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미셸 플라티니 (본명 : Michel Platini)
출생 : 1955년 6월 21일
신체 : 키 178cm
출생지 : 프랑스
경력 : 1984년 유럽 챔피언십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
1986년 멕시코 월드컵 프랑스 국가대표 선수
1988년 ~ 1992년 프랑스 국가대표팀 감독
수상 : 1985년 올해의 최우수 선수상
프로데뷔 : 1972년 AS 낭시 입단
포지션 : MF (미드필더)
- A매치 통산 : 72게임 / 41골(게임당 평균 0.57골) - 프랑스 최다골
- 유벤투스 통산 : 147게임 / 68골(게임당 평균 0.46골)
- 생애 통산 : 429게임 / 224골(게임당 평균 0.52골)
- 85/86 시즌 세리에 A(유벤투스) 우승
- 84/85 시즌 세리에 A(유벤투스) 득점왕(18골)
- 83/84 시준 세리에 A(유벤투스) 우승 및 득점왕(20골)
- 82/83 시즌 세리에 A(유벤투스) 득점왕(16골)
- 80/81 시즌 르 샹피오나(St-Ettiene) 우승
- 월드컵 참가 : 78아리헨티나월드컵, 82스페인월드컵, 86멕시코월드컵
- 1986년 멕시코월드컵 3위 및 2골
- 1982년 스페인월드컵 4위 및 2골
- 1978년 아리헨티나월드컵 1골
- 월드컵 14경기 1269분 출장 5골 기록
- 1984년 유럽선수권대회 우승 및 득점왕(9골), 벨기에戰, 유고戰 연속 해트트릭
- 3년 연속 European Footballer of the Year(Ballond'Or) "올해의 유럽선수상 수상" (83, 84, 85)
- 1985년 도요타 컵(유벤투스) 우승
- 1985년 유럽피언 컵(유벤투스) 우승
- 1984년 유럽피언 컵 위너스 컵(유벤투스) 우승
- 1984년 유럽피언 수퍼 컵(유벤투스) 우승
- 1983년 코파 이탈리아(유벤투스) 우승
플라티니 선수는 오케스트라의 지휘자처럼 화려한 몸짓과 유연한 터치로 그라운드를 사로잡는 필드의 사령관이었으며, 80년대 성가를 높인 '프랑스 아트사커'의 혼이었다.
'그라운드의 예술가'라는 별명으로 더 친숙한 플라티니는 프랑스 축구사에 있어 50년대의 라이몽 코파, 90년대의 지네딘 지단을 잇는 최고 미드필더의 가교 역할을 한다.
1958년 월드컵에서 13골로 득점왕에 올랐던 쥐스트 퐁텐느를 제외하곤 이렇다할 스트라이커가 없었던 프랑스 축구사에서 플라티니는 '어시스트의 천재' 코파와는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는 미드필더이면서도 현역 시절 A매치 72경기에서 무려 41골을 기록, 이부문 프랑스 최고 기록을 갖고 있고 유로84에서는 두번의 해트트릭을 포함해 9골을 터뜨리는 가공할 득점력을 발휘하며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82년 월드컵에서 프랑스의 핵심으로 활약한 뒤 유벤투스로 이적하면서 그의 축구 인생은 절정기를 맞아, 83년부터 3년 연속 유럽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면서 당시 남미 최고 선수였던 D.마라도나에 맞설만한 유일한 유럽의 자존심으로 인식되기도 했다.
3년 연속 유럽 최우수 선수상 수상은 70년대 J.크루이프에 이은 두번째 기록이며 아직까지도 이 두 선수 외에 이런 영광을 누린 이는 없다.
프랑스는 플레이메이커 미셸 플라티니의 화려한 지휘로 82, 86년 월드컵에서 연속 4강에 오르며 예술축구의 진수를 보여 줬다.
87년 은퇴할 때까지 유벤투스에서 147게임에 출전, 68골을 터뜨리며 세 차례나 득점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85년 유벤투스를 유럽챔피언스컵 우승으로 이끌었다. 또한 선수생활을 하는 동안에 총 429경기에 출장해 224골을 기록하였다.
1987년 현역에서 은퇴한 그는 한동안 야인 생활을 하다 1988년 12월, 계속되는 대표팀의 부진으로 앙리 미셸 감독이 사임하자 프랑스 국민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을 등에 업고 33세라는 젊은 나이로 대표팀 감독이 되었다.
그의 지도자로써의 능력이 발휘된 것은 유로92 예선전이었다. 프랑스는 스페인, 체코슬로바키아 등 난적들과 한조에 속했으나 8전전승이라는 대기록을 남기며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그는 프랑스인으로는 최초로 유럽선수권대회에 선수와 감독으로 출전한 인물이 됐다. 그러나 본선에서는 의외의 부진을 보이며 2무 1패로 탈락했고, 이 대회를 끝으로 플라티니는 축구장을 떠나게 된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의 월드컵 개최가 확정되자 대회 공동 조직위원장으로 선임되어 축구 행정가로의 제 3의 축구 인생을 시작했다. 선수로써의 풍부한 경험과 행정가적 소양이 더해진 그의 지휘 하에 98프랑스월드컵은 프랑스의 10개 도시에서 성공적으로 치러졌고, 대회 마지막날 프랑스가 우승컵까지 거머쥠으로써 프랑스인들에게는 영원히 잊지 못할 대회라 할 것이다.
90년대 중반 이후 세계 최고 선수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지단과 80년대의 영웅 플라티니를 비교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 능력에서는 플라티니가 약간 낫지만, 플라티니도 해내지 못한 월드컵 우승이라는 대업을 이룩한 지단의 능력이 프랑스에게는 더 큰 것이라 여겨진다.
그럼에도 지단이 플라티니를 우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프랑스인들에게 플라티니의 존재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알게 해 주는 대목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