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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난도일]주홍색 연구-9. 유타 주의 꽃 .

이남희 |2006.07.16 23:02
조회 76 |추천 0

9. 유타 주의 꽃 .

 

몰몬교도의 무리는 믿음의 땅을 찾아 헤아릴 수 없는 고난과 역경을 견디고 참아 내며 미시시피 강을 돌아,

로키 산맥의 서쪽까지 나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유타 주의 풍요로운 평야가 눈 아래 펼쳐졌을 때 지도자 영이 말했다.

 

“이 땅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한 땅이며 이 땅은 영원히 우리들의 것이 되리라.”

 

그리고는 모든 사람들이 무릎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영은 종교적인 지도자였을 뿐 아니라 행정가로서도 뛰어난 인물이었다.

영은 미래의 도시를 계획하고 주변의 비옥한 땅을 각자의 신분에 맞게 분배해 주었다.

장사꾼은 가게를 열고, 대장장이는 대장간을, 양복장이는 양복점을 냈다.

이리하여 거리에는 하루가 다르게 건물이 들어차고 광장이 개설되는 등 마법의 나라처럼 도시가 형성되어 갔다.

한편, 시골에는 밭이 일구어지고 농사가 시작되었다.

그리하여 다음 해 여름에는 벌써 들마다 밀 이삭이 황금색 물결을 이루고 소 울음과 닭이 홰를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시 한복판에 터전을 잡은 교회는 해마다 보다 높고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 놓고 있었다.

존 페리어와 그의 양녀가 된 루시는, 그들 몰몬교도들의 기나긴 여행길을 끝까지 함께 했다.

어린 루시는 스탠거슨 장로의 마차에 태워져,

장로의 세 아내와 12살 된 아들과 함께 묵으며 여행을 계속했다.

루시는 어린애다운 명랑함 덕분에 어머니와 동생을 잃은 슬픔을 잊고,

곧 포장을 얹은 움직이는 집의 생활에 만족하게 되었다.

한편, 페리어는 기운을 되찾기가 무섭게 쓸모 있는 안내인으로서, 솜씨 있는 사냥꾼으로서 실력을 발휘했다.

그리하여 새로운 동료들 사이에서 두터운 신망을 얻었기에,

여행이 끝나 이 땅에 자리 잡게 되었을 때는 지도자 영을 비롯하여 스탠거슨, 캠벨, 존스턴, 드리버 등 네 명의 대장로를 빼놓고는 다른 사람들 못지않은 기름지고 넓은 땅을 나누어 받게 되었던 것이다.

 페리어는 그렇게 차지한 자기의 땅 위에, 스스로의 힘으로 튼튼한 통나무집을 세웠다.

페리어는 타고난 성실성과 강철과 같은 육체를 갖고 있었기에,

그의 농장은 해가 바뀔수록 번성했다.

그리고 12년 뒤에는 이 지방 솔트레이크 시티에서도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다.

그런데, 페리어에게는 동료 몰몬 교도들이 못마땅하게 하는 점이 꼭 하나 있었다.

그것은 페리어에게 그들의 관습에 따라 아내를 맞이하도록 설득했지만 끝내 외면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페리어는 자기가 아내를 마다하는 까닭을 결코 말하지도 않았다.

이 일에 대해서 누구는 페리어의 신앙심이 돈독하지 못한 탓이라고 했고,

누구는 페리어의 욕심이 지나쳐, 아내를 여럿 거느림으로서 써야 할 돈이 아까워 그런다고 넘겨짚기도 했다.

 하지만 그 밖의 일에서는 페리어가 나무랄 데 없는 독시한 몰몬 교도였기에,

차차 그러한 비난도 사그라져 갔다.

루시 페리어는 통나무집에서 무럭무럭 커갔다.

그리고 그 작은 손으로 양아버지를 위해 음식을 장만하고 접시를 닦았다.

그 동안 뒷산의 상쾌한 공기와 소나무의 향기로운 냄새가 이 소녀에게 유모와 어머니 역할을 해주었던 것이다.

한 해가 가고, 또 한해가 저물고, 해가 바뀔수록 루시의 키는 커지고, 아름다움은 더해 갔다.

 그리하여 페리어가 이 지방에서 손꼽히는 부자가 되었을 때 루시는 이 지방에서 누구보다도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해 있었다.

그 무렵 어느 따사로운 5월의 아침이었다.

 들에도 도시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가득 차 있었다. 먼지가 이는 신작로에는 무거운 짐을 실은 마차의 행렬이 서부로 서부로 이어지고 있었다.

그 까닭은 때마침 캘리포니아에서 금광이 발견되어, 황금에 운명을 건 사람들이 그리로 모여들기 때문이었다.

그들 뒤에는 먼 방목지에서 끌려오는 양과 소 떼와 여행에 지친 이주민들의 무리가 있었다.

이 혼잡 속을 루시가 발그레한 입술에 미소를 머금고, 긴 금발을 펄럭이며 날렵하게 말을 몰아 나가고 있었다.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시내에 나가는 길이었다.

긴 여행 탓에 온통 흙먼지로 뒤범벅이 된 이주민들이 눈부실 정도로 아름다운 말위의 루시를 감탄스런 눈으로 쳐다보았다.

루시가 시내 입구에 접어들었을 때 대여섯 명의 카우보이가 모는 소 떼가 길을 막고 있었다.

루시는 갈 길이 답답해지자, 소 사이로 말을 몰아 소 떼를 따돌리려고 했다.

 하지만 눈 깜짝할 사이에 소 떼에 갇혀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루시는 평상시에 익숙하게 소를 다루어 왔기에, 당황하지 않고 말을 몰아 나갔다.

그런데 운수 사납게도 한 마리의 소가 말의 아랫배를 세차게 건드려, 말이 날뛰기 시작했다.

말은 숨소리도 거칠게 힝힝거리며 뒷발로 일어서서 앞발을 휘젓는 등 금세라도 루시를 내동댕이칠 기세였다. 위험했다.

성난 말이 날뛸 때마다 소의 뿔이 와 닿았고 그럴수록 말은 발광을 더했다.

루시는 필사적으로 말안장에 매달렸다.

말 등에서 내동댕이쳐지는 날에는 소 떼의 발굽 아래 짓밟혀 죽을 게 뻔했다.

루시는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눈앞이 아찔하고 움켜잡은 고삐에선 힘이 빠지는 것이었다.

그리고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로 숨이 막힐 것 같았다.

그때, 힘찬 목소리가 귓전을 때렸다.

 

“뭣들 하는 거야!”

 

고개를 들고 바라보니 젊은이 하나가 소 떼를 헤집고 말을 몰아 돌진해 오고 있었다.

그리고 통나무처럼 굵은 그의 팔이 루시의 말고삐를 낚아채서는 침착하게 소 떼의 물결을 타면서 밖으로 끌고 나갔다.

울상이 된 루시를 안장에서 안아 내린 젊은이는 예의 바르게 말했다.

 

“아가씨, 다친 데는 없습니까?”

 

루시는 젊은이의 햇볕에 탄 검고도 엄숙한 얼굴을 보자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정말 혼났어요. 우리 집 말이 소 같은 것에 그렇게 겁먹을 줄 몰랐지 뭐예요.”

 

“그만하기를 천만다행입니다.”

 

남자는 후리후리하게 키가 컸다.

야성적이고 근엄한 얼굴에 서부의 모자를 눌러 쓰고 어깨에는 최신식 라이플 총을 메고 있었다.

 

“아가씨는 존 페리어 씨의 따님이시지요?

아까 페리어 씨의 농장에서 말을 타고 나오는 걸 봤습니다.

집에 돌아가시거든 아버님께 세인트루이스의 제퍼슨 호프 가문을 아시느냐고 여쭈어 보십시오.

만일, 그 때의 페리어 씨라면 우리 아버지를 아실 겁니다.”

 

루시는 갑자기 어른스러워지면서 나무라듯 말했다.

 

“어머? 직접 오셔서 여쭈어 볼 수는 없나요?”

 

호프라고 이름을 밝힌 젊은이는 루시의 말에 입이 벌어지며, 까만 눈에 기쁨이 감돌았다.

 

“그래도 되겠습니까?

나는 두 달 동안이나 산속에 틀어박혀있었던 터라, 숙녀의 집을 방문하기에는 꼴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 건 상관없어요.

이따가 세수나 하고 오세요. 아버지는 당연히 당신에게 감사의 말을 해야하니까요.

아버지는 나를 무척 애지중지 하시거든요.

내가 만일 이곳에서 소에게 밟혀 죽어보세요.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까지 눈물을 흘리실 거라고요.”

 

“나도 그럴 것 같습니다.”

 

 “어머, 왜 당신이?

당신에게는 그럴 이유가 있나요,

우리는 친구도 아닌데?”

 

호프는 이 말에 갑자기 풀이 죽었다.

루시가 소리 내어 웃었다.

 

“호호, 지금 그 말 농담이어요.

우린 이제 친구가 되었으니까, 꼭 우리 집에 오셔야 해요.

그럼 이만 가 봐야겠어요.

아버지 심부름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이제 밖에는 내보내지도 않으실 거예요. 안녕!”

 

“안녕!”

 

호프는 차양이 넓은 서부의 솜브레로 모자를 벗어서 흔들었다.

그리고는 루시와 반대 방향으로 말을 달려갔다.

 호프 청년은 동료들에게로 돌아가자, 사람이 달라진 것처럼 말수가 적어졌다.

그는 동료들과 네바다 산맥으로 은광을 찾아들어갔었는데,

찾아낸 광맥을 캐기 위한 준비를 갖추려고 솔트 레이크 시티로 왔던 것이다.

호프는 지금까지 동료들 중에서도 유달리 일에 열성적 이였으나, 이 뜻하지 않은 일로 인해서 온통 마음이 다른 방향으로 쏠리게 되었다.

 시에라 산의 산들바람처럼 밝고 아름다운 아가씨를 만나게 되자, 야성적인 젊음으로 가득 찬 그의 마음이 밑바닥부터 흔들리기 시작한 것이다.

광산의 일도 그 밖의 어떤 문제도 루시를 사랑하는 정열에 비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말았다.

호프는 그동안 손을 대는 일마다 끝까지 관철시켜서 성공을 거두어 왔다. 그래서 루시의 일도 반드시 성사시키고 말겠다고 다짐했다.

호프 청년은 그 날로 페리어 씨의 농장을 방문했고,

그 횟수는 차츰 늘어 이제 스스럼없이 드나들게 되었다.

페리어는 그럭저럭 10여년을 농장에 틀어박혀 농사일에만 열중했기에, 바깥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아는 것이 없었다.

그러나 호프 청년은 그런 것을 널리 알고 있었거니와, 이야기도 잘해서 페리어뿐만 아니라 루시도 그의 이야기에 관심을 갖고 귀를 기울였다.

호프는 탐험, 사냥, 목장 경영 등 두루 경험을 했고, 그 과정에서 피 끓는 많은 모험을 했던 것이다.

그런저런 이유로 해서 이제 나이 든 페리어는 호프가 마음에 들어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그럴 때 루시는 늘 입을 다물고 있었지만, 그 붉어지는 볼이나 밝고 행복해 보이는 눈을 보면, 그녀가 호프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했다.

고지식한 페리어는 아직 거기까지는 눈치를 채지 못하고 있었으나, 호프만은 자기가 루시의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완연히 느끼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호프가 말을 달려 농장 안으로 들어섰다.

루시가 달려 나갔다.

호프는 루시의 손을 잡고 사랑하는 여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루시, 이제 준비가 끝나 오늘 밤 안으로 떠나게 되었어.

이번에는 함께 가자고 말할 수 없지만,

 다음에 내가 오면 함께 갈 준비를 해놓고 기다려 줘야 해.”

 

루시는 얼굴을 붉히고 웃으며 물었다.

 

“그게 언제쯤이죠?”

 

 “늦어도 두 달이면 충분할거요.

그 때 당신을 데리러 내가 오겠어.

이제 우리 사 이를 가로막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아버지껜 말씀드렸다고 했지요?”

 

“응. 광산의 일이 마무리되면 우리의 결혼을 허락하시겠다고 하셨어. 요즘에야 눈치를 챘다고 하시더군.”

 

루시는 호프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으며 속삭였다.

 

“기뻐요.

당신과 아버지 사이에 그런 이야기가 있었다면 다됐네요. 기다리고 있겠어요.”

 

호프는 루시를 안고 입을 맞추었다.

 

“그만 가야지.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그리고 일행들이 골짜기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어.

안녕, 루시. 안녕. 두 달 뒤에 우리는 결혼할 거 야.”

 

호프는 몸을 돌려 말에 뛰어오르더니, 그대로 달려갔다.

루시는 그 뒷모습이 어둠 속에 잠겨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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