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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모와 함께 쓰러진 나라의 자존심 - 을미사변

양승복 |2006.04.26 12:40
조회 188 |추천 0

새벽 5시경 경복궁에 침입한 일본인 자객들이 "여우를 베어 버려라!"라는

외침과 함게 궁을 짓밟기 시작했다. 그들은 고종과 왕세자를 구석으로 몰아

넣고 위협했으며 중전 민씨[명성황후]를 살해하고 시신을 불살랐다.

이것이 바로 조선의 국모가 일본인 손에 비참하게 시해된 을미사변이다.

         

1894년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마관조약{시모노세키 조약}'을 체결 하였다.

청이 조선에 대한 지배권을 포기하고 대만과 요동반도를 일본에 양도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고종과 중전 민씨는 일본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러시아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이에 러시아는 독일 프랑스와 손잡고 요동반도를 반환할 것을 일본에게 요구 하였고 일본은

순순히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청일전쟁에서 승리하고도 국제정세를 이용한 중전 민씨의 지략에 밀려 난 것이다. 결국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을 차지하는 데 가장 높은 장애물로 중전 민씨를 지목하고 암살

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1895년 10월 8일 일본준 장교가 이끄는 군대가 일본 낭인들과 함께 야간 훈련을 구실로

경복궁에 나타났다. 궁궐수비대가 총격전이 한창일때 은밀히 대궐담을 넘은 자객들은

고종과 중전 민시의 침전이 있는 건청궁으로 달려갔다.

 

이들은 궁내부 대신 이경직을 살해하고 궁녀와 환관 40여명을 마구 지르고 베며 중전

민씨를 찾았다. 마침내 발견된 중전 민씨는 그들의 손에 의해 45세의 짧은 생을 마쳤다

 

그 뒤 고종은 일본의 강압에 의해 '짐의 총명을 가로막고 인민을 괴롭혔다'는 구실로

중전 민씨를 페위하였으나 이내 복위 시켰다.

 

그리고 2년 뒤인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였는데 바로 이때 고종임금이 황제가 되면서

중전 민씨에게는 '명성황후'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사건에 개입한 일물들은 교수형에

처하거나 파면당했지만 정작 주범이었던 일본인들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못한

채 사건을 마무리 되었다.

 

국내외의 비난을 잠재우기 위해 단발령을 내리고 군사제도를 개편하였으며

태양력 사용 들을 시행했다. 하지만 왕비가 무참히 학살된 데 대한 백성들의

반일감정이 극도에 달한 상황에서 갑작스러운 개혁은 오히려 전국적으로

항일의병을 불러일으키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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