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아, 원강, 원승, 원명, 원녀, 원필, 원송, 김해경어린이, 원타, 원국, 원정, 원자, 원유, 원숙, 원경, 원향, 원지수, 원행, 원달님 모두 19명이 안동 순례에 다녀왔습니다.
10일 봄나라 12인승 스타렉스, 원국님 차가 운니동 센터에서, 원자님 차가 경기도 광주에서 출발하여 중간의 휴게소에서 만나기로 하고 9시 조금 넘어 출발하였습니다.
일찍 출발하였음에도 차가 막혀서 예상했던 시간보다 늦게 안동에 도착하였는데, 차에서 배가 고플때는 다행히 원덕님이 싸주신 쑥떡하고 요플레, 방울토마토를 먹었습니다.
안동톨게이트에서 원녀님, 원명님과 합류하였습니다. 원녀님이 며칠동안 안동에 계속 비가 내렸는데 오늘 오전에 비가 멈추었다 하였습니다. 안동 도착하여 제일 먼저 가게 된 곳이 가일입니다. 정식명칭은 가곡이지만, 동네 사람들은 그렇게 부르면 잘 모르고 가일 이라하면 잘 안다고 합니다. 그곳에 원아님이 다닌 초등학교가 있는데 앞에 연못이 있고 그 주위로 산이 둘러싸여서 아늑한 느낌을 주었습니다.
원녀님이 싸주신 도시락을 먹을 곳을 찾아보았는데, 마침 원아님 초등동창분을 만나게 되어 그분 가게 옆 마실같은 곳에서 새싹말이랑 떡, 식혜를 먹었습니다. 도시락을 배불리 먹은 봄님들은 서울에서 늦게 출발한 원승님을 기다리면서 각자 연못에 제비뜨기도 하고, 2, 300년된 느티나무 밑에서 사진도 찍고, 원아님 다닌 초등학교를 둘러보기도 하였습니다. 아기 똥풀을 뜯어 줄기를 꺾어보기도 하고 동네풍경을 보면서 감탄하는 중에 원아님 동창분이 봄님들보고 "사람들이 순수하니 좋아보인다" 고 하였고, 원아님은 "자네가 좋게 봐주니 그렇다"고 말하였습니다.
차를 타고 안동 하회마을이 전체적으로 내려다 보이는 부용대로 향하였습니다. 부용대 올라가는 입구 어귀에 겸암선생의 화천서원이 있었습니다. 겸암선생과 서애 선생은 원아님댁 어르신입니다. 형제분으로 겸암선생이 형님이 되시는데, 벼슬자리는 형님이 동생분에게 양보하고, 겸암선생은 주로 학문에 힘쓰셨다고 합니다. 겸암 류선생과 학봉 김선생이 퇴계 이황선생님의 수제자 인데 학봉 김선생님은 원녀님 댁 어르신이라 합니다.
부용대 올라 하회마을을 내려다보니 수태극, 산태극이 실감납니다. 물과 산이 뒤집어진 s자 형태로 돌아나가는 중간에 부용대가 위치하고 물이 감아나가는 사이에 하회마을이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모양이 나오는지 감탄을 할 만큼 하고 원타님과 원국님의 결혼식이 있었습니다.
원녀님이 마련해주신 원타님의 화관과 부케가 그날따라 아름다운 신부를 더욱 돋보이게 하였습니다. 화관 쓴 신부는 하얀 블라우스에 청바지, 신랑은 하얀 셔츠에 면바지 입었는데 식을 올린다 하니까, 두분이 신발과 양말을 벗었습니다. 주례를 원아님이 보셨는데, 단 두 질문으로 마무리 하셨습니다. "신이 인간에게 무엇을 주셨습니까?" 하니 봄님들이 "자유의지"라 대답하였고, "그러면 우리 봄나라의 신랑신부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합니까?" 질문하셔서 "네!"하고 봄님들이 힘차게 외쳤습니다.
아무 절차도 준비하지 않아 순간적으로 난감한 뻘쭘함이 들 때쯤 원향님이 사회를 보시듯이 이거해라, 저거 해라 하셨고 그거에 맞추어 움직이니, 일반 결혼식에서 하는 모든 절차는 다 밟은 듯 합니다. 신랑신부 입장과 퇴장, 주례, 반지교환, 맞절도 있었고, 축가(대지의 항구)도 있었고, 촛불 두개 밝힌 케잌도 있었고, 식권(케잌스푼)도 있었습니다. 아름다운 합일식이었습니다.
마침 부용대에서 하회마을 내려다보고 있던 관광객 3분이 같이 축하해주고 케잌도 먹어주었습니다.
식 마무리에 "무극에서 태극이 나오고, 태극에서 음양이 나오는데 여기서 식 올린거야" 선생님이 지나가듯 말씀하셨습니다. 식 올리는 중간에 이상하게 벅차서 눈물이 나던데, 입을 맞추어 아름다운 결혼식이다고 하면서 부용대를 내려오는 중에 오래된 옛일처럼 아득하였습니다.
부용대에서 내려와 5,10분 거리 정도에 떨어져 있는 서애 유성룡 선생의 옥연정사를 방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