 특별하나 이별은 영이별이게,그러나 아무것도 아닌듯이. 우리는 서로에게 아무것도 아니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