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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 - 아... 그래. 다양한 연기를 보는 것도 중요하니까.
난데없는 두 사람의 등장에
연출은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지만
딱히 그들을 막아야 할 이유도 없었기에
일단 자리를 비켜주었다.
김씨 - 흣차.... 엇차... 으드드득....
허씨 - 쉭쉭, 쉭, 오케이.
...... 왜 감정연습을 하러 나와서
스트레칭을 하고 있는 거냐?
주변 사람들의 시선에 아랑곳없이
목이며 어깨를 풀던 그들은
곧 시합종이 울린 복서처럼
자신의 양 볼을 두드리며 연습실 중앙으로 나왔다.
연출
- 자, 허씨가 =한번만=을 하고
김씨가 거절하는 쪽이야.
방법은 아까 봤으니까 잘 알겠지?
레디, 아바락쑌!
=땡~=
1라운드 공이 울렸다.
허씨 - ..... 한번만.
김씨 - 싫어.
허씨 - 야... 한번만 부탁하자.
김씨 - 내가 왜 그래야 되는데, 인마.
허씨 - 짜식아... 친구잖아.
김씨 - 내가 언제부터 너하고 친구였냐?
허씨 - ..... 그러기냐?
김씨
- 그러기는 그림 속에 기러기가 그러기고....
난 이딴 부탁하는 놈 친구로 둔 적 없다.
허씨 - ..... 네가 나한테 이럴 줄은 몰랐다.
김씨
- 나도 네가 이럴 줄 몰랐어!
어떻게 다른 사람도 아닌 네가 나한테
그런 부탁을 할 수 있냐?
우려했던 것보단 지극히 양호한 두 사람의 연기.
오히려 그 색다른 분위기와 상황은
후배들에게 좋은 예시가 됨직도 했다.
하지만...
허씨 - 그러니까 한번만이라고 말을 하잖아!!
김씨
- 그놈의 한번만, 한번만!
넌 한번이면 뭐든 된다고 생각해?
사람 목숨 하나야, 한번 죽으면 그걸로 끝이라고!!
허씨 - 어려운 부탁인 거 나도 알아. 하지만...
...... 어, 언제 사람 목숨까지 걸린 일이 됐냐?
뭘 부탁하는 거야 대체?
김씨 - 됐어. 못들은 걸로 하고... 그만하자.
허씨 - 야! 김씨!!
김씨 - ....... 더 할말 있어?
허씨
- ..... 이게 내 인생에 마지막 기회야.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순 없잖아.
제발... 한번만 도와줘라.
만약 실패해도.... 한나는 내가 책임질게.
김씨 - ..... 뭐?
허씨의 그 말에
김씨는 잠시 멍한 얼굴로
한나와 허씨를 번갈아 보더니
이내 헛웃음을 치며 허씨에게 바짝 다가섰다.
김씨 - 허, 허, 허, 허.... 그랬구나... 그런 거였어.
허씨 - ......
김씨 - 그러고도 네가 사람 새끼냐!! 앙!!
=퍼억! 쿠당...=
뭔가 위험한 분위기를 느낀 연출이
김씨를 말리려 자리에서 일어섰을 때
허씨는 이미 김씨의 주먹에 나동그라진 후였다.
김씨
- 어째 예전부터 둘 사이에 눈빛이 예사롭지 않다 했더니
이젠 친구 죽이고 둘이 잘 먹고 잘 사시겠다?
그러고도 입에서 친구소리가 나오디?
허씨 - 김씨...
김씨 - 닥쳐, 넌 입이 열개라도 할 말 없어.
허씨 - 넌... 내가 그런 놈으로 밖에 안 보이냐?
김씨 - 지금 상황이 그렇게 말하고 있잖아!!
김씨가 분노와 설움이 섞인 절규를 토하는 사이
자리에서 일어난 허씨는
툭툭하고 망가진 옷매무새를 정리하더니
=빠아악!=
이내 김씨의 얼굴에 강렬한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허씨
- ..... 난..... 너와 만나고...
피보다 진한 우정이 있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 믿음이 고작 이 정도였다니.... 허무할 뿐이다.
내가 무리한 부탁을 했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그게 나 혼자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건 아니었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다.
허씨는 바닥에 쓰러진 김씨를 향해 그렇게 말하고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등으로 훔치며 돌아섰다.
김씨 - 허씨......
허씨 - 됐다. 그만하자. 이제 너랑 나는 남이다.
김씨 - ...... 친구야!
허씨 - ......
김씨 - ..... 내가.... 너를 위해 두 번 죽어줄 순 없다... 알지?
허씨 - 김씨....!!
허씨는 쓰러진 김씨를 와락 끌어안으며
피보다 진한 우정의 존재를 확인했다.
내내 불안함에 안절부절 못하던 연출도
이 순간만큼은 고개를 끄덕이며
두 사람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다.
연출
- 자자, 여기서 알 수 있듯이
같은 연습이라도 상대에 따라
다양한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그럼 이어서 =가지 마=를 보도록 하자.
허씨가 가고, 김씨가 잡는 쪽으로...
자.... 레디..... 응?
허씨 - 끄에에에에에.....
김씨
- 그런데 이 자식이 아주 감정을 실어서 치고 있어.
완전 턱 돌아가는 줄 알았네.
자식아, 장난 하냐? 응?
....... 김씨, 마주 안은 자세 그대로 옷깃조르기 작열!!
잠시 후.
연출
- ..... 자, 자, 감정에 몰입하는 것도 좋지만
안전이 최우선이니 너무 격해지지 않도록.....
침착하게 =가지 마=를 한 번 해보자.
허씨 - 오케이. 쉭쉭, 뒤~졌어.
김씨 - 오냐. 이번엔 확실히 보내주마.
연출
- ....... 자자, 흥분하지 말고, 페어플레이 하자고.
레디..... 아으아아악쑌!
액션신호와 동시에
크로스카운터라도 날릴 것 같던 두 사람이었지만
막상 상황이 시작되자
분위기는 예상외로 침착했다.
김씨 - 가지 마라.
허씨 - ...... 잡지 마. 난 갈 거야.
김씨 - 가면 죽는다. 가지 마라.
..... 대체 왜 이 두 사람은
뭘 해도 꼭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걸까?
허씨
- 안 가면.... 안 가면 어떻게 하는데?
득칠이, 영구, 동하, 봉철이, 정환이...
얘들 목숨 다 어떻게 하고? 그냥 없던 일로 해?
다들 목숨을 바쳐가며 이루려던 일을
우리 둘만 남았으니까 그만 둬?
난 그렇게 못해. 가서 뒤지는 한이 있어도!!
벌써 그렇게 많이 죽은 후였던 건가...
아마 김씨 허씨가 대본을 쓰면
엑스트라를 제외하고도 100명은 필요할 것 같다.
김씨
- 지금 그만두자는 게 아니잖아!!
너까지 여기서 가버리면
우리에게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는
저 수많은 사람들은 어떻게 할 거야?
일단은 한 발 물러서서 다음 기회를 노리자고!
허씨
- ...... 아니, 다음 기회 같은 건 없어.
언제는 기회 같은 게 있었어?
그냥 갖다 박는 거잖아!
깨져라! 깨져라! 그러면서 그냥 갖다 박는 거잖아?
겁쟁이가 되서 절절매다 아무것도 못하고 죽고 싶진 않아.
개죽음이라도... 지금 죽는 게 명예롭게 죽는 거야.
김씨 - 이런 바보자식!!
=퍼억!!=
결국.... 또 일은 터졌다.
김씨
- 왜 죽을 생각밖에 안 해!
친구 따라 죽는 게 우정이야?
그거야 말로 속 편히 죽고 싶은 겁쟁이들의 방법이야!
허씨
- 왜...왜 때려? 형이 나한테..
해준 게 뭐가 있다고 때려!!
김씨 - 이 자식이 그래도...!!
아... 그런가, 둘은 형제사이였던 건가?
허씨
- 어차피 피도 섞이지 않은 남남인데...
이제 내 인생에 상관 마....
나는 내가 옳다고 생각한 데로 할 거야!!
김씨 - 너...너 어떻게 그 사실을...?
허씨
- 내가 언제까지 모를 줄 알았어?
형 생일이 10월이고 내 생일이 2월인데!
4개월만에 어떻게 애가 태어나?
내가 무슨 돼지야? 4개월만에 태어나게?
김씨 - 그건.... 아버지가 내 출생신고를 늦게 해서...
허씨 - 그만!! 더 이상 변명은 듣고 싶지 않아!!
어느새 그런 출생의 비밀까지...
점점 본연의 테마에서 벗어나
한편의 드라마를 이뤄가는 두 사람의 연기.
뒤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연출은
이걸 멈춰야 할지, 계속 봐야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는 표정이었다.
김씨 - 내가.... 내가 어떻게 해야 안 가겠니?
허씨 - ..... 필요 없다니까.
김씨 - 내가 꿇을까?
허씨 - .....뭐?
김씨 - 내가 무릎이라도 꿇을까? 그럼 안 갈래?
그 순간, 허씨의 눈빛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그건 아마도....
안 가는 쪽을 택하고 김씨가 무릎 꿇은 모습을 볼 것인가,
아니면 끝까지 버텨서 자신의 우세승으로 연습을 마무리 할 것인가...하는
지극히 치졸한 고민임에 틀림없었다.
허씨 - ..... 일단 보고 결정하자.
.... 약았다. 허씨.
김씨 - 그래, 너를 위해서라면 그깟 자존심 따위.... 쿨럭!! 커헉?!
그런 허씨를 앞에 두고 정말 무릎을 꿇으려던 김씨.
하지만 이내 그는 거친 기침소리를 내며
바닥에 쓰러졌다.
출생의 비밀에 이어 불치병 등장인가...
허씨 - 혀, 형!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숨넘어가는 기침 소리를 내며 바닥에 고꾸라진 김씨를 향해
다급히 뛰어가는 허씨.
바로 그 다음 순간, 김씨는 튕기듯 몸을 날려
허씨의 무릎 뒤를 잡아 쓰러뜨렸다.
김씨 - 페이크닷! 븅신아!!
허씨 - 크앗?!
김씨 - 거 참 가지 말라는 데 말 더럽게 안 듣네!!
허씨를 쓰러뜨린 김씨는
능숙한 몸놀림으로 허씨를 제압하며
마운트포지션을 차지하려했다.
허씨 - 이런 치사한 새끼! 네가 그러고도 형이냐!
김씨 -크헉!!
그런 김씨를 발로 차내는 허씨.
그 다음부턴 완전 개싸움이었다.
김씨 - 오냐! 거기까지 갈 것 없이 그냥 지금 뒤져라!!
허씨
- 말 잘했다!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널 죽이고서라도 가주마!!
=우당탕탕탕...쿠당탕=
........
연출
- 자.... 잘들 봤지? 같은 연습이지만...
하는... 사람에 따라... 이런 다양한 형태로....
허씨 - 죽어라!! 죽어라 이놈!!
김씨 - 우워어어어어!!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하려 노력하는 연출 뒤로
엎치락뒤치락 싸움을 계속하는 두 사람.
신입생들은 그런 두 사람의 액션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과연 이들 중에......
김씨와 허씨의 전설을 이을만한 재목들이 있을까?
연출 - 그만햇!!!!
김씨 - 넌 또 뭐얏!!
연출 - 크헉?!
후배들 - 오오! 하이킥!!
.....차라리 없는 쪽이 나을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