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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과 집념의 대명사 - 천재 수학자 폴 에어디쉬

송소연 |2006.04.24 23:03
조회 88 |추천 1

열정과 집념의 대명사 - 천재 수학자 폴 에어디쉬

(1) 폴 에어디쉬는 누구?

폴 에어디쉬는 함수론, 기하학, 정수론 등 수학의 전 분야에 걸쳐 무려 1천4백75편의 논문을 남긴 20세기의 대표적인 수학자입니다. 그는 19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고등학교 수학교사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3살에 3자리 수 곱셈을 암산으로 하고, 4살에 음수를 터득한 수학의 천재였습니다. 하지만 그를 진정 위대하게 만든 것은 이런 타고난 천재성을 뛰어넘는, 지칠 줄 모르는 수학에 대한 열정이었습니다.
그는 평생 결혼도 하지 않았고, 집도 갖지 않았습니다. 또 세상의 부와 명예에도 관심이 없었습니다. 수학노트가 든 남루한 여행용 가방과 옷가지가 든 오렌지색 플리스틱 가방이 그의 전재산이었지요. 이 간단하고 간편하기 짝이 없는 전재산을 들고, 그는 수학적 문제를 토론하고 함께 연구할 수 있는 동료 수학자를 만나기 위해, 60년 동안 정신없이 빠른 속도로 4대륙을 여행했습니다. 이 대학에서 저 대학으로, 이 연구소에서 저 연구소로 옮겨 다니며 수학 연구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는 한 도시에 도착하면 아는 수학자의 집에 불쑥 전화를 걸어 “나의 두뇌가 열려 있다.(My brain is open.)”라고 말하며, 초청한 수학자의 연구실이나 집에서 동료가 지쳐 스스로 포기의 손을 들 때까지 연구를 한 뒤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수학에 미친 사람’ 혹은 ‘수학의 성직자’라 불렀습니다.
“수학적 진리는 신의 마음 속에 들어 있다. 인간은 그 진리를 재발견하는 것일 뿐이다”
평생토록 신이 숨겨둔 수수께끼의 베일을 한 꺼풀씩 벗겨내기 위해 노력한, 열정과 몰두의 대명사, 폴 에어디쉬가 이번 의 주인공입니다.

(2) 수학자를 키우는 수학자

수학계에서도 업적을 먼저 발표하려는 싸움이 종종 있습니다. 한 수학자는 자신이 해결 못할 문제라면 어느 누구도 해결하지 못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했지요. 실제로 에어디쉬가 가까운 공동 연구자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우선권 싸움을 중재해야 하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숱한 수학자와 공동 연구를 한 에어디쉬 자신은 진리를 밝혀내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지, 세속적인 명예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대학원생 시절 나는 삼류 수학자나 우선권 싸움을 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실제로는 일류 수학자들이 그런 싸움을 하는 겁니다. 그들은 수학을 열정적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이거든요.”
에어디쉬는 수학적 아이디어를 동료들과 함께 나누는 일에 대해서 언제나 관대했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무언가를 증명하는 것은 그의 목표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목표는 오히려 누군가가 그걸 증명하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에어디쉬는 수많은 수학자를 손수 배출하였고, 수학자들에게 적절한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수학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동시에 여러 동료와 가능한 한 많은 문제를 푸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그는 매일 전세계의 수학자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에어디쉬가 세계 모든 수학자의 전화번호를 안다는 우스개가 학계에 퍼질 정도였지요.
에어디쉬는 동료들이 수학적 예민함을 유지하도록 돕는 것을 자신의 개인적 사명으로 여겼습니다. 한 번은 존이라는 유망한 수학자가 뇌종양 진단을 받고 수술을 마쳤을 때, 에어디쉬가 그에게 문병을 갔습니다. 에어디쉬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존에게 수학 문제를 퍼부었습니다. 존은 이내 기운을 차리고 문제들을 풀어냈습니다.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수학으로 용기를 주려는 에어디쉬의 배려였던 것이지요. 그러나 수술 후에 오는 후유증으로 인한 우울증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존은 결국 자살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에어디쉬는 늘 이 일을 마음에 걸려 했지요.

(3) 수학에 미친 사람

에어디쉬는 말년에 건강이 좋지 않았습니다. 한 번은 시력이 급격히 악화되어 각막이식 수술을 긴급히 받아야 할 상태였습니다. 수술은 두 시간 정도 걸렸지요. 그런데 수학을 연구할 시간에 수술대에 누워 있는 것이 초조했던 에어디쉬는 계속 의사의 수술 과정에 하나하나 간섭하며 시비를 걸었고, 참다 못한 의사는 멤피스 대학 수학과로 전화를 걸었습니다. 에어디쉬가 수학을 논의할 수 있을 만한 수학자 한 사람을 보내, 에어디쉬의 관심을 수술에서 비껴가게 해달라는 것이었죠. 멤피스 대학 수학과는 그 요구에 응했고, 그제서야 수술이 원만히 진행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심장도 좋지 않았습니다. 가벼운 심장마비를 일으키고 입원했을 때, 이번에도 그는 수학을 연구할 시간에 쉬어야 한다는 사실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병실에는 수학 저널을 가득 쌓아 놓고, 침대에 누워서 세 그룹과 동시에 수학을 토론하곤 했지요. 한쪽 구석에 있는 그룹과는 헝가리어로, 다른 구석에 있는 그룹과는 독일어로, 그리고 나머지 그룹과는 영어로 수학 토론을 한 에어디쉬. 수학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명씩 병실을 드나들자, 병원측의 짜증은 극에 달했지만 에어디쉬를 멈추게 할 순 없었습니다.
1996년, 건강이 몹시 안 좋아졌을 무렵. 조합론, 그래프 이론, 계산 이론에 대한 국제 심포지엄이 3월에 개최되었습니다. 에어디쉬는 자신의 생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상했지만, 수학에 대한 열정으로 평생을 살아온 그로서는 심포지엄에 불참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심포지엄에서 칠판에 무언가를 쓰다가 막대기처럼 몸이 굳어지면서 앞으로 쓰러진 에어디쉬. 가슴에 마이크를 부착한 채로 강단에 엎드려 있는 그를 보고 사람들은 크게 당황했지요. 그 때 에어디쉬가 의식을 회복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가지 말라고 해 주세요. 설명해 줄 문제가 두 개나 더 남아 있어요.”
이처럼 평생 수학에 대한 탐구를 멈추지 않았던, 에어디쉬는 1996년 결국 눈을 감습니다. 에어디쉬는 ‘죽는다’를 ‘수학을 그만둔다’라는 말로 표현하고는 했지요. 그렇게 에어디쉬는 심장마비로 수학을 그만두었지만, 그의 뜨거운 열정과 집념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영원히 남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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