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비원더(Stevie Wonder)
출 생 : 1950년 5월 13일
출생지 : 미국
본 명 : Steveland Judkins Hardaway
데뷔앨범 : 1963년 1집 앨범 [Fingertips]
데 뷔 곡 : I Just CalledTo Say I Love You Lately Part-Time Lover
최근앨범 : 2005-10-20 [A Time To Love]
수상내역 : 1989[로큰롤 명예의 전당 공연자 부문]
2006[제48회 미국 그래미 어워드 팝부문 최우수 보컬상]
선천적인 시각장애인으로 가수이자 작곡가, 악기연주가로 활동
한 마디의 말이 미래를 만듭니다.
스티비는 앞이 보이지 않습니다.
태여날 때, 엄마 뱃속에서 열 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일찍나온 스티비는 인큐베이터 안에서 자라다가
시력을 잃고 말았습니다.
흑인인데다가 앞도 보이지 않았던 스티비는 항상 '나는 못난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친구들도 스티비를 놀리기 일쑤였죠
"앞이 안보이는 장님 스티비!"
"스티비, 스티비. 밥은 어떻게 먹지? 그래도 스티비는 귀는 들린다네."
외톨이 스티비는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지도 몰랐습니다.
"나는 눈도 보이지 않아. 앞이 안보이는 나는 아무것도 할수 없을 거야"
스티비는 늘 이런 생각을 가졌습니다. 부정적인 생각은
스티비를 점점 소극적인 학생으로 만들었고
누구 앞에 나서는 것도 꺼리게 되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스티비는 교실에 조용히 앉아 있었습니다.
그저 선생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스티비의 학교생활이었습니다.
그런데 교실에서 조그만 소동이 벌어졌습니다.
생쥐 한 마리가 죠실에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어머! 쥐야. 난 몰라."
"저기, 저기. 잡아!"
아이들은 놀라서 책상 위로 올라가고 선생님은 빗자루를 들고
쥐를 쫓았습니다. 쥐는 모습을 감추었지만 아이들의 불안은 가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쥐는 교실에서 나간 것이 아니라 숨어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쥐의 '찍찍' 소리가 계속 들려왔습니다.
아이들과 선생님은 쥐를 찾아보려고 했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선생님은 스티비에게 말했습니다.
"스티비, 너는 다른 아이들보다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지 않니?
쥐가 어디에 있는지 네가 알려 줄 수 없겠니?"
선생님의 말에 스티비는 갑자기 자신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쥐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던 스티비는 쥐가 청소함 밑에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그래서 선생님과 아이들은 쥐를 몰아낼 수 있었습니다.
"스티비, 너는 누구보다도 뛰어난 청각을 가지고 있단다.
신은 너에게 눈을 멀게 했지만 뛰어난 청각을 주신거야."
스티비는 난생처음 칭찬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새로운 인생을 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스티비는 불과 12살의 나이에
가수가 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 소년이 뒷날 유명한 흑인 음악가이자
사회 운동가가 된 스티비 원더 입니다.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 본명 Steveland Hardaway Judkins)는 미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아티스트 중 한 명이자, 팝음악에서의 진정한 ‘천재성’이란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준 인물이다. 미국인들의 사랑 운운한 부분은 그가 평생 수확한 10여 개의 그래미 트로피와 수많은 넘버원 히트 싱글로 증명되며, 천재성에 관한 대목은 ‘Fingertips Pt. 2’가 넘버원에 올랐을 당시 그의 나이가 겨우 12세였다는 사실에서 기인한다. 게다가 흑인다운 선명한 아이덴티티를 갖고 있었음에도, 사실상 인종과 장르의 구분이 필요 없을 만큼 막강한 대중성을 겸비한 대(大)아티스트이기도 하다.
1950년에 태어났으나 인큐베이터에서의 산소부족으로 시력을 완전히 잃은 그는, 10세도 채 되기 전 피아노, 드럼, 하모니카 등의 악기를 능수능란하게 연주하며 타고난 음악적 센스를 과시하고 있었다. 모타운(Motown) 레이블은 그런 소년 스티비와 덜컥 계약을 맺었고, 1963년 모타운 역사상 최초의 넘버원 앨범인 [The 12 Year Old Genius]를 배출해내며 그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하였다. 바로 이 앨범과 싱글 ‘Fingertips Pt. 2’를 동시에 차트정상에 올리며 미국 전역에 한바탕 센세이션을 일으킨 스티비는, 그러나 이후 한동안 변성기를 겪느라 슬럼프에 빠지기도 했다.
스티비의 이름이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은 1965년 ‘Uptight’의 대히트가 계기가 되었다. 그후, 십대 후반의 스티비는 모타운 최고의 달러박스로 수년간 대활약을 하게 된다. 이 시기 그의 셀 수 없이 많은 히트곡들 중에는 ‘I Was Made To Love Her’, ‘For Once In My Life’, ‘Yester-Me, Yester-You, Yesterday’, ‘Signed, Sealed, Delivered I'm Yours’, 그리고 밥 딜런의 곡을 리메이크한 ‘Blowin' In The Wind’까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20대에 접어든 스티비는 이러한 히트 퍼레이드에 안주하지 않고, 진정한 '아티스트'로서의 자각을 시작하게 된다. 본인이 최초로 프로듀스한 앨범 [Where I'm Coming From]을 낸 후 한달만에 맞은 자신의 21세 생일날, 모타운과의 계약이 만료된 스티비는 이후 블랙 불(Black Bull)이라는 자체 레이블을 설립해 자신의 음악을 보다 자주적으로 컨트롤하게 된다. 이때부터 스티비의 음악에는 ‘작품’으로서의 향기가 더욱 두드러지게 되며, 강한 현실참여적 메시지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는 스티비로 하여금 [Music Of My Mind], [Talking Book], [Innervisions], [Fulfillingness' First Finale], [Songs In The Key Of Life] 등의 명반들을 연달아 쏟아내게끔 만드는 자양분으로 작용하였다.
이 앨범들은 하나같이 빌보드 앨범차트 10위권에 진입(그 중 2장은 1위에 오름)하며 스티비에게 명예와 부를 동시에 안기게 된다. ‘Superstition’, ‘You Are The Sunshine Of My Life’, ‘You Haven't Done Nothin’, ‘I Wish’, ‘Sir Duke’ 등의 넘버원 히트곡들도 바로 이 시기에 나왔으며, 그래미의 ‘Album Of The Year’, ‘Pop Male Vocal’, ‘R&B Male Vocal’ 등의 부문에 그의 이름이 단골로 호명되던 것도 이 즈음이다. 개인적으로는 교통사고로 목숨을 잃을 뻔할 정도의 중상을 입고 사랑했던 아내와 이혼하는 등의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뮤지션으로써의 스티비는 명실상부한 전성기를 누리고 있었다.
이 찬란한 기억을 1977년 베스트앨범 [Looking Back]으로 차분히 정리한 스티비는, 1980년대에도 [Hotter Than July], [The Woman In Red (OST)], [In Square Circle] 등의 스매시 히트 앨범들을 발표하며 식지 않는 인기를 누렸다. 또한 1982년에는 폴 매카트니(Paul McCartney)와의 조인트 ‘Ebony and Ivory’를 발표하며 큰 화제가 되기도 했으며, 1985년에는 디온 워윅(Dionne Warwick), 엘튼 존(Elton John),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와 함께 넘버원 싱글 ‘That's What Friends Are For’를 만들었고, 1986년에는 에티오피아 난민 돕기 프로젝트 ‘We Are The World’에 참여하는 등 바쁜 나날을 보냈다.
1990년대의 스티비는 인기의 최일선에서는 한발 비껴난 가운데 여유로운 음악활동을 수행했지만, 1995년 ‘For Your Love’, 1998년 ‘St. Louis Blues' 등으로 다시금 그래미 시상식장에 등장하며 굳건한 명성을 과시하였다. 1995년 내한공연을 가진 적도 있었으나, 안타깝게도 그 흥행은 극히 저조하였다.
9월중 국내 내한 계획이 잡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