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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자7-오일러

천난희 |2006.06.29 02:37
조회 46 |추천 0

   수학과 물리학의 천재적 거두인 오일러는 대수와 확률론의 기초를 다지는 데 공헌했을 뿐 아니라, 미적분학과 정수론, 기하학등 방대한 분야에 재능을 펼쳤다. 오일러는 특히 기하분야에서 여러가지 논제를 제기했으며, 그리스의 '완성체'라는 개념에 숨은 수학에 대해 깊이 탐구하였다.

 

   오일러의 연구는 수학, 천문학, 물리학 뿐만 아니라 의학, 식물학, 화학등 많은 분야에 광범위하게 걸쳐 있다.  처음에는 목사가 되기 위해 바젤대학에서 신학과 히브리어를 공부하였으나, 베르누이 형제의 소개로 상트페테르부르크 학사원의 의학부에 이어 수학부에 적을 두었다.

 

   1740년 베를린으로 이주한 후 24년간 베를린 학사원의 수학부장으로서 연구에 몰두하였으나 1766년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돌아왔다.

 

   후에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되었으나 천부적인 기억력과 강인한 정신력으로 연구를 계속하였다.  수학자로서의 연구를 시작한 시기에는 해석기하학, 미적분학의 개념은 갖추어져 있었으나 조직적 연구는 초보 단계로 특히 역학, 기하학의 분야는 충분한 체계가 서 있지 않았다.  이러한 미적분학을 발전시켜 [무한해석 개론], [미분학 원리], [적분학 원리]를 저술하였고 변분학 (극대 또는 극소의 성질을 가진 곡선을 발견하는 방법)을 창시하여 역학을 해석적으로 풀이하였다.

 

   이 밖에도 대수학, 정수론, 기하학 등 여러 방면에 걸쳐 큰 업적을 남겼다.  그 중에도 삼각함수의 생략 기호(sin, cos, tan)의 창안이나 '오일러의 정리' 등은 널리 알려져 있다.

   또, 베를린 시대에 프리드리히대왕의 질녀에게 자연과학을 가르치기 위해 쓴 [독일 왕녀에게 보내느 편지]는 당시 계몽시로서 유명하였으며, 7개 국어로 변역 출판되었다.

 

   1970년 영국의 생물리학자인 버나드 카츠 경과 미국의 생화학자인 줄리어스 액설로드와 함께 노벨 생리학, 의학상을 공동수상했는데, 이 3명의 학자는 모두 신경충격의 매커니즘을 독립적으로 연구한 공로를 인정받았다.  1953년 생리,의학분야의 노벨 위원회에 참가했고 1965~1975년 노벨 재단의 책임자였다.  오일러의 가장 뛰어난 업적은 교감신경계의 중요한 신경전달물진(충격전달체)인 놀에피네프린을 알아낸 것이다. 또한 놀에피네프린이 신경섬유 자체 안에 저장되어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벌견들은 액설로드가 신경활동에서 효소의 역할을 밝히는 데 기초가 되었다.

 

   노벨상 이외에도 오일러는 고혈압 및 동맥경화증과 관련된 연구로 스웨덴 북극성훈장과 스투퍼상을 받았다.

 

 

    < 관 련 공 식 >

 * 오일러의 공식

 모든 다면체에 대하여 다음이 성립한다.

(꼭지점의 수) - (모서리의 수) + (면의 수) = 2

 

 * 7개의 다리 문제

 독일의 쾨니히스베르크시의 프레겔강에 있는 7개의 다리를 건너는 '다리건너기문제'에서 힌트를 얻어 한붓그리기의 가능, 불가능를 조사하였다. 그는 이 조사에서 홀수점, 짝수점이라는 개념에 도달, 한붓그리기가 불가능한 도형의 전형을 보였다.

 

 * 수학 기호 표준화

    # 삼각함수의 기호    sin,cos, tan

    # 허수 기호     i

    #  함수 기호 f(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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