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면..
의식은 점점 희미 해져 가는데
너는 자꾸만 뚜렸해진다
얼굴도 이젠 가물했었는데
유난히도 길던 속눈썹도,
투명 매니큐어 바른 깨끗이 정리된 손톱도,
자주 쓰던 이름 모르는 은은한 샴푸냄새도
섬세하게 나의 대뇌에 다시 진열된다.
구두는 225를 신고 운동화는 230을 신던
작은 발크기도,
옷을 살때면 55는 다소 작고 66은 조금컸던
그래서 쇼핑때면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애매한 사이즈도,
트윈케익 23호를 선물로 샀다가
하얀 얼굴이라서 13호를 써야 된다며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 주던 새침함도,
내 손을 잡을 때면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의 상처를 꼭 확인하던 버릇도,
통화중 다른 사람과 말을 하면
꼭 화를 내던 목소리도
어제 일처럼 가까워 섬뜩하다.
혈관들 속으로 돌고 있을 알콜을 따라
세포 하나 하나에서 너와 내 이성이 교환된다
마술 같은 되새김질에 놀라
술잔을 놓고 비틀거린다
이호철 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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