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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 보내는 독설

심기환 |2006.06.14 21:13
조회 41 |추천 0

나는 축구 팬이다. 박지성 선수가 활약하고 있는 프리미어리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팬이고, 프리메라리가 FC 바르샤의 팬이다. 또한 K-리그 수원 삼성의 팬이다. 응원을 위해 붉은 악마가 되어 시청 앞 광장에 가지는 않지만, 축구에 대한 열정만큼은 축구를 사랑하는 그 누구보다도 뜨겁다. 하지만 열정을 다해 ‘국가대표팀’을 응원하지는 않는다. 나는 강력한 체력과 조직력을 바탕으로 압박축구를 구사하는 ‘대한민국 팀’의 열렬한 팬일 뿐이기 때문이다. 2006년 독일월드컵을 대하는 스스로의 마음가짐은 "enjoy the World Cup" 이다. 그렇다. 난 축구를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이번 월드컵을 즐겨야 한다. 비록 월드컵 패키지와 불방 및 전용으로 인해 월드컵을 즐겁게 바라보기는 힘든 안타까운 현실에서 벗어날 수는 없지만 말이다.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 나 자신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쓴소리를 하기 위해서이다.

 

얼마 전 영국의 BBC 방송에서 '한국에는 대표팀 축구밖에 없다'라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국가대표팀 경기에는 그 누구도 대적할 수 없을 정도로 열광하는 한편, K-리그를 포함한 프로리그 및 아마추어 축구 경기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우리를 꼬집은 말이다. 사실 이 기사를 인터넷으로 접하고서 당연하고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국가대표 축구의 기반은 자국의 프로리그다. 세계 3대 빅리그는 영국의 'Premier League', 스페인의 'Primera Liga', 이탈리아의 'Serie A' 이다. 예전보다는 조금 주춤했지만 4대리그까지 꼽으라면 독일의 ‘Bundes Liga’를 포함할 수 있다. 이러한 빅리그들은 매 경기마다 빈자리를 찾기 힘들다. 상위팀이든 하위팀이든 모두 자신들의 지역팀을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을 찾는다. 프로리그의 활성화는 프로팀의 수익규모로 결정된다. 프로팀은 여러 가지 마케팅 사업을 통해 수익을 올리지만, 주 수입원은 역시 관중수익이다. 관중이 많다는 얘기는 그만큼 관심이 크다는 얘기고, 관중이 많으면 그밖에 마케팅 사업도 수월하게 이루어진다.  이러한 경우는 비단 빅리그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빅리그에는 조금 미치지 못하지만 네덜란드, 벨기에, 터키, 포르투갈, 오스트리아, 체코, 러시아 등 유럽국가의 자국리그는 모두 활성화가 되어있다. 이는 유럽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남미의 브라질, 아르헨티나를 비롯하여 파라과이, 칠레 북중미의 멕시코 등 유럽과 남미의 자국 프로리그는 그 규모를 떠나서 엄청난 관심과 인기를 누리고 있다. 심지어는 아프리카와 일본, 중국도 그러하다. 그러나 우리 K-리그의 현실은 어떠한가. 관중석을 절반 이상이라도 채운 경기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든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한 빅리그처럼 프로리그가 활성화되어야 그 국가의 축구가 발전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빅리그에 눈을 돌려야 하는 이유는 프로축구의 활성화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K-리그의 활성화를 통해 프로축구가 발전을 해야 대한민국 축구가 발전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요지는 ‘축구를 즐겨야한다’는 것이다.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 나라에서 월드컵 연속 출전에 4강의 성적을 거두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월드컵을 개최하고 4강의 성적을 거둔 나라에서 프로축구가 인기가 없다. K-리그는 고사하고, 아시아의 클럽 최강자를 가리는 AFC 챔피언스리그는 그 존재를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의문이다. 프로축구는 물론이고 국가대표팀의 A매치를 제외하고는 프로구단이 사용하는 일부 주요 경기장을 제외하고는 잔디구장조차도 없다.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왜 국가대표팀 경기, 그 중에서도 월드컵에 열광할까. 이는 비단 축구에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K-리그에서 누가 잘하는지 관심도 없으면서 국가대표팀에 선발된 선수들이 최고의 선수이기를 기대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가대표팀에서 멋진 활약을 보인 선수가 소속팀으로 복귀하면 그 선수의 존재는 어디로 가는 것일까. 국가대항전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겨야 한다. 경기내용보다는 결과가 중요하다. 열세의 전력에서 최선을 다해 선전하다가 아깝게 패해도 그것은 ‘패배’에 불과하다. 마치 ‘전쟁’을 하는 것 같다.

 

공중파 방송을 포함한 매체에도 쓴소리를 하고 싶다. 가장 높은 인지도를 자랑하는 공중파 방송매체에서 K-리그 중계는 찾아보기 힘들다. 정규리그야 연장전이 없으니 문제가 없다고 해도 토너먼트 경기에서 연장전으로 접어들면 정규방송관계로 중단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월드컵 경기에는 정규방송이라는 것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경기 자체는 물론이고 몇 부작 특집으로 편성을 도배하고 있다. 이러한 방송매체에 어찌 잘한다는 소리를 할 수 있겠는가.

   

2006년 독일 월드컵이 개막되면서 대한민국의 16강 진출 여부를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그 질문에 ‘못갈 것 같다’라는 대답을 했을 경우에는 여지없이 “너는 한국 사람도 아니다”라는 욕을 들었다. 현재 전력상 16강이 그리 쉽지만은 않을 거라고 나름대로 냉정하게 생각한 끝에 내뱉은 대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16강이 쉽지 않은 전력이지만, 경기에서 최선을 다해 대한민국 팀이 멋진 경기력을 보여주면 되는 것 아닌가. 꼭 16강을 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어떻게 해서든 16강에 진출하더라도 경기 내용이 좋지 않으면 전 세계의 축구팬들로부터 인정을 받지도 못할 것이 분명한데 말이다. 16강에 갈 수 없는 전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 실제 경기에서 그것이 잘못된 판단이라는 것을 보여주면 되는 일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아니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외치는 수백만의 응원단이 원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축구강국’이 되는 것이 분명하다. ‘2002년 월드컵 4강 대한민국’을 온전히 인정하는 축구팬은 ‘대한민국 국민’ 뿐이다. 이는 엄연한 현실이고, 우리는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공은 둥글다. 축구는 90분 경기가 끝날 때까지는 그 결과를 알 수 없는 것이다. 그저 최고의 선수들이 최선을 다하는 90분을 즐길 수는 없는 것일까. 앞서 얘기한 BBC 방송의 보도내용은 세계의 축구팬들이 대한민국 축구를 바라보는 시각을 잘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국가대표 간 A매치 경기는 월드컵 예선 등이 없는 해에는 많아봐야 10여회 정도이다. 그 10여회의 경기에 열광하는 나라를 ‘축구가 인기 있는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K-리그의 활성화  여부를 떠나서, 대한민국에서는 축구 자체의 인기는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축구를 즐기지 못하는데 인기가 있을 리 만무하다. 

 

월드컵이다. 4년 동안 기다려온 전 세계 축구팬들의 축제. 그러나 대한민국 대표팀이 16강에 올라가지 못한다면 우리에게도 축제가 될 수 있을까. 축구에 대한 관심 자체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식어버리다 못해 얼어버릴 것이 분명하다. 나 자신을 비롯한 대한민국 축구팬 모두에게 부탁하고 싶다. 대한민국 대표팀의 성적에 관계없이 이 축제를 즐기자고. 대한민국을 응원하기 보다는 ‘대한민국팀’이 멋진 플레이를 해주길 기대하며 최고의 선수들이 펼치는 최고의 경기들을 매 순간마다 즐기자고.

 

축제가 끝나고 식어버린 열기는 축구를 사랑하는 우리의 의지에 방송매체의 자성과 노력이 더해지면 다시 끌어올릴 수 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축구 자체를 즐기는 것이다. 공이 둥글다는 것만으로도 즐겁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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