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훈민가
정철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두 분 곧 아니면 이 몸이 살았을까.
하늘 같은 가없는 은혜를 어디 대어 갚사오리.
임금과 백성 사이 하늘과 땅이로되
나의 설운 일을 다 알려 하시거든
우린들 살찐 미나리를 혼자 어찌 먹으리.
형아 아우야 네 살을 만져 보아
뉘에게서 태어났기에 모양조차 같은가
한 젖 먹고 길러나 있어 딴 마음을 먹지 마라.
어버이 살아계실 때 섬기기를 다하여라
지나간 후면 애닯다 어찌하리
평생에 고쳐 못할 일이 이뿐인가 하노라.
한 몸 둘에 나눠 부부를 만드실 새
있는 제 함께 늙고 죽으면 한데 간다.
어디서 망녕의 것이 눈 흘기려 하느뇨,
계집아이 가는 길을 사나이 돌아가듯
사나이 가는 길을 계집이 비껴가듯
제 남편 제 계집 아니거든 이름을 묻지마라.
네 아들 효경 읽더니 얼마나 배웠는가
내 아들 소학은 모레면 마치리다.
어느 제 이 두 글 배워 어진 이 된 걸 보려뇨.
마을 사람들아 옳은 일 하자꾸나
사람이 되어 나서 옳지 못하면
마소를 갓고깔 씌워 밥 먹이나 다르랴.
팔목 쥐시거든 두 손으로 받치리라
나갈 데 계시거든 막대 들고 좇으리라
향음주(鄕飮酒) 다 파한 후에 모셔가려 하노라.
남으로 생긴 중에 벗같이 유신(有信)하랴
나의 그릇된 일을 다 말하려 하노라
이몸이 벗님 곧 아니면 사람됨이 쉬울까.
어와 저 조카야 밥 없이 어찌할꼬
어야 저 아재야 옷 없이 어찌할꼬
험한 일 다 일러라 돌보고자 하노라.
네 집 상사(喪事)들은 어느만큼 차리는가
네 딸 서방은 언제나 맞이하는가.
내게도 없다 하거니와 돌보고자 하노라.
오늘도 다 새었다. 호미 메고 가자꾸나
내 논 다 매거든 네 논 좀 매어 주마.
오는 길에 뽕 따다가 누에 먹여 보자꾸자.
비록 못 입어도 남의 옷을 빼앗지 마라
비록 못 먹어도 남의 밥을 빌지지 마라
한 때도 때 묻어지면 다시 씻기 어려우리라.
쌍육(雙六) 장기(將碁) 하지 마라. 소송 재판 하지 마라
집 망쳐 무엇하며 남과 어찌 원수 되랴
나라가 법을 세웠으니 죄 될 줄을 모르는가.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이라 무거울까
늙기도 설워라커든 짐을조차 지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