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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간이식 병동이다. 내가 사는 곳은 대전이고 여기는 서울 A 병원이다..무섭게 오는

김진경 |2006.05.14 15:29
조회 152 |추천 0

여기는 간이식 병동이다. 내가 사는 곳은 대전이고 여기는 서울 A 병원이다..무섭게 오는 간성혼수로 인해 대전에서는 5개월 정도 일반 내과에서 그렇게 아무런 희망없이 지내다  이제는 대전에서는 이식 수술 이외에는 희망이 없다는 판단을 친척들과 우리 가족 모두 결론을 내렸다,

난 아빠의 간병을 위해 직장도 학교도 모든 개인적인 내 일은 중단하고 서울에 갈 정보만 뒺적이었다...사실 너무나도 정보가 부족해서 난 서울에 올라오기 전부터 인터넷을 웹 셔핑을 해서 제일 잘 본다는 병원과 의사선생님을 찾았다...우리나라에서도 제일 이고 세계에서도 알아준다는 정보를 얻었다 그 후로 여기 병원까지 정말 무식한, 무댓보로 대전에서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에 무작정 올라 오게 되었다..

사실 이렇게 무댓보로 병원을 쳐 들어 올 경우에는 대부분 그냥 내려가라 든지 그냥 몇일간 응급실에 두는 경우가 있다라고 들었기 때문에 무섭기도 했다.그래서 응급실에 가자 마자 간성혼수도 한번 밖에 없었는데 3번 있었다고 협박 아닌 협박을 하고 무조건 아빨 접수 부터 해야 한다는 생각만 앞서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아빠는 상태가 심각해서 그런지 응급실에 온지 만 24시간 만에 병실에 올라 올 수 있었다..응급실에서는 죽음 직전에 왔다라고 한다.

병실에 와서 입원한지 2주만에 아빠는 드뎌 간이식 수술을 받게 되었다....간기증자는 아빠 아들, 남동생이 먼저 수술장에 들어 가고 그리고 아빠가 수술장에 들어 갔는데 수술장에 들어가는 아빠가 얼마나 불쌍했는지...난 애써 눈물을 참았다...    그리고 아빠랑 화이팅을 한 후에 아빠와 우리 가족은 만 하루가 지난 16시간만에 아빠를 만날 수가 있었다. 수술은 성공적이란다.

 얼마나 기다렸는지 기다리는 내내 신이란 모든 신께 울며 기도 했는데 신도 내맘을 알아주신걸까?? 아빠는 일주일 정도 중환자실에서 다시 무균실에 올라 왔다 무균실에서 3일정도 눈도 뜨고 말도 하고 했는데 무균실에 온지 삼일만에 아빤 다시 새벽에 수술실에 들어갔다 뱃속에서 피가 흐른다고.... 엄마와 난 손과 발이 떨렸다 혹 아빠가 잘못되면 어쩔까 하고 말이다..

다시 아빠는 중환자실에 있게 되었다 저번 삼일과는 다른 아빠의 모습에서 이제는 더많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날 더욱 아프게 했다...중환자실은 하루에 면회를 두번 밖에 할수 없는 곳이 였다 엄마와 난 아침에 면회를 하고 나서 엄마는 법당에 난 예배당에 가서 각각 기도를 했다. 빌수있는 어느 신께라도 아빠가 빨리 회복 되게 해달라고 말이다...

난 단하루도 아빠 없는 세상을 꿈꾸지 않았는데....

수술하고 나면 펄펄 날아 다닐 것만 같았는데...
숨소리에 놀라고, 당신이 엄마 엄마 하는 소리에 놀라고.
자신의 이름을 하염없이 부를때 마다 놀라고.
엄마 나 버리지마 하는 소리에 하염없이 눈물 흘르고,
그렇게 동경이 많은 분이신데,,,아빠는 그렇게 중환자실에서 하염없이 이렇게 아무도 모른체 헛소리만 했다.

도대체 난 얼마나 많이 가슴 조리며 있어야 하는것일까?? 수술을 두번해서 그런지 전신마취가 무서운 것인지, 아직 본인의 이름도 모르고, 사는곳도 모르고, 눈앞에 보이는 혈연지간도 모르고, 모르는게 너무 많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마음이 너무 괴로웠습니다...
불쌍해서 볼수가 없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은 날 기도하라 하심의 원망이 여기 까지인 것일까?
내가 받는 고통보다, 흐느끼며 병과싸우는 당신이 더욱 괴롭다는 것을 알지만....
안타까워 볼 수가 없습니다...
눈도 뜰 수 없이 무의식에서 얼마나 괴로울까......
그렇게 2주간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중환자실에서는 병동 무균실에 올라가서 가족과 함께 있는것이 낮겠다는 판단으로 아직 의식은 없지만 아빠는 무균실에 올라왔다.  

워낙 소리도 많이 지르고 요동을 치는 바람에 손과 발은 피 멍이 가시질 않은체 무균실에 옮겨졌다.... 

워낙에 무균실에서는 환자와 보호자 이렇게 밖에 있을수가 없는데 우리 아빠는 워낙 몸부림이 심해서 나도 들어갈수 있는 허락을 받았다....

하루에도 열 두번씩 친구 친척들의 전화를 받으며
매일 똑같아요 라는 메세지만 줄뿐 아무런 말을 해줄수 없다는 것이 더힘이 들게 했다. 

소망하는것은
더 나쁜 환자들을 보면
나의 걱정은 사치라는 생각으로 위로를 하곤 합니다
사지가 불구인 환자들도 있을 터인데
울 아빤 그렇게 까지는 아니잖아 하며 말이죠

하지만 하루에 한껀씩 터지는 시술은 일어 나지 않기를 기도 하죠

언제 깨어날지 모르는 아빠의 새벽 눈빛은 아프지 않았을때
매일 같이 나를 불렀을때 모습들에서 웃음만 흘러 나옵니다.

울 아버진 정말 멋있는 분이 셨는데 48밖에 몸무게가 없구
참 병이 이렇게 형편없는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순간이었다

얼굴에서는 금방이라도 눈뜨고,걸으며 집에 가자 말 할것 같은데.........

이렇게 늦게 일어나는 것은 언제든지 기다릴수 있지만
절망적인 희망이 없다는 말만은 하지 말라고 누구에게라도 붙잡고 호소 하고 싶었습니다

무균실에서의 생활은 정말 가족과 같은 분위기의 생활이었습니다...간호사님들이 극진한 수행에 아빠가 더욱이 아파도 행복해 보이는 느낌을 받았다... 매일 새벽4시면 씻기고, 옷갈아 입히고 약 먹이고 하는 반복되어지는 일들이 한달을 보게 되었습니다...무균실에서는 아빠가 대소변을 못갈아서 정말 살이 빠지는 느낌이 들 정도 였습니다..물론 간호사님들이 알아서 다 해주었지만 먹는거 없이 영양제 하나로 하루에도 7~8번을 대변을 보는 아빠가 밉기도 했습니다..소변이 조금만 묻어도 찡찡대던 아빠~~~ 그래도 난 아빠가 정말 힘들게 해서 미울때도 있었는데 그런걸 다받아주는 간호사님들께 정말 존경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 였습니다...새벽이면 x-ray를 찍어주시는 분들께는 아빠의 발길짓 때문에 많이도 민망하고,죄송한 일들이 너무 많았습니다....여기 저기 검사실에서는 우리 아빠 이름만 들어도 또 오셨네요 아직도 소리 지르고 그러시냐는둥 검사실 선생님에게 욕하는 것은 다반사이고,그 정신없이 소리지는 통에 검사 못하고 늦어지는 일들이 많았던 무균실의 생활이었습니다.이렇게 정신이 없음 정말 사람이 사람이 아닌 이렇게 되는구나에 또 한번 난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무균실에서 한~~ 한달이 체 지나서야...아빠가 이제 깨어 나려 하는지
욕도 많이 하고 간호사님들과도 대화도 했습니다. 어짜나 기쁜지 세상에서 이보다 더 기쁜일은 아마도 없을 듯 했습니다...
이제 수술하진 한달하고 보름이 지나서 많이 걱정했던 일들이 서서히 줄어드는것 갔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걸어다니고 하는 일들은 무리 이지만 말도 하고 당신이 의사 표현을 하고 있다라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조금은 말이 많아져서 밤에 잠을 못자는 통에 덩달아 보호자도 잠을 못자는 경우도 있는데 그래도 괜찮습니다...이래도 저래도 너무 사랑하는 아빠가 눈을 뜨고
말도 하고 하는 모습을 보니 그 동안 피곤한 모습이 다 없어지는 듯 했습니다

매일 하루에 한끼 두끼 라면만 먹었는데 이제 저두 밥먹고 기운내서 더 열심히 간호 해야 할것 같았습니다...

아빠는 정신은 다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간수치는 정상인과 같아서 1인실에 옮기게 되었습니다...1인실에서는 간호사가 없이 보호자가 대신으로 수행을 하니 정말 힘이 들었습니다.하루에도 12번씩 웃었다 울었다 화냈다 짜증내는 일들이 반복 되어지는 나의 간병생활이었습니다..아침 아빠의 식전약 먹이기 부터 하루의 일과가 시작이지만
먹기 싫어 하고 왜 먹어야 하는지도 모르는,무엇때문에 이렇게 있는지도 모르는
그렇게 울 아버지를 위해 난 먹을때마다 설명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궁금한 것이 많을까?
울 아빠는 식전약 부터 그약이 뭔데??? 해가며 조잘조잘 자꾸만 물어본다
설마 살릴려고 하지 뭐 이 약이 독약인줄 알아 하며 난 또 조잘 조잘 자꾸 대꾸를 했습니다..
그렇게 전쟁은 시작 되고, 약은 그래도 잘 받아 먹는데 울 아버진 전혀 쌀은 먹으려 하지
않은체 약만 잘도 받아 먹는 아빠가 너무나도 코미디 하는것 같아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본인이 배가 고프면 여기 저기서 주섬주섬 잘도 찾아서 먹죠
그래서 작전을 바꿔서 여기 저기에다 감자 놓고 과자놓고 과일놓고 한다..
그리고선 배고파 아부지,, 물으면 아빤 배야 많이 고프지 안줘서 못먹지 한다..
어찌나 어이없고 기막힌 이야기인지 참을 수 없이 웃고 나서 이것 저것 음식을 대면
그래도 면 종류의 음식은 딱힌 먹는다고는 안해도 그건 괜찮지 먹을만 하지 한다
부랴 부랴 난 얼른 식당가서 사오며 몇 젖가락 밖에 먹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렇게 라도 있는 아빠가 사랑스럽기만 하다.....

그렇게 저녁 까지 밥 먹이기 전쟁에서 취침약 먹이기 까지 하루의 여정이 끝나고 나면
나의 자유시간이다....
정말 하루 종일 피곤하면서 반복되어지는 시간들 속에 나 또한 빨리 잠을 청해야 하지만
그래도 휴전을 하고 난 후의 시간 만큼의 고요한 자유시간을 너무나도 기다리고 기다렸기에 나 혼자만의 시간에서 난 빠져나오고 싶지 않을 만큼 헤메고 있다...

수술한지 이제 2달이 다 되어가는데 아직 까지 정신이 완전히 돌아오지 않고 있는 울아빠
아직 수술후의 후유증일까? 아님 새생명을 얻은 것에 인정하고 싶지 않을 걸까?
가끔은 너무나도 불쌍해서 눈을 뗄 수가 없지만
그전에 무의식에서 있을때는 제발 눈이라도 뜰 수 있게 해달라고 있는 모든 신께 다빌었는데 지금은 아직까지 현실에서 있지 않고 정신없는 딴 소릴 할 때면 진짜 알 수 없는 말 들 때문에 화가나도록 웃게 한다.

아빠가 정신없는 소리에왈 난 뭐갖고 이제 집에 가냐는 둥
재산도 이제 하나도 없는데 뭘 갖고 사는냐는 둥의 소리는 진짜로 하는 소리인가?
수술 비용이 많이 들었다고 계산하고 있는것일까???

돈이라는거 있다가도 없는 거라 세상적인 말을 수없이 반복하고 있는 나
서른이 다되어가는 난 철이 없는것일까?
그래 그것이 별것이냐 해도 그 별 것이 맘을 다 헤쳐 놓기만 한다
소리 없이 그렇게 잔잔한 울림으로

어제의 아빠의 행동은 병원 침대 밑에
내가 깔고 자는 돚자리를 밑에 깔고 눕는 행동을 한다
거기가 더 편하다고 ....
아빠 마누랄 붙잡고 여기 왜 있는데
빨리 집에 가자고 하신다
난 가만히 두분 행동들에 웃음 밖에 나오질 않는다
정작 심각성을 모르는 나 일까???

난 믿는다 시간이 그 모든 것을 해결 해 줄 것이라고...
믿고 믿고 싶은데 ...아닐까???

오늘은 회진 오신 주치선생님은 아빠는 간수치는 정상에 가까우니 정신만 돌아 오면 된다는데 하시며 다음주에는 퇴원을 생각하자 하신다..

그 말을 알아들은 우리아빠 더 빨리 가자 하신다
하여간 오늘은 조금은 많이 없어진 아빠 모습에 또 당황스럽기만 하다...
단 집에 가자는 말은 여전하지만....
그래서 하루종인 행동이 집에 빨리 가자는 말과 흐르는 눈물이 더욱이
내 맘을 아프게 합니다

아빤 정말 깨어나면 내 이 맘을 알아 주실까???
그래 이 두근거림이 없었다면 너무나도 고요했을 내 삶이지만
닫히면 또 열릴 문을 닫고,,, 내 푸른 심장을 적시다.

우리 가족이 모두가 행복하게 웃는 그 날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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