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독일월드컵특집]차범근 - 자랑스런 후배들에게

김종영 |2006.06.27 18:29
조회 569 |추천 16
play

- "사기예요" 소리치는 두리에게 '조심하라' 눈짓 -

갑자기 허전해졌다.
두리가 새로 옮긴 팀(마인츠)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어제 떠나면서 나 혼자 남게 된 이유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우리 축구대표팀이 짐을 싸 귀국해 버린 이유가 더 큰 것 같다.
독일에 들어온 뒤 대표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뛰지는 못했다. 그러나 중계방송석에서 그들과 함께 호흡을 해 왔다. 이운재,박지성,이천수,최진철 등 선수들의 두근거리는 심장 소리를 느끼며 때로는 안스럽고 때로는 너무나 자랑스럽던 자식 같은 우리 선수들이 훌쩍 떠나버렸다.
오락기처럼 빈틈없이 움직인다는 아르헨티나가 기세를 올리고 있고, 나도 응원을 마다하지 않았던 홈팀 독일이 연승을 이어가면서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브라질 역시 그간 막혔던 호나우두의 골이 무더기로 터지면서 '아무도 우승컵을 건드리지 말라'는 경고를 한다. 거기다 잉글랜드와 네덜란드, 그리고 이탈리아까지 예외없이 16강에 가세하면서 독일 월드컵은 열기와 흥분을 더해가고 있다. 하지만 어제오늘 도무지 흥이 나지 않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6강, 당연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 건 아니었지만 해낼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다. 부심이 깃발을 한참 들고 있어서 우리 선수들은 경기를 멈췄다. 우리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부심의 깃발은 순식간에 내려가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무심하게 골 사인을 보내는 게 아닌가. 중계석 옆자리에 앉아있던 두리가 "저건 사기예요!" 하고 소리를 높였다. 너무 깜짝 놀라 두 눈을 부릅뜬 채 두리에게 조심하라는 사인을 보냈지만 그순간 그렇게 외치고 싶은 사람이 왜 두리 혼자뿐이겠는가. 물론 오프사이드 논란이 일어난 두 번째 골 때문에 16강행이 좌절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부심의 무책임한 행동은, '잘 싸웠다'며 우리 선수들을 격려하고 상대를 축하하며 깨끗하게 패배를 인정하고 싶었던 우리의 마지막 자존심을 흔들어 버렸다. 그게 아쉬운 거다.
이제는 받아들이자. 월드컵은 더 이상 단순한 축구경기가 아니다. 세계를 아우르는 문화다. 이미 하나로 묶여버린 세계는 희로애락은 물론 호흡까지 같이 한다. 벌써 우리의 억울함을 탓하는 듯 현지에서는 "2002년 한국에 진 이탈리아나 스페인과 비교한다면 한국의 억울함은 아무것도 아니다"며 정중히 질타한다. 당시 화면까지 곁들인다. 우리의 억울함을 덮고 상대를 인정하자. 그러면 그들도 우리를 인정할 것이다.
스위스는 많은 사람의 예상처럼 탄탄한 팀이었다. 프랑스 역시 그 이름만으로도 무시하기에 벅찬 팀이다. 우리 팀의 경기 내용이 특별히 나쁘지는 않았다. 특히 마지막 스위스와의 경기는 월드컵 세 경기 중 가장 훌륭했다. 그럼에도 우리의 16강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가 다른 조에 비해 특별히 까다로운 조에 속한 것은 아니다. 모든 조가 그 정도 수준은 됐다. 그렇다면 다음 월드컵에서는 지금보다 나은 모습이라야 16강을 넘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이번 독일 월드컵이 우리에게 가르쳐준 냉정한 현실이다.
축구는 선수가 한다. 지금의 대표팀이 4년 후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는 선수들의 몫이다. 이제는 국가대표나 축구선수가 더 이상 춥고 배고픈 희생의 자리가 아니다. 어느 나라보다 훌륭한 보상이 충분히 뒤따르고 있다. 감사해야 할 만한 수준이다. 우리 선수들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반드시 보답해야 한다. 그리고 대표팀의 경기를 보면서 참고 인내해 준 수많은 팬, 그들의 사랑 역시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약속하자.
------------------------------[중앙일보] 차붐@월드컵

 

 ■ 이 름 :차범근(車範根) ■ 생 일 :1953년 5월 22일 ■ 혈액형:B형

 ■ 출 생 :경기도 화성 ■ 키/몸무게 : 신장 179cm / 체중 78kg   

 ■ 취 미 :컴퓨터, 성경읽기
 ■ 가족사항 :부인 정지원 씨(1993년 12월 25일 결혼), 

                   아들 둘(차두리,차세찌), 딸 하나(차하나)
 ■ 학 교 :화산초 - 경신중 - 경신고 - 고려대(체육학과)
 ■ 소속팀 :청소년 대표→국가대표(최연소)→SV다름슈타트

                →프랑크프루트→레버쿠젠

 ■ 포지션 :포워드(FW) ■ 특 기 :돌파,드리블,위치선정,헤딩,슈팅
 ■ 별 명 :차붐, 갈색폭격기
 ■ A매치 기록 : 127경기 출전 (센츄리클럽) / 55 득점
 
[경력]
 ■1972년 19세, 최연소 국가대표 발탁.
 ■1977년 박스컵 출전 기적의 승부.

   (VS 말레이시아 1:4로 뒤진 후반 종료 7분전, 3골을 쏟아넣음)

 ■1978년
  단신으로 독일 분데스리가 테스트받음. SV다름슈타트 입단.
 ■1979년
   6월 독일 프랑크푸르트 입단 (데뷔첫해 31경기 12골득점)

   8월 분데스리가 데뷔전 (VS 도르트문트 75분 출장 1어시스트)

         최고권위 축구전문지 kiker 선정 주간 베스트11

         세번째 경기 (VS 슈투트가르트 헤딩 결승골)

         - kiker 선정 '이주일의 골'

         네번째 경기 (VS 바이에른뮌헨 선제골)

         다섯번째 경기 (VS 보루시아MG 중앙돌파에 이은 선제골)

         세경기 연속골 - kiker '차 붐'이라고 부르기 시작.

    9월 첫 헤트트릭 기록 (VS 함부르크 강슛, 헤딩슛, 30m중거리슛)

   12월 UEFA컵 출전 선제골 (VS 레알 마드리드 1:1 무승부)

 ■1980년
    3월 UEFA컵 결승전 출전 (VS 보루시아MG)

    - 당시 20세의 나이로'게르만의 혼'이라 불리던 마테우스가

      (90년 월드컵MVP) 갈색폭격기 '차붐' 전담마크 특명.

   - 보루시아MG와 2차전.

     마테우스가 전담마크 하였으나 속수무책. '차붐' 대활약.

      우측면 마테우스 돌파후 어시스트. '차붐' 이날의 선수.

      (1:0 프랑크푸르트 승) 창단이후 첫 UEFA컵 우승('79~'80)

    - 경기후 마테우스 인터뷰

      "나는 아직 어리다. 하지만 '차붐'은 현재 세계최고 공격수다."

   '80~'81 시즌 (31경기 11득점)
    서독 FA컵 우승. '세계 축구 베스트11' 선정.

 ■1981년  '81~'82 시즌 팀내 최다 득점 (15득점)

    - '차붐'에 대한 각팀의 무차별 고의 파울 난무.

       겔스도프의 고의적인 파울로 척추부상 (선수생명 위협).

    - 프랑크푸르트팬들 레버쿠젠원정 겔스도프 살해위협소동.
 ■1983년
   분데스리가데뷔 후 122경기 출전 46골 기록한 후,

   레버쿠젠 이적. 프랑크푸르트 울음바다.

 ■1985년
   '85~'86 시즌 본인 최다득점 기록 (17 득점)

   독일 분데스리가 MVP 선정.(득점 랭킹 4위)
 ■1986년  대한민국 국가 대표 복귀.

   꿈에 그리던 멕시코 월드컵 출전 (월드컵 첫출전이자 마지막)
 ■1988년
   UEFA컵 결승전(레버쿠젠 VS 에스파뇰) 0 :3 으로 뒤지다,

   후반전 만회골로 2 :3 으로 추격한 상황에서 차붐의 극적인

   기적의 동점골로 레버쿠젠 UEFA컵 우승.

 ■1989년
   분데스리가 은퇴. (308경기 98득점 41어시스트 20페널티 유도)

   당시 분데스리가 사상 외국인 최다 출전, 최다 득점 기록.

   - 이후, 최다 득점 기록은 스위스 출신 사퓌자 선수에 의해 지난

    99년에 경신(106골/218경기). 최다출전기록은 깨지지 않음.
 ■1989년 10월 영구귀국.

 ■1998년
   '20세기 최고의 아시아 선수' 선정 (독일 축구 역사가협회)
 ■1999년
   '잊을수 없는 100대스타' 선정 (세계최고권위의'월드사커')
 

[기록]

 ■ 대한민국 대표 A매치 최다골 1위 ( 2위는 황선홍 )

    - 127 경기 / 55 골
 ■ A매치 한 경기 최단시간 헤트트릭 기록 ( 7분간 3골 )

추천수16
반대수2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