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11대 선조인 오계 휘 정립(挺立)께서 쓴 편지
-오계公께서 성주목사를 그만두고 낙향하여 현재의 합천군 봉산면 김봉리에 초당을 지어 기거할 때인 1643년 회갑이 되던 해인 11월 11일에 쓴 편지로, 수신자는 관찰사 이상의 사람으로 추측됨.
(편지 앞부분은 훼손되어 알 수 없음)
驛亭風雪 醉興未闌 熊軒促發 攀莫可及 瞻望悵缺 迨不自任
역정풍설 취흥미란 웅헌촉발 반막가급 첨망창결 태불자임
역정(驛亭)에 내리는 눈바람에 술에 취해 이는 흥취가 아직 무르익기도 전에 태수(太守, 熊軒으로 곰의 엎드린 모양을 한 수레라는 뜻) 가 출발을 재촉하여 수레에 오르기도 미칠 겨를이 없어 우러러 보며 슬퍼하고 아쉬운 심정은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伏問還衙以來 侍外起居若何 卽擬趍候 仍參覩醮送盛禮 一家荷從未具 不克遂願 伏切悚恨 餘伏祈寒程行候萬安 愁志伏惟下鑑 謹再拜
上問狀 癸未十一月十一日 民曹挺立頓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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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문장 계미십일월십일일 민조정입돈수
삼가 여쭙건대 관아에 돌아오신 후로 평소의 기거하심이 어떠하신지요? 곧바로 나아가서 문후 드려 초례(醮禮, 혼례식)에 참관하고 성대한 예물을 보내고자 하였으나 한 집안에서 물품과 사람을 갖추지 못하여 제 바람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엎드려 송구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간절합니다. 삼가 바라건대 매우 추운 때에 길을 오가시는 체후가 만안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저의 걱정하는 마음을 굽어보아 살펴주시기 바랍니다. 삼가 재배를 올림.
문안하는 글을 올림. 인조(仁祖) 21년(계미, 1643) 11월 11일에 백성 조정립(曹挺立)이 머리를 숙임.
追悚金鳳書舍 寄資事旣聞命矣 工匠已賦役 供饋方急 如鹽醬麯生 最乏絶 若蒙卽今帖下 爲惠尤大矣 樂年事亦卽取伕伏望
추송금봉서사 기자사기문명의 공장이부역 공궤방급 여염장국생 최핍절 약몽즉금첩하 위혜우대의 낙년사역즉취부복망
금봉서사를 생각하건대 자금을 맡기는 일에 대하여 분부가 내려진 것을 이미 들어 알고 있습니다. 공인과 장인들이 이미 부역을 하고 있는데 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여 주는 일이 한창 급합니다. 소금과 간장, 술(麯生)이 가장 모자라니 만약 지금 첩자(帖子, 체지)를 내려주신다면 은혜가 더욱 커질 것입니다. 해를 즐기는 일은 또한 인부를 취해서 하기를 삼가 바랍니다.
*오계公께서 1642년 가을에 성주목사를 그만두고 낙향하여 회갑이 되는 1644년 12월에 준공한 現 봉산면 압곡리에 있는 봉서정(金鳳書舍, 경남도 유형문화재)은 당시 개인적인 건축물이 아닌 교육 등 공익적인 건축물로 건립됐고, 또한 오계公의 학문수준과 서체를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임. 公께서는 상기 편지를 쓴지 3년 후인 1646년 7월 정주목사에 제수되어 약 4년간 재직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