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무일푼에서 KFC 창업자로

조진영 |2006.07.10 14:32
조회 121 |추천 0
무일푼에서 KFC 창업자로
65세에 시작된 전설 ‘커넬 할랜드 샌더스’ ▲ KFC 창시자 "커넬 할랜드 샌더스"의 생전 모습 1950년 미국 어느 정신병원, 한 노인이 늦은 밤,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결심을 하고 남몰래 병원문을 나서면서 전설적인 이야기는 시작이 된다.

불우했던 시절

그의 이름은 할랜드였다. 1890년 미국 인디애나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6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꽤 어려운 삶을 산다. 생계를 꾸려나가야 했던 그의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러 나간 동안, 두 어린 동생들을 돌봐야 했던 7살의 할랜드에게 음식 만드는 법을 가르쳤다.

그리고 10살부터 농장에 취직하여 노동일을 시작했다. 한 달에 4달러를 벌기 위하여 하루에 14시간씩 새벽 4시부터 밤늦게까지 옥수수빵과 치즈로 허기를 채우며 일을 했다. 그의 어머니는 하나님을 믿는 경건한 사람이었지만 그가 12살이 되자, 재혼하여 가정을 떠났다. 그는 초등학교를 중퇴하여야만 했다.

어린 시절은 불행하였지만 강직한 성격의 할랜드는 청년이 되어 꿋꿋이 그의 삶을 개척해 나아갔다. 직업군인으로 쿠바에 파견되었다. 제대 후, 변호사의 꿈을 꾸기도 했던 그는 철도노동자, 보험설계사, 주유소 경영까지 모두 고된 일들이었지만 그의 강직하고 철저한 서비스 마인드로 열심히 살아갔다. 그는 아름다운 아내와 자녀도 얻게 되었다. 하지만 대공항과 함께 그의 나이 40세에 그는 무일푼이 되었다.

'샌더스 카페' 성공 그러나 계속되는 불운...

하지만 할랜드는 좌절하지 않고, 주유소 귀퉁이 작은 공간에서 어릴 적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조리법들로 직접 요리하여 배고픈 여행자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테이블 하나에 의자 여섯개로 시작한 카페은 입소문을 타고 크게 성공한다. 그리고 45세에는 켄터키 주지사로부터 커넬(colonel)이라는 명예대령 칭호도 받게 되어 이후로 ‘커넬 샌더스’로 불리어지며 마을 유명인사가 된다.

그는 카페로 번 돈으로 모텔을 지었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그의 레스토랑과 모텔은 화재로 모두 전소되고 만다. 그 후 그는 그 자리에 142석의 대규모 레스토랑을 다시 지었다. 하지만 국가 도로사업계획으로 1년도 안되어 헐값에 레스토랑을 처분해야 했다. 아무리 재기하려고 수없이 오뚝이처럼 일어서봤지만 은퇴한 그에게 남은 것은 거듭된 실패로 인한 빚더미뿐이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사랑하던 아들을 잃게 되고, 그의 아내마저 그를 떠난다.

그렇게 커넬 샌더스는 그의 나이 60세에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잃은 충격과 엄습하는 좌절 그리고 절망으로 정신적 고통을 겪게 되었고, 결국 정신병원에 입원하고 말았다. 모든 것이 야속하고 미워졌다. 늘 자신의 평탄하지 못 했던 삶에 대하여 “주님께서 나를 이 땅에 살려 두시는 것은 나를 사용하시거나 아니면 나를 벌주시기 위해서이다.”라고 말해왔던 그는 마침내 하나님과 자기 자신까지 미워하게 되었고 스스로 비관하여 목숨을 끊기로 작정한다.

밤이 오기를 기다렸던 커넬 샌더스는 늦은 밤이 되자, 아무도 몰래 병원 문을 나섰다. 어떻게 하면 부질없는 목숨을 끊을 수 있을까 궁리하며 밤거리를 배외하던 그때, 그의 귓전에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찬송가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소리를 따라서 자신도 모르게 작은 예배당으로 이끌려 갔더니 한 늙은 부인이 혼자 앉아 찬송을 부르고 있었다. 이 모습을 보는 순간 그의 마음은 뜨거워졌다. 그리고 그 부인과 같이 기도하다가 통곡하기 시작했다. 한참 울며 회개하고, 기도하고 나니 마음이 평안해짐을 느끼기 시작했다. 힘이 생겼다. 자살하려던 생각과 근심, 걱정, 염려, 미움이 모두 사라졌다.

무일푼에서 KFC 창업자로

그날 밤, 기도 중에 정신병이 다 낫는 체험을 한 뒤, 커넬 샌더스는 무슨 일이든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다. 나이도 많고, 돈도 없고, 오라는 곳도 없었으나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65세의 그는 처음으로 받은 사회보장기금 105달러를 갖고, 자신만이 가진 달란트, 닭튀김 비법을 설파하기로 결심하고 자기의 중고 포드 승용차에 압력솥을 싣고 전국을 다니면서 그의 조리법을 소개하러 다니기 시작했다. 무려 1008번의 퇴짜를 맞고서야 결국 옛 친구 피터 허먼의 레스토랑과 치킨 한 조각에 4센트씩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첫 계약을 성사시킨다. 치킨은 대성공을 거두었고 피터 허먼은 얼마 후 200개의 점포를 운영하게 되었고, 커넬 샌더스 또한 꾸준히 승용차 방문 영업을 통해 프랜차이즈점을 폭발적으로 늘려갔다. 그리고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Kentucky Fried Chicken)이라는 이름을 제안했다. 현재 KFC는 세계 약 80여 개국, 1만3,300점이 넘는 매장을 구축하는 유례없는 레스토랑이 되었다.

하나님의 준비된 사람, 커넬 샌더스

커넬 샌더스는 75세에 다른 사람에게 회사의 운영을 넘기고 남은 평생을 구제와 복음전파를 위해 살기로 결심한다. 그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목적을 위해 그를 오랜 기간 연단하시고, 여러 번에 걸쳐 그의 목숨을 구해 주셨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경험과 재산을 사용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를 어떻게 구원하셨는지 그 사실을 간증하며 남은 여생을 보냈다.

“사람들이 나에 대해 뭐라고 얘기하는지 아십니까? '그 사람은 갑자기 부자가 됐어.'라고들 하는데요, 글쎄요. 하지만 이제 저는 아주 가난한 사람이 되는 길로 돌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그는 수많은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많이 주었다. 물론 담배 피우거나 술 마시는 청소년들에게는 한 푼의 장학금도 주지 않았다. 모든 생애 동안 커넬 샌더스는 고상함과 예의 바름, 근면과 성실, 애국심, 높은 수준의 도덕적 기준을 갖고 살아가려고 애썼다.

“어릴 적 어머니와 동생들과 함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는 매주일 교회에 갔어요.  2마일 반이나 되는 길을 걸어야 했죠.” 이 영향인지, 그는 인디애나에 그의 경건했던 어머니를 기념하며 작은 시골 교회를 지었다. 커넬 샌더스는 교단에 상관없이 교회를 사랑했고, 어느 누구도 그보다 더 교회를 사랑한 사람이 없을 만큼 교회에 애착을 두고 있었다. 그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은 교회에 대한 그의 애정은 그의 비장의 음식 조리법보다 훨씬 더한 것이었다고 말해 주곤 한다.  

지금도 미국인들에게 커넬 샌더스는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함께 늦은 나이에도 꿈을 잃지 않고 노력하여 성공한 대표적 인물로써 소개되고, 존경 받고 있으며 특히 그의 간증은 국내에서도 여러 모양으로 회자되며 많은 성도들에게 희망과 감동을 주고 있다. 전세계 KFC매장 문 앞에 흰 양복에 지팡이를 팔에 걸치고 웃으며 서 있는 노신사 커넬 샌더스의 모습은 단순한 기업홍보의 수단을 넘어선 우리 모두의 삶의 희망인 것이다.

 

이분이 바로 그 KFC 할아부지시란 말이지..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