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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5.18.

김동현 |2006.05.18 02:30
조회 114 |추천 2

오늘은 5월 18일이다.

 

난 그때 태어나지도 않았다.

 

고등학교때 국사 공부를 한다고 '한국사 100장면'이라는 책을 샀었는데, 거기 끄트머리에 광주에 대해 다룬 내용이 있었다.

민간인 학살에 대해 다뤘었는데 별로 와닿지는 않았다. 기억으로는 '머리에 총알 구멍이 나서 피가 줄줄줄 흘러나왔어~'라는 사살당한 임산부의 어머니의 증언..정도가 남아있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이러니까 나이를 꽤나 쳐먹은 것 같군..), 국사를 배울때 현대사쪽은 항상 간략하게 다뤄진다. 아직 그에 대한 평가를 내리려면 좀 더 오랜 시간이 흘러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특별히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학교 교육이라는 커리큘럼 안에서 그 사건에 대해 알 수 있는 지식은 미미했다.

 

 

대학에 들어와서 별로 탐탁치 않게 생각했던 사람들. 운동권 사람들이었다. 난 여기저기 다 옳다고 하는 황희정승같은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도리있는 사고방식을 지닌 사람이었고, 다양한 side의 의견을 모두 머릿속에 넣어놓고 내 나름의 결론을 내보자..하는 나름의 정반합의 시스템을 추구했었다.

 

그런데 그쪽은 주입식이었다. 겉으로는 '함께 이야기해봤으면 좋겠습니다~'라고 해놓고서는 그저 자기들 의견이 최고. 끝이었다. 게다가 10년 넘게 주입식 교육을 받았는데 같은 대학생한테 그런걸 듣는다는게 죽도록 싫었다. 그때부터 난 무관심이었다. 이한열이 어떻게 죽었든, 노수석이 어떻게 죽었든. i don't care. 지금 난 살아있고, 투쟁하고 싶은 생각도 없으며 '그냥 어떻게든 되겠지 뭐..'라는 생각 뿐이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2000년 봄학기가 지나갔고, 여름이 왔다. 그해 여름은 어느 여름보다 더 뜨거웠다. 어어어..하다가 선택하게 된 연극동아리, 지금은 내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연상극우회 때문이었다. 가을학기 초에 있을 정기공연을 위해서 방학동안 연습을 해야했다.

 

'시민 조갑출'. 내가 처음으로 무대에 섰던 연극이다. (이러니까 연극 꽤나 많이 한거 같은데, 별로 안했다.) 항상 생각하길, 지금 다시 두달의 시간을 주고 그 연극을 하라고 한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 것이라 아직도 믿고 있고 아직도 아쉬운 내 첫 연극.

 

내가 맡은 캐릭터는,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고는 그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괴로워하던 남자였다. 그는 어찌어찌 광주에 있었다. 아마 도청쯤에 있었겠지. 그는 광주 그곳에서 싸우다가 죽었다. (불쌍한 우리의 주인공 조갑출씨는 싸우기는 커녕 숨느라 바빴다. 결국 나중에는 그 망령에 시달리며 맛탱이가 가버린다.)

 

아 근데, 내가 어디 전쟁을 해봤나. 총을 쏴봤나. 사람을 죽여봤나. 아무리 감정 몰입을 하려고 해도, 내 캐릭터를 이해하려고 해도, 감이 안오는 것이었다. 첫연극인데 오죽하겠나..스트레스 엄청 받았다.

 

우리의 주인공 조갑출씨와(역시 뭔가 안되고 있었다.) 나는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골똘히 생각하다가, 이 사진들을 찾아냈다.

http://www.bangrang.org/history/kwangjuphoto.html

(잔인하다. 용기가 없다면 클릭하지 말길.)

 

피투성이로 형체도 뭉개진 시체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대화를 나눴다. 점점 뱃속이 뜨거워졌다. 눈시울도 뜨거워졌다. '씨발..이 사람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데 이렇게 죽었어야 할까' 10밖에 안되던 감정은 어느새 100이 되어있었다.

(우리의 주인공 조갑출씨는 아마 매일매일 이분들과 대화를 했을 것이다. 나중에 무대에서 눈도 살짝 풀려있었다. 그래서 아마 가장 기억에 많이 남지 않았을까..한다.)

 

뭐, 결국 난 하지 않은것보다 더 못한 연기를 했지만.

 

그렇게 광주는 내 가슴에 남았다.

 

 

오늘은 5월 18일이다.

 

아버지께서 그러셨다.

 

-역사를 바로 알아야 나를 바로 알 수 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고, 현재는 미래의 거울이다.

 

아버지 말씀은 무조건 옳다고(어릴땐 안그랬지만) 생각하기 때문에 저 말도 분명 옳은 말이다. (이상한 논리지만, 뭐 내 생각이니.)그런데 나는 아직 역사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그에 대한 확고한 의식도 잘 생성되지 않았다. 공부가 부족했던 것인지, 생각이 부족했던 것인지. (좀 잘 살아올껄 그랬다)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서 어떤 섣부른 가치 판단을 하기에는 내 역사의식이 아직 미약하다. 뭐 수십년, 수백년이 지나고 나서 전두환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바뀔지 누가 알겠는가?

 

그런데 그날 어떤 일이 있었는지는, 대략 알고 있다. 무고한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 어떤 역사에서든지 무고한 사람들은 자주 죽어왔다. 다만 나와 다른 나라였고, 다른 시대였기 때문에 와닿지 않는 것일뿐. 나중에 수백년이 지나면 여느 역사책에서처럼 간단하게 다뤄지겠지. 수백년동안 또 셀수 없이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죽어갈 것이겠고..

 

그저..가장 최근에 우리나라에 있었던, 아직 도시의 이름도 바뀌지 않았고 그때 살아있던 사람들이 아직도 살아있는, 역사의 눈에는 신입 핏댕이로 보일 그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이라도 알고 있자.

 

오늘은 5월 18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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