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으로 간 선지자적 비관주의의 실험…이질적 윤리기준과 충돌 (뉴스앤조이)
최준호
|2006.05.01 01:19
조회 268 |추천 1
‘기독교의 양심’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몇 안 되는 인물로 평가되는 동덕여대 손봉호 총장. 탁월한 윤리학자인 그의 도덕론은 흔히 ‘선지자적 비관주의’로 불린다.
그는 비록 성경의 가장 기초적인 정신에 바탕을 둔 도덕론을 주창하면서도 사회는 물론 기독교 내부에서조차 그가 지적하는 것들이 고쳐지고 나아질 수 있다고 믿지 않는다. 하지만 여러 선지자가 했듯이 외치지 않으면 안 되겠기에 그는 고독하고 깐깐한 노학자의 역할을 감당한다.
이 노학자가 서울대 교수직을 은퇴하고 자리를 잡은 곳이 바로 동덕여대 총장 집무실이다. 서울대 교수 시절, 가장 넓은 강의실을 가득 메울 정도로 학생들에게 커다란 인기를 누렸던 그의 이력이 총장직에서도 통할지 많은 관심을 모았다.
그는 우선 총장에게 지급되는 대형차를 거부하고 중형차를 택했다. 평소 작은 차를 타는 것으로 유명한 그의 고집은 총장이 되고 나서도 변함없이 유지됐다. 그의 집에 10년이 훨씬 넘도록 14인치 TV가 안방을 차지하고 있는 것처럼 그는 큰 것과 비싼 것에 대한 소유를 거부한다.
큰 것과 비싼 것과 더불어 그가 가장 혐오하는 것은 거짓말과 부정이다. 이 같은 깐깐함으로 무장한 이 선지자적 비관주의자가 종합대학의 총장직을 수락한 것은 어쩌면 일반의 예상을 깬 선택일지도 모른다.
2004년 9월 동덕여대 총장에 부임한 이후 현재까지 손 총장은 매우 어렵고 까다로운 시험을 치르고 있다. 특히 학교 행정에 있어서 총학생회와 직원노조는 넘어야 할 높은 벽으로 등장했다. 총학생회와 노조가 평가한 손 총장의 성적표는 매우 초라하다. 가 만난 총학생회장과 노조위원장은 모두 손 총장이 자신들의 조직을 탄압한다고 말하고 있다.
실명 비평으로 유명한 강준만 교수가 ‘이 시대 진정한 보수주의자’라고 호의적 평가를 내렸던 손봉호라는 인물이 대학 총장직을 맡은 후 그 권력을 과도하게 휘두르며 총학생회와 노조를 ‘탄압’한다는 비판의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과연 손 총장은 비판 받을 만한 일을 했던 것일까. 아니면 서울대 교수 시절부터 현재까지 수많은 NGO에서 늘 자임했던 선지자의 역할을 동덕여대에서도 행하고 있지만, 이들 조직에서는 이런 행동이 탄압으로 여겨지는 것일까.
‘탄압이냐 아니냐’는 보는 논점에 따라서 판단이 엇갈릴 수 있다. 동덕여대 사태의 핵심 논점 중의 하나인 총학생회 선거 문제를 둘러싼 양측의 견해를 살펴보는 것은 진실에 가깝게 접근하는 유효한 방법일 것이다.
우선 양측 갈등의 근저에는 총학 선거규정 문제가 자리 잡고 있다. 문제의 조항은 ‘현직 총학생회 회장이 차기 회장을 뽑는 선거 전반을 책임지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이 된다’는 내용.
학교 측이 왜 이 조항을 문제 삼는지는 손 총장이 걸어온 길을 살펴보면 쉽게 납득할 수 있다. 손 총장은 윤리학자답게 정직을 최고 덕목으로 삼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나 공명선거운동에 주력하고 있다.
손 총장이 보기에 총학 선거규정 중 문제의 조항은 매우 부정직하고 공정하지 않은 내용을 담고 있다. 즉 이 조항을 토대로 총학생회 기득권의 대물림이 용이해지기 때문이다. 교회세습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아끼지 않는 손 총장의 도덕적 양심은 총학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하지만 이 선거규정에 대한 손 총장의 도덕적 기준은 총학생회라는 조직의 입장에서는 매우 비도덕적인 외압, 즉 부당한 간섭으로 치부된다. 비록 공정하지 않은 요소가 있다고 할지라도 엄연한 규정으로 채택된 이상 내부의 민주적 절차를 거쳐 개정되기 전에는 외부의 간섭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 총학의 논리다.
손 총장이 평생 지켜왔던 윤리기준과 총학의 논리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따라서 이 선거규정을 둘러싼 학교와 총학과의 마찰은 거의 필연적이다. 손 총장은 아마도 총장직을 그만두더라도 부당하게 생각되는 선거규정을 묵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지난해 11월 야기된 총학 선거 부정시비는 양측 갈등의 불씨를 더욱 확산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이 문제가 명확하게 결론이 나지 않은 가운데 학교 안팎에서 ‘총학 탄압’이라는 여론이 제기되자 마침내 손 총장은 4월 25일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는 담화문에서 “총학생회 선거에서 실제 투표자의 수가 총 유권자의 50%에 미달하고 선거인 명부가 조작되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어 크게 당황하고 있다”고 말하고 “믿을 수 있는 전문인 양성을 교육목표로 삼고 있는 총장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다”고 밝혔다.
학교가 제기한 선거부정 의혹에 대해 총학은 학교 측이 부당한 절차를 통해 의혹을 들추어내고 있어 결코 신뢰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동덕여대 총학이 조직적 선거부정을 했는지 안 했는지 여부에 대한 실체적 진실은 사법기관이 판단해야 할 정도로 복잡하다.
손 총장이 비록 담화문에서 선거명부 조작에 대한 확실한 증거가 발견되었다고 발표했지만 그 증거물을 외부에 공개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는 내심 총학이 모든 선거부정 사실을 인정하고 해명할 때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제로 선거부정을 범했다 하더라도 총학이 손 총장의 도덕적 기준 밑으로 항복(?)할지는 의문이다. 총학은 학생 개개인이 갖고 있는 윤리적 기준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들 나름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한 집단으로서의 윤리기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손 총장은 윤리학자나 운동가로서 시민단체를 이끌 경우 윤리적 가치관의 동질성을 갖는 구성원들의 한결같은 지지를 받아왔다. 하지만 대학은 사회적 성취를 주목적으로 삼는 학생, 다양한 목표를 갖고 있는 교수와 직원 등 이질성을 갖는 여러 군상의 집합체다. 우리 시대 대학은 신성한 학문의 전당이기보다는 그들 각자의 이해에 따라 비도덕적 성향을 집단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손 총장은 교수 시절 사회는 물론 심지어 교회조차 자신이 내세우는 윤리적 가치기준을 따르지 못할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비관주의적 태도를 견지했다. 하지만 막상 총장의 권한을 갖게 된 후 그의 학교 내에서의 선지자적 외침은 막강한 구속력을 동반하고 있다.
총학생회와 노조는 그것을 가리켜 ‘탄압’이라고 보는지도 모른다. 반면 손 총장은 자신의 의도를 탄압으로 몰아붙이는 이들 조직을 너무나 아픈 심경으로 바라보고 있다. 결국 손 총장 역시 불행한 학내 사태 속에서 매우 불행한 처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