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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면증/상실의천재] 5. 시동 -2-

박성인 |2006.06.30 21:48
조회 183 |추천 0
 


“조심해서 옮겨요! 어이, 거기! 그림에 때 타지 않게 조심조심!”

거친 사내 인부들 사이로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한예름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리 크고 무겁지도 않은 이 그림 한 점을 위해 몇 명의 사람이 동원 된 것일까?

민혁은 정말 조심스럽게 그림을 나르는 인부들을 보며 휘휘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까지나 할 필요는 없는 데 빈 수레가 요란하다고 그 소리가 너무나 요란하다.

“아빠 아빠! 저기 저 아줌마가 그 화랑 딜러라는 한예름 아줌마야?”

“응? 아 그렇지. 그런데 말이야. 이렇게 떨어져 있을 때는 몰라도, 옆에 있을 때는 절대 한예름 아줌마라고 부르면 안 돼. 만일 그렇게 부르면”

“부르면?”

유리는 진지한 표정으로 뚝 입을 다문 민혁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 했다.

“부르면 어떻게 되는 데? 응? 응?”

“아, 아하하하 그게 말이지 그러니까 유리야”

민혁은 뜨끔 뒷머리를 찔러오는 모종의 독전파에 웃으며 말을 늘렸다. 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다.

한 예름.

그녀가 지금 뒤에 서 있는 것이다.

“왜요? 하던 말마저 하시죠. 민혁씨.”

“아 아하하”

따갑게 쏘아 내는 한예름의 말에 민혁이 어색하게 웃으며 돌아섰다.

어디서부터 들었을까?

잔득 올라선 눈꼬리에 말없이 벅벅 뒷머리를 긁적였다. 사과를 하기도 무시를 하기도 모호한 상황, 한예름은 물끄러미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유리를 보며 활짝 웃으며 말했다.

“언니는 아줌마가 아니란다. 이제 갓 서른을 넘은 조금 나이가 많은 언니일 뿐이지. 호호호호 그러니까. 아줌마라고 부르면 안 되는 거예요. 언니니까.”

유리는 화사하게 웃으며 말하는 한예름의 모습에 놀라 민혁의 옆으로 쪼로로 달려가 달라붙었다. 짙게 풍겨 나오는 화장품 냄새에 코가 얼얼하다. 분명 좋은 향이었을 텐데 너무 과해 그 향이 바래버렸다.

“아니야 아줌마 맞아.”

“응?”

“언니 아니야. 저 한예름씨라는 사람 아줌마 맞아. 아줌마 맞단 말이야!”

민혁의 옆으로 도망친 채 말하는 유리의 말에 민혁과 한예름의 눈이 커졌다.

“그, 그게 무슨 말이니. 호호호 언니는 아줌마가”

“아냐 맞아! 아줌마야. 아줌마는 아주머니를 달갑게 정겹게 부르는 말로 어른인, 나이가 많은 여자를 지칭하는 말이라고 했어. 한예름씨 언니 아니야 아줌마야! 그러니까 우리 아빠 괴롭히지 마! 아줌마야!”

 잔득 화가 나 소리치는 유리의 모습에 활짝 웃던 한예름의 얼굴이 멍해졌다.

언제고 이런 말을 들어 본 적이 또 있던가?

예름은 민혁의 옆에 꼭 붙어 당당히 소리치는 유리를 모습에 한참을 바라보다가 웃으며 몸을 낮췄다. 언젠가 자신도 지금과 같은 말을 했던 기억이 난다.

오래 전 아직 손발이 작아 아빠 품에 안겨서만 세상을 보던 바로 그때.

예름은 경계어린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유리를 향해 말을 건넸다.

“미안하구나. 언니, 아니 아줌마가 아빠를 괴롭히는 줄 알았구나. 미안미안. 그럴 마음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보였다니 사과할게.”

“틀렸어. 나한테 사과 하는 게 아니야. 아빠한테 해야 해. 내가 아니라 우리 아빠한테 해야 한다구”

“아, 그렇구나. 미안해요. 민혁씨. 정확히 무엇을 사과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유리양이 괴롭히는 것으로 볼 정도로 제가 몰아 붙였나 봐요. 미안해요.”

콕 하고 잘 못 된 점을 집어 말하는 유리의 모습에 예름이 숙이고 있던 몸을 들어 민혁을 향해 사과 했다.

천재의 딸이라서 그럴까?

예름은 아이의 천진함과 어른의 당당함을 두루 갖춘 유리의 모습이 놀라운 만큼 신선하고 귀엽게 다가왔다.

“하하 괜찮아요. 하하 하하..”

공손히 사과하는 예름을 모습에 민혁은 어색하게 웃었다. 자칫 버릇이 없어 보일 줄은 모르지만 어떠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모습인 것을

유리를 안아드는 민혁의 얼굴 가득 활짝 웃음꽃이 피었다.

“그럼 오늘 옮겨진 그림은 다음 주 시작 되는 전시회에 메인에 올라가게 되는 겁니까?”

“아, 네. 상실의 천재인 박민혁의 복귀 작이니 당연한 일이죠. 민혁씨는 한국뿐만이 아니라 세계에서 주목 받는 화백. 다른 자리는 당치도 않지요.”

“음 그렇군요. 그래도 이렇게 불쑥 예정에도 없던 제가 끼어들어도 되는 걸까요? 분명 저 이전에 메인에 서 기로 한 그림도 있었을 텐데”

“아, 거기에 대해서는 미안해하지도 생각지도 않으셔도 되요. 본래 메인에 설 작품은 윤영신씨의 황혼의 노을로 가는 길 이었습니다만, 민혁씨가 출품한다는 말에 스스로 자리를 내어 주셨어요. 그 분이 자리를 내어주시지 않았더라면 저희도 다음 전시회까지 출품을 미루려고 했었습니다. 호호, 사실 윤영신씨가 민혁씨에 열렬한 팬이거든요. 본인도 많이 기다려 왔다고 하더라고요. 민혁씨의 복귀를 말이에요.”

“아 그렇군요.”

예름은 머리를 긁적이는 민혁의 어깨를 툭 치고는 안전하게 그림을 옮긴 인부들을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화랑에 도착 할 때까지 긴장 풀면 안 돼요. 여러분들이 옮기는 그림은 귀중한 그림, 아니 보물이니까요.”

“예! 하하! 여부가 있겠습니까.”

시원한 목소리로 말하는 인부들의 얼굴에 웃음꽃이 피었다. 가볍고 쉽게 옮길 수 있는 그림 한 장에, 평소 두 배가 넘는 급료를 받게 되었으니 기분이 좋을 수밖에

“아아 이거 일이 너무 잘 돌아가는 데?”

민혁은 빠르게 돌아가는 한예름과 인부들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해가 뉘엿뉘엿 저가는 저녁,

한예름과의 한판 승부가 고됐던 지 품에 안아든 유리는 어느새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

“에휴 오늘 저녁은 굶어야겠군.”

잠이든 유리를 침실로 옮기는 민혁의 입에서 한숨이 세어 나왔다.

혼자 먹는 것이 어색해진 식탁,

오랜 만에 맞는 가족은 옛 습관을 바꿔 놓기에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위 글은 글쟁이의 홈페이지 forpsi.cafe24.com 에서 먼저 연재 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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