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어린왕자...에필로그

윤민아 |2006.05.14 15:45
조회 930 |추천 3
------------------------------------------------------------ 몇번이나 읽기를 시도한 어린왕자...번번히 끝을 내지 못하고 이해못하고 덮고는 하던 책!다시 읽기 시작하면서 난 내가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워만 했던 이유를 조금씩 알것 같다. 어리석은 어른! 어쩌면 그래서 이책이 그렇게 어려웠나보다.세속에 이미 푹 젖어있는 나는 어린왕자의 세계를 전혀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 같다.수없이 반복해서 읽고 또 읽으니 조금씩 조금씩 이해가 된다. 또 다시 읽고 싶어진 이유는 잘 모르겠다.어린왕자를 사랑하는 친구는 말하더라....삶의 자습서 같은 책이라고...아마도 내 삶을 다시 돌아보고 튜닝하는 시간이 필요해서 일까? 난 다시 어린왕자의 세계로 빠져보련다.  ------------------------------------------------------------  앙뚜완느 드 쎙 떽쥐뻬리 (Antoine Marie-Roger de Saint-Exupery)
 

프랑스의 소설가.
범용한 일상을 벗어나 행동적인 인생을 개척하고자 했던 그는
제 2 차 새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용기 조종사로 종군 대전 말기에

정찰 비행 중 행방 불명되었다.
그의 작품은 행동을 통한 명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언제나 어려움, 역경과의 싸움에서 인간이 삶을 영위해 나가는

의의를 찾아 내놓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생애 - 행동 속에서 가치를 추구한 비행인
앙뚜완느 드 쎙 떽쥐뻬리(Antoine Marie-Roger de Saint-Exupery)는

1900년 6월 29일, 프랑스의 리용에서 태어났다.

아버지인 쟝 마리 드 쎙 떽쥐뻬리는 보험회사에 근무하였고,

어머니 마리 보아이에 드 퐁스꼬롱브는 프로방스 지방 출신이었다.

  쎙 떽쥐뻬리의 어린 시절의 모습은 <어린 왕자>의 주인공과

너무나 흡사하다.

곱슬곱슬한 갈색 머리털을 가진 이 소년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온갖 사소한 일들을 경이와 찬탄으로 바라보았고,

유난히 법석을 떨고 잔꾀가 많은 반면, 항상 생기가 넘치고 영리했다.

 철이 들면서부터는 시(詩)를 쓰기도 했고 자기 나름대로의 세계관을

정립하고, 엉뚱하게도 돛달린 자전거를 고안해 내는 등 그의 창의적

노력을 발휘하기도 했다.

 그는 대단한 집중력의 소유자였고 어떤 하찮은 것도 꼭 기억하는

버릇이 있었다. 무엇이나 새로 시작하는 일이면 정신없이 몰두해

버리고, 감정이 풍부하며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느껴야만 직성이

풀리는 다정다감한 소년이기도 했다.

 1913년 스위스의 후리부르에 있는 마르시스트 학교에 들어가고

나서는 신과 종교 문제에 관해 심각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찬미자였던 그는 형이상학적인 고민과 존재의 허무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을 감지하는데 그쳤을 뿐, 당시 젊은이들이 쉽게 빠졌던

회의주의자는 결코 되지 않았다.

 


 청년 쎙 떽쥐뻬리의 모습은 자신감에 넘치는 뛰어난 인물이기보다는

매사에 깊이 사고하고, 무슨 일에든 정열적이었으며 미지의 세계에

대한 많은 것들을 꿈꾸는, 그러면서도 무척이나 친절하고 너그러운

성품의 소유자였다.

 1917년 6월, 대학 입학 자격 시험에 합격한 후 10월 파리로 건너가

보쉬에 대학에 들어가 해군사관학교에 들어갈 준비를 하였으나

구술 시험에서 실패했기 때문에 1919년 10월 파리 예술 대학에

들어가 15개월간 건축학을 공부했다.
그가 <어린 왕자>에 직접 삽화를 그리게 된 것도 이때의 덕이라고

볼 수 있다.

 1921년 4월 2일, 그는 마침내 군복무를 위해 떠나게 되고,

가르드 지휘관하의 스트라스부르에 위치한 제2항공부대에

편입되었는데, 그가 맡은 임무는 비행기를 수리하는 작업이었다.

전시 조종사가 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했다. 그는 6천 프랑의

계약으로 <파르망>에 관한 개인 지도를 받았고 겨우 1시간 20분의

연습만에 <소프위드>라는 비행기를 몬 후, 불길에 싸인 마룻바닥에

기적적으로 착륙하는 데 성공한다. 드디어 자격증을 따낸

쎙 떽쥐뻬리에게 37부대 업무 명령이 내린다.

 1923년 1월, 부르제에서 그의 생애 최초로 큰 비행기 사고를 당하여

두개골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는다. 그는 바레스 장군의 호의에 힘입어

직업 공군이 되려고 하였으나 약혼녀의 반대로 3월, 소위로 제대를

하게 된다.

1924년 쏘레 공장의 외무원으로 몽류쏭 지방을 순회하며 18개월

동안 겨우 트럭 한 대만을 파는 반면, 문학에 온 정열을 기울인다

 1926년 4월 1일, 쟝 프레보는 <은선(銀船):Navire d'Argent>이라는

잡지에다 쎙 떽 쥐뻬리의 단편 하나를 게재한다.

(<쟉끄 베르니의 탈주>라는 제목의 그 작품은 현재 원고의 행방을

모른다.) 봄에 그는 자동차 회사 외무원직을 그만두고 민간 항공 회사에

취업하여 처녀 비행을 시도한다.

 같은 해 10월 11일, 에르 프랑스의 전신인 라떼꼬에르 항공 회사에

입사하여 <야간 비행>의 주인공인 리비에르로 알려진 디디에도라를

알게 되고, 1927년에는 다카르-카사블랑카 사이의 우편 비행을 하면서

밤에는 <남방 우편기>를 집필한다.

 1929년 3월, 쎙 떽쥐뻬리는 프랑스로 돌아온다. <남방 우편기>를

탈고하여 갈리마르 출판사에 선보인 후 계속 일곱 편의 소설을

쓰겠다는 계약서에 서명한다.

그해 10월 12일, 그는 아르헨티나 항공 회사의 책임자로 임명된다.
그의 임무는 코모도로 리봐다비아와 푼타아레나스의 노선을 개설하는

것이었다. 조종사로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하던 시기이다. 자신이

직접 탐방 비행을 해보는가 하면, 트레레브와 바이아 브랑카 기지도

마련한다. <야간 비행>을 집필하다.

 1930년에는 <남방 우편기>가 출간되었고, 4월 7일에는 민간 항공

업무에 봉사한 대가로 레지옹도눼르훈장을 받는다. 그해 6월 13일에서

20일 사이 쎙 떽쥐뻬리는 안데스 산맥을 무착륙 비행하며 실종된 친구

기요메를 찾기 위해 고심하다가 기요메가 구조되었음을 알고,

그를 비행기에 태우고 멘도자를 거쳐 부에노스 아이레스까지 데려온다.

이 기적과 같은 이야기는 <인간의 대지>에 자세히 소개되어 있다.

 1931년, 우편 항공 회사의 복잡한 사내 사정으로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파리로 돌아온다. 그해 12월, <야간 비행>이 페미나 문학상을

받음으로써 이제 그는 작가로서 공히 인정을 받게 되었다.

<야간 비행>은 곧 영어로 번역되고 미국인들에 의하여 영화화되기까지

하나 그의 재정적 궁핍은 여전하기만 했다.

 1932년 2월, 더 이상 금전상의 궁핍을 견딜 수가 없어 항공 회사에

다시 취직한다. 겹쳐 오는 재정적 난관과 거기에 따른 정신적 불안으로

쎙 떽쥐뻬리는 그의 생애 중 가장 불안하고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1935년 4월 29일 , 일간지 <파리 쓰와르>지의 특파원으로

모스코바를 방문하여 한 달 남짓 머무르면서 그는 에르 프랑스를

위한 강연회도 갖는다.

 같은 해 12월 29일, 그는 기관사 프레보를 동반하고 애기(愛機)

<시문>을 타고 부르제 공항을 떠난다. 이 비행은 1936년 1월 1일까지

앙드레 쟈피의 기록을 깨는 사람에게는 1만 5천 프랑의 보상금을

주겠다는 제의 때문에 시도된 비행이었다.

그는 파리와 사이공간을 47시간 이내에 비행해야만 했다.

그러나 비행 4시간 15분만에 쎙 떽쥐뻬리의 비행기는 리비아 사막에

추락한다. 기관사와 닷새 동안을 걸어 갈증으로 사경을 헤매게되었을

때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베두인 대상에게 발견되어 구원이 되는데,

이 사건도 <인간의 대지>에 감명깊게 소개되어 있다.

 1937년 6월에는 <파리 쓰와르>지의 특파원으로 내란이 한창인

에스파니아의 카라바쎌과 마드리드 전선에 가서 전투에 관한 기사를

쓴다.

 같은 해 9월에는 <시문>기로 뉴욕 - 띠에라 델 푸에고간 장거리

비행에 대한 공군성의 허가를 받고 뉴욕으로 건너가,

1938년 2월 15일에 출발하여 과테말라에 도착하였다가 다시 이륙할 때에

속력이 떨어져 추락, 중상을 입는다.

 1938년 3월 28일에 뉴욕으로 돌아가 정양을 한 뒤 프랑스로

귀국할 때 그는 몇 해 동안 조종사로 일하며 틈틈이 써 놓은 원고를

가지고 왔는데 그의 대표작인 <인간의 대지>가 바로 그것이다.

 <인간의 대지>는 1939년 2월에 출판되었고, 같은 해 6월에는

이 작품이 <바람과 모래와 별들>이라는 제목으로 미국에서

출판되어 <이 달의 양서>로 선정될 만큼 인기를 얻었다.

 1939년 <인간의 대지>가 아카데미 프랑세즈의 소설 대상을 받는다.

 그해 9월 4일, 예편되었던 쎙 떽쥐뻬리 대위는 다시 동원되어

공군 지도자 양성 책임을 맡는다. 그는 정보부에서 일해 달라는

제의를 거절하고 11월 3일, 정찰 임무를 맡고 있는 2-33중대에

들어간다.

 1940년 8월 5일, 군에서 제대를 하고 난 후 다시 <성채>를

집필하기 시작한다.

 1941년 뉴욕으로 돌아와서 <전시 조종사>의 집필에 전념,

다음 해 2월 뉴욕에서 <전시 조종사>가 출판되고 최고의 찬양을

받는다.

 1943년 2월, <어느 불모에게 보내는 글>이 발간되고 4월에는

<어린 왕자>가 출판된다.

 연합군의 북아프리카 상륙 작전이 성공하자 쎙 떽쥐뻬리는

알제리에 있는 2-33대 정찰 비행단에 재편입을 위한 교섭을 하여

미국인 지휘관하에 들어가 우즈다에 주둔하고 있는 본대에 1943년

5월에 편입된다.

 7월 21일, 론느 계곡과 프로방스 지방, 아게이 상공을 날며

정탐하는 임무를 마치고 귀환하다가 대수롭지 않은 사고를

일으켰는데, 이것을 기회로 미국 정부 당국은 그를 예편시킨다.

1944년 5월, 그 당시 폭격 중대를 이끌고 있던 샤쎈 대령은

쎙 떽쥐뻬리가 그의 중대에 편입되어도 좋다는 상부의 허가를 받는다.

쎙 떽쥐뻬리는 2-33대 정찰 비행단에 복귀할 희망으로 그 기지로 가서

훈련 비행을 하였고, 지중해 연안 항공 대장인 이카르 장군과의 면담

끝에 5회 이상을 비행하지 않는다는 조건하에 2-33대 정찰 비행단

복귀를 승낙받는다.

 그러나 그는 5회의 출격 약속을 어기고 이미 8회의 출격을

마치고도 계속 출격을 고집했기 때문에, 비행 대장은 쎙 떽쥐뻬리를

8월 1일 남부 지역 공격에 참가시킨 후 더 이상 비행기에 타지 못하도록

결정을 내린다. 마침내 1944년 7월 31일 8시 30분, 그르노블 - 안스씨

지구에 마지막 출격 허락 명령을 받고 이륙했으나 그 길로 그는 영영

불귀의 객이 되고 만다. 코스시카의 바스띠아 북쪽 1백 킬로미터쯤

되는 지역에서 독일군 정찰기에 의하여 격추되었으리라는 추측이다.

 11월 3일, 이렇게 하여 조종사이며 위대한 한 사람의 행동주의

작가였던 쎙 떽쥐뻬리는 군대 명부에 사망자로 기입되었고,

그때 그의 나이는 겨우 44세였다.

추천수3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