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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남경덕 |2006.07.27 18:49
조회 16 |추천 0

 

* 실지로 피로함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요 피로하기 전부터 벌써 휴식을 구하는 사람들, 바다는 이러한 사람들의 위안이 되고 격려가 되는 것이다.

* 바다에는 대지에서 보는 인간 노작의 흔적도, 인간 생활의 흔적도 없다. 거기는 아무것도 머무르지 아니한다.

*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또 모두가 걷잡을 새 없이 지나간다. 배가 바다를 횡단한다. 그러나 배 지나간 자국은 어떻게도 신속히 사라지는 것인지!

* 바다의 위대한 순결은 여기서 온다. 그것은 대지에서는 도저히 구할 수가 없다. 굳은 땅은 조금만 헐려 하여도 괭이가 필요하나 바다의 맑은 물은 여기 비하여 훨씬 취약하다. 물 위에서는 어린애의 조그만 발도 명랑한 물소리를 낼 수 있고 깊은 이랑을 지을 수 있다. 물의 단일한 색조는 그 때문에 잠깐 깨어진다. 그러나 모든 파문은 다시 잠자고 바다는 천지가 창조되던 날의 정적으로 돌아간다.

* 바다의 푸른 길, 지상의 길에 비하면 훨씬 위험은 하나 훨씬 아름답고 불안하고 쓸쓸한 바다의 푸른 길에는 유혹을 느낄 것이다.

* 바다에 있어서는 모든 것이 훨씬 더 신비롭다. 인가도 나무도 보이지 아니하는 빈 바다의 들 위에 때때로 구름을 던져 놓는 커다란 그림자. 하늘의 조그만 마을. 어렴풋한 나뭇가지까지가 신비롭다.

* 밤새도 쉬지 아니하고, 우리의 불안한 생활에 안면을 허락하고, 모든 것이 소멸되지 않을 것을 약속해 주는 것의 매력을 바다는 가지고 있다. 바다는 불이 켜 있으면 고독을 알지 못하는 어린애의 양등과도 흡사하다.

* 바다와 하늘 사이에는 항상 색채의 조화가 있어 하늘의 색조의 미묘한 변화는 그냥 그대로 바다에 비친다. 낮에 태양 아래 반짝이던 바다는 저녁때가 되면 태양과 한가지로 죽는 것같이 보인다. 해가 지면 땅은 일시에 어두워지나 바다는 언제까지든지 애연하여 햇볕의 기억을 지니고 있다. 이것이 우울한 낙조, 잠깐 동안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마음이 황홀해진다. 기쁜 시각이다. 조금 있다 밤이 되어 하늘이 어두운 땅위에서 슬프게 우러러보일 때 바다는 아직 그윽한 빛을 발하고 있다. 어떤 신비로운 작용으로 그런지, 물결에 잠긴 태양의 어떤 화려한 유해로 말미암아 그런지 사람은 그것을 알지 못한다.

* 바다는 인간 생활을 연상시키지 아니하는 것이므로 우리의 사상도 신선하게 한다. 그리고 바다는 또 우리의 마음을 쾌활하게도 한다. 바다는 우리 마음과 한가지로 무한하고 무력한 동경, 끊임없는 실추로 단속되는 비약, 항상 변함이 없는 가벼운 탄식이기 때문이다.

* 바다는 음악과 같이 우리를 매료한다. 음악은 말과 같이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아니하고, 인간에 관하여 우리에게 이야기하는 것도 없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영(靈)의 충동을 모방한다. 그리고 우리 마음은 이 충동의 물결과 한가지로 혹은 높이 솟고 혹은 깊이 떨어짐으로써 자기의 멸망을 잊고 자기의 우수와 바다의 우수 사이의 내면적 조화 가운데 위안을 발견한다.

 

 

바다는 말하자면,

바다의 운명과 물상의 운명을 혼효하는 것이다.

 

 

-마르셀 프루스트, 이양하 역, 중 "바다 La M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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