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가 추진중인 남해안 프로젝트에는 이순신 장군의 기념사업도 있다. 이를 위해 임진왜란 승전지가 있는 지자체들은 임난 당시의 이순신의 행적과 승전지에 대한 사료를 모으고 있다. 하지만 일부 향토사학자들은 증거나 사료를 제시하지 못한 채 무리한 억측으로 자신들의주장을 쏟아내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충무공의 탄생지인 건천동이 어디인지 아직 모른다는 우리의 사학계에 이어 고성지역의 향토사학자들은 언어도단, 견강부회로 충무공이 통탄할 적진포 당동만 일대설을 주장해 사실을 철저히 왜곡하는 일이 경남 고성에서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더우기 당동만이라 했다가 신용리라는 말도 나오고 있다. 이러한 사태를 부른 이순신 프로젝트 고성군 심의위원회와 고성향토사연구회는 해군교육사령부 유치를 위해 역사를 이용하는 지자체 편들기의 역사왜곡 책임을 지고 즉각 해산해야 한다.
적진포의 위치에 대한 세간의 분분한 논의에 대해 살펴보자. 1592년 원균, 이순신, 이억기 연합함대는 진해 고리량에 왜적이 집결해 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여수 전라좌수영에서 출발했다. 적진포 해전은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이 있은 그 다음날인 (선조 25) 음력 5월 8일에 발생했다.
전날의 여세를 몰아 조선 수군은 고성의 적진포에 정박 중이던 왜군 함대를 공격하여 모두 13척을 격침시켰다. 이순신의 1차 출정은 적진포 해전으로 마감하고 다시 본영으로 복귀한다. 이때에는 아직 거북선은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보통 음력 5월 7일의 옥포 해전과 합포 해전, 그리고 이 적진포 해전까지 합쳐서 옥포 해전으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적진포는 진해와 가까운 지역이어야 하는 것이다. 당동이 적진향으로 불렸다고 하나 오늘날의 지명과는 너무 동떨어져 억측에 가깝다.
또 당동은 큰 판옥선이 들어올수 없는 갯벌층을 갖고 있다.
가령 삼국유사에 보이는 포상팔국의 고사포는 고성과 그 음이 비슷하다. 이러한 점에서 적진포와 유사한 음이나 한자를 가진 곳을 찾아보면 광도면 적덕리와 동해면 내산리 적포만이 있다. 우리는 김일용의 임진난 적진포 해전(1995년 경상대 학위논문)과 유홍렬의 거류면 신용리 일대설은 모두 인용하지 않는다.
임진왜란 전사의 적진포(赤珍浦)는 경남 고성군 동해면 내산리 적포만(赤浦灣) 바로 그 곳 이다. 해양수산부가 발간한 라는 책의 동남해역 편에서 적포가 임진왜란 승전지인 赤珍浦라는 것을 학문적으로 뒷받침해 주고 있다.
따라서 이제 통영시 광도면 적덕면이라거나 고성군 거류면 신용리 일대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동해면 내산리 赤浦가 적진포라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역사는 통설이 지배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허구나 소수설은 배척해야 마땅하다. 지난 날 김일용 통영향토박물관관장은 원릉군 원균의 묘가 광도면 황리 춘원포에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기도 평택군에 소재한 원균장군의 묘가 경기도 지정 기념물 제 57호로 지정(1980)되었다. 심의위원회가 언급한 동국여지승람의 해석은 조선왕조실록에 적진포에 관한 기사는 없는 것으로 보아 자의적 해석에 가깝다. 이번 사태에 대해 이순신 프로젝트 고성군심의위원회와 고성향토사 연구회는 해체하고 사과해야 한다.
- 적진포에 관한 관련 자료는 네이버 블로그에 실어두었다.
http://blog.naver.com/krol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