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 언니들 우리 애기들 소개해 줄게. 애기들 집합! 자… 반갑습니다!”
“반갑습니다! 1번 혁입니다.”
“반갑습니다! 2번 마당쇠입니다.”
“…반갑습니다! 3번… 하~안(한)서~석규입니다!”
“하하하하하 뭐야 아저씨? 어디 아파? 석규야? 퍽큐야? 하하하하하.”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어버렸다. ‘누나’들의 웃음 소리가 룸 안에 가득찼다. 얼굴이 시뻘게졌다. 함께 룸에 들어간 다른 남자 ‘도우미(접대부)’들도 들릴 듯 말 듯하게 키득거렸다. 다들 나만 쳐다보는데 딱히 다른 할말도 없었다. 룸에 들어가면 절대 고개를 숙이지 말라고 ‘마담 형’이 충고해줬는데 나도 모르게 고개가 숙여졌다.
밤 11시 30분, 첫 손님이 왔다. 30대 초반의 술집 마담들이었다. 손님이 오면 웨이터가 먼저 상을 차린다. 웨이터가 상을 차릴 때 누나들은 마담 형이랑 맥주를 주고 받으며 얘기를 한다.
잠시 후 초이스(Choice·여성들이 자신의 남성도우미 파트너를 정하는 과정)가 시작된다. 내가 간 업소에는 모두 11명의 남자 도우미가 있었다. 결근하는 ‘선배’들을 빼면 보통 9명 정도가 항상 대기 중이다. 초이스가 시작되면 도우미들은 룸 입구에 일렬로 줄을 서서 대기하고 있다가 3인 1조로 룸에 들어간다. 마담형이 누나들 옆에 서서 “반갑습니다!”라고 선창하면 룸에 들어간 도우미들은 “반갑습니다!”라고 크게 제창하고 자기 소개를 한다. 목소리는 굵고 또박또박 박력있게 해야 하고 손님을 노려보거나 고개를 숙이면 안 된다.
초이스를 받으려면 무엇보다 첫인상이 중요하다. 일단 좋은 옷과 구두를 신고 있어야 한다. 명품 시계나 목걸이를 차고 있으면 더욱 좋다. 손님들은 ‘깐깐해서’ 짧은 시간 도우미들의 전부를 다 파악해낸다. 자기 소개가 끝나면 우리는 모두 정면을 주시하거나 손님들과 살짝 살짝 눈을 맞춘다. 나는 맨 땅에 망치로 박아놓은 나무토막처럼 꼿꼿이 서서 정면을 쳐다보고 있었다. 손님들의 예리한 눈길이 온몸에 꽂히는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감사합니다!”
우리 셋은 일단 룸에서 나왔고, 다른 조가 룸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몇 조가 들락거린 후 마담 형과 손님들은 한참 동안 깔깔거리며 술을 마셨다. 잠시 후 마담 형이 차례대로 번호를 불렀다.
“1번, 4번, 8번 들어와라! 맥주 시원한 거 좀더 갖고 와라!”
마담은 경상도 사투리를 심하게 쓰는 30대 초반의 남자였다. 마담은 덩치가 크고 생김새가 호리호리했다. 다른 도우미들 말에 따르면 “마담 형은 젊었을 때 진짜 잘 나가던 선수였다”고 한다. 화류계에서 인맥이 좋아 술집 여자 접대부들의 단체 회식 등 종종 ‘단체손님’도 유치한다고 했다. 여자손님 2명이 오면 양주(1병 20만원), 안주(10만원), 도우미 요금(1인당 7만원) 등 50∼60만원은 기본이다.
나와 함께 초이스가 안 된 도우미들은 2평 남짓한 ‘선수 대기실’에서 TV를 보며 다음 손님을 기다렸다. 환기도 되지 않는 비좁은 지하 골방에는 보통 여섯 명 정도의 도우미들이 모여 있다. 오래 일한 도우미들은 이 좁은 곳에서도 누워서 TV를 본다.
나는 한쪽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커피를 마시며 TV를 봤다. 서울 중구 신당동, 간판도 없는 불법 지하 ‘여성 전용 노래 주점’. 예전엔 ‘호빠’(호스트바·남자 접대부들이 여자 손님을 상대로 술 시중 하는 업소)라는 이름으로 통칭됐지만 지금은 ‘호빠’도 급에 따라 여러가지로 분화돼 ‘정빠’ ‘디빠’ ‘중빠’ ‘아빠방’ 등 복잡하다.
퀴퀴한 냄새가 진동하는 비좁은 골방에서 한창 일할 나이의 젊은이들이 포개어 앉아 있다는 사실에 나는 순간 우울해졌다. 어쩌면 이 나라의 젊은 미래가 2평 남짓한 골방에 갇혀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이스’ 안돼 헛물만
도우미들의 나이는 스물여덟 도우미가 ‘최고참’일 뿐 대부분 20대 중반이었다. 나는 나이가 좀 있어서인지 다른 도우미들이 대우를 좀 해 주는 편이었다. 나와 함께 오늘 첫 출근한 스무 살 민(가명)은 선배와 마담 형이 잔심부름을 많이 시켰다. 말을 시원시원하게 하는 민은 지방에서 학교를 다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퇴학당했다.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다 재수없는(맘에 들지 않는) 여자애 하나가 열 받게 하자 그대로 받아 버렸다”고 한다. 학교에서 퇴학당하고 민은 한동안 지방에서 방황하다 서울로 올라와 룸살롱 웨이터 생활을 시작했다. 매일 밤새 일하는 게 쉽지 않았지만 행패를 부리는 손님들을 대비해 룸마다 설치해 둔 카메라 모니터를 보는 일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남자 손님들이 너무 짖궂어서 힘들었어요. 서빙 들어가면 발로 엉덩이 걷어 차고, 같이 춤추자면서 술 먹이고… 그런 인간들이 노는 것도 더럽게 놀다 가요. 모니터 보면 완전히 ‘쌩 포르노’라니까요. 오히려 주먹(조직폭력배)들이 매너도 좋고 팁도 많이 주고 깨끗이 놀다 깨끗이 계산하고 가요.”
이틀째 출근하는 스물세 살 규(가명)는 방배동 ‘디빠(DJ Bar·스테이지가 있는 룸에서 남자 접대부가 여자 손님들을 접대하는 곳)’ 출신이다. 규는 서울에서 공고를 졸업했고 집안 얘기 하는 걸 꺼렸다. 규는 키가 크고 피부가 하얀 게 꼭 연예인 K를 닮았다. 규는 “방배동 일이 너무 힘들어서 신당동으로 옮겨왔다”고 말했다.
“신당동은 도우미를 괴롭히는 분위기는 아니에요. 여기는 그냥 나이 좀 많은 마담들이랑 술 마시고 노래 부르는 데예요.”
“규, 난 못 생겼다고 방배동 면접 떨어졌는데…. 거기가 돈 제일 많이 번다면서?”

“형, 거기 안 가길 잘 했어요. 너무 힘들어요. 몸도 힘들지만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았어요. 룸에 들어가면 여자들이 별 짓 다 시켜요. 지난 주에는 북창동 애들(북창동 단란주점 여성 접대부)인 것 같던데…. 룸에 들어가자마자 도우미들 바지를 다 벗으라고 하더니 테이블 위에 만원짜리를 한 30장 정도 뿌리더라고요. 자위해서 제일 먼저 사정한 사람한테 테이블 위에 있는 돈 다 주겠다고 해서…. 어휴, 죽는 줄 알았어요.”
대학가의 여름방학이 끝나고 요즘 방배동 ‘디빠’에는 남성 도우미들이 많이 빠져나갔다. 그래서 인터넷과 생활정보지에는 ‘선수 구함’ 광고가 많다.
광고를 보고 일단 물이 좋다는 방배동을 찾아서 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한번 만나보자는 말조차 듣지 못하고 퇴짜를 맞았다. 업소 관계자들은 내게 “키가 180이 안 돼?”라고 묻고는 “미안한데… 자네는 사이즈가 안 나올 것 같아. 딴 데 알아봐”라는 등 결국 여러가지 핑계로 받아주지 않았다.
급한 김에 인터넷에서 ‘선수 카페’를 찾아 브로커에게 이메일로 내 키와 몸무게, 사진을 보내 보았다. 그러나 “내가 뽑아줘도 아저씨는 초이스가 안 돼요. 돈 못 벌어요. 다른 일 알아보세요”라는 답장만 올 뿐 역시 허탕이었다. 이들은 키가 크고 하얗고 예쁘게 생긴 남자도우미를 원했다. 결국 찾아간 곳이 ‘물이 좀 안 좋다’는 신당동이다.
여성전용 노래주점은 ‘A급 선수’들이 많이 모여 있는 방배동이 가장 유명하다. 그 다음이 신당동, 종로, 보광동, 이태원, 길동 등지다. 방배동에는 ‘정빠’(가라오케가 있는 고급 호스트바)와 ‘디빠’가 모여 있고, 남자 손님은 받지 않는다. 다른 곳은 대부분 ‘중빠’(남자 손님과 여자 손님을 함께 받는 업소)라 게이들도 많이 찾는다.
신당동에 전화를 했더니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일이 처음이라고? 그럼 힘들 텐데… 어쨌든 면접 한 번 보러 와.”
그는 나의 키와 몸무게, 나이를 물어본 후에 면접 장소를 가르쳐 주었다. 양복에 빨간 넥타이를 매고, 단골 미용실에 가서 머리까지 하고 9월 7일 오후 5시 약속 장소로 갔다.
막 잠에서 깬 듯한 남성은 나를 위 아래로 한참 훑어보더니 “우리 가게 손님들은 나이가 좀 있으니까 너도 괜찮을 거야”라며 “오늘 밤 11시에 이 앞에 와서 전화해. 가게가 이 동네야”라고 했다.
처음 출근을 하니 덩치가 크고 험악하게 생긴 도우미 한 명이 먼저 나이를 물어봤다. 그는 생김새와 달리 예의가 무척 바른 스물다섯 살 석(가명)이었다.
석은 아예 학교를 안 다닌 것 같았다. 학교 얘기를 꺼내니 그는 웃기만 했다. 석은 “스무 살 때 이 일을 시작해 6개월 만에 1000만원을 벌어 스물한 살에 중형 승용차를 샀다”며 자랑했다. 그는 이태원, 방배동, 종로, 신당동 등 안 다녀 본 곳이 없었다.
“이태원이랑 종로에 있는 호빠는 전부 중빠예요. 돈 많은 아저씨들이 찾아와서 남자애들 데리고 놀아요. 2차 나가는 사람도 있어요.”
내가 혹시 2차를 나가보았냐고 석에게 조심스레 묻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 대답했다.
“저는 2차 나가서 정말 하진(관계를 맺진) 않았어요. 30만원 받고 2차 한 번 나갔었는데… 모텔 들어갔더니 아저씨가 자기 성기 만져달라, 그리고 애무랑 키스해달라. 한 1시간 있다 그냥 나왔어요. 아저씨들이랑 2차 나가는 애들 많아요. 돈이 크잖아요. 그 때(2001년) 저 한 달에 400만원 넘게 벌었어요.”
그는 내가 궁금해 하던 ‘돈 얘기’를 시원하게 풀어줬다.
“형이 일단 초이스돼서 룸에 들어가면 TC(Table Charge·테이블 봉사료)로 무조건 7만원 나와요. 그리고 ‘이빨’ 좀 잘 까면(손님 기분좋은 얘기 많이 해 주면) 팁 좀 더 받고요. 2차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는데… 미아리 포주들이나 아줌마들 오면 종종 2차도 나가요. 용돈 좀 챙겨줄 거예요.”
‘고객’과 눈 맞아 살림 차리기도
새벽 2시 반, 사장이 나왔다. 사장은 40대 초반의 남자였다. 사장은 화장을 하지는 않았지만 말투와 몸짓에서 ‘여장 남자’의 냄새가 났다. 그는 오자마자 도우미들의 식사를 챙겼다. 나는 다른 도우미들과 함께 테이블에 둘러 앉아 참치찌개와 볶은 멸치로 밥을 먹었다.
저녁을 먹으며 사장은 나긋나긋한 말투로 수다를 떨었다.
“야. 저번에 성규 그 녀석 벤츠 몰고 오는 여자애한테 ‘공사’쳤더라(도우미가 여자 손님과 눈이 맞아 업소를 떠나는 일). 그 녀석 만나기만 하면 아주 혼을 내 줘야지.”
남자 도우미 세계에서 ‘공사를 치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스무 살 민이 이 일을 시작한 것도 친한 친구가 ‘공사’를 잘 쳐서 화려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제 친구 방배동에서 일했는데요. 강남에서 큰 식당하는 아줌마한테 찍혀서 아줌마가 신천동에 오피스텔 잡아줬어요. 시계, 옷, 구두까지 전부 명품으로 다 사준대요. 요즘 거의 같이 살고 있다는 것 같은데... 하룻밤 잘 해주면(관계를 맺으면) 다음 날 밥상이 달라진대요. 요즘 그 친구 아무 일도 안 하고 돈만 쓰고 다니던데….”
‘공사’를 치다 걸리면 사장이 가게에서 내쫓는다. 도우미들은 철저히 ‘프리랜서’ 취급을 받는다. 담배도 가게에서 돈을 주고 사야 한다. 가게의 잡일이나 웨이터 일을 보지는 않지만 사장의 명령에는 무조건 복종해야 한다. 사장이 ‘아빠방으로 가라’는 말은 ‘일을 그만 두라’는 말로 통한다. 아빠방은 이제는 퇴물이 된 30대, 40대 선수들이 일하는 곳으로 주고객이 ‘여장 남자’인 중빠다. 사장은 맘에 들지 않는 도우미가 있으면 “너 아빠방이나 가라. 여기 오지 말고”라고 협박하곤 한다.
한참 얘기를 주고 받는 사이 다시 손님이 왔다. 마담 형이 카운터에 있는 모니터를 보더니 갑자기 입구로 뛰어올라갔다. 내가 간 업소는 간판이 아예 없는 불법 영업소였다. 단속을 피하기 위해 입구는 눈에 잘 띄지 않는 곳에 위치한 철문이었고 입구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해 누가 문 앞에 서 있는지 카운터에서 모니터를 통해 다 알 수 있었다. 한쪽 룸에는 작은 비상구가 있었는데 단속이 오면 이곳으로 도망을 치는 것 같았다. 아침 6시, 7시에 손님이 다시 들어왔지만 나는 첫날, 그 다음 날까지 계속 초이스가 되질 않았다. 3일째 되는 날에는 눈을 질끈 감고 남자 손님들 앞에 서보기도 했지만 역시 초이스는 쉽지 않았다. 프로의 세계에서 준비 안 된 아마추어가 설 자리는 없었다.
경찰 “단속·처벌 쉽지 않아”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여성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한눈에 봐도 늘씬하게 생긴 여성들이 정장을 차려입고 방배동 카페 골목에 나타났다. 무전기 이어폰을 귀에 달고 있는 남자 호객꾼들이 여성들의 팔짱을 끼며 자신의 업소로 데려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여성들은 호객꾼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하고 뿌리치기도 하다가 결국 하나 둘 업소로 끌려들어갔다. 이곳에서 2년째 해물탕집을 운영하고 있는 한 여성은 “새벽만 되면 이 도로에 남자 삐끼(호객꾼)들이 쫙 깔리는데 경찰이 순찰을 돌 때면 다시 싹 없어져요”라고 했다. 종종 신고를 받고 경찰이 업소를 단속할 때도 있다. 방배본동 파출소의 한 경찰관은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일반음식점으로 위장한 유흥업소들은 지금 모두 단속됐는데 업소 안에서 퇴폐 영업을 하는 경우는 신고를 받고 출동할 수밖에 없는 입장입니다.”
성동지구대의 경찰관은 “퇴폐영업을 하는 호빠들이 대부분 은밀하게 영업하고 있기 때문에 단속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구대의 경찰관은 “윤락행위등방지법으로 호빠의 퇴폐영업을 단속할 수는 있는데 현장을 목격하지 않으면 처벌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방배동 카페골목의 호빠들은 경찰이 단속을 할 경우 입구에서 대기 중인 호객꾼이 무전으로 연락을 해준다. 이들은 무전 연락을 받는 즉시 입구를 걸어 잠그고 비상 탈출구를 이용해 손님들과 함께 도망을 친다. 이들의 비상 탈출구는 다른 일반 음식점들의 뒷문과 연결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이 비상구를 통해 도망을 쳐서 손님들과 함께 일반 음식점에 앉아 식사를 하는 척하면 경찰도 알면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들은 대부분 술에 취한 20대 초반의 여성들이었다. 방배동에서 3개월 간 일했던 규는 “손님들은 대부분 ‘빠순이(유흥업소 종업원)’들이거나 돈 많은 30대, 40대 아줌마들”이라고 했다. 남성 호객꾼들의 호객 행위는 아침 7시까지 계속됐다.
유흥비로 흥청망청 “빚 많아 업소 생활”
젊은 남자들이 이런 업소에 나오는 이유는 대부분 돈 때문이다. 스무 살 민은 “250만원짜리 시계, 60만원짜리 구두, 80만원짜리 커플링을 사고 친구들과 술을 마시느라 현재 빚이 700만원”이다. 스물세 살 규는 “강남 유명 나이트 클럽에서 하루 저녁 30만~40만원을 내고 술 마시고 노는 것을 좋아하는데 유흥비로 한 달 평균 300만원을 써서 현재 빚이 많다”며 “쉽게 빨리 돈을 버는 방법(남자 도우미)이라 다른 곳에서 일 하는 것이 쉽지 않다”고 했다.
마지막 날 퇴근을 하면서 업소 인근 식당에서 스무 살 민에게 아침으로 설렁탕을 사줬다.
저녁에 다른 도우미에게 전화를 걸어 “아무래도 여기가 맞지 않는 것 같아 다시 호프집으로 돌아간다”고 말하고 출근을 하지 않았다. 새벽에 민에게서 문자 메시지가 왔다. 얼굴도 잘 생기고,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중학교 때는 공부도 잘 했다는 민.
‘형. 다시 호프집에서 일한담서요. 일 잘 하고 돈 마니 버세요. 술 한잔 마시게 담에 한 번 배요.’
스무 살 민에게 달리 해줄 말이 없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민아. 배고플 때 연락하고 몸 건강하렴. 너무 힘들면 다른 일 찾아봐. 너는 뭘 해도 잘 할거야. 열심히 살고 꼭 성공하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