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커피는 문화가 됐다.
점심식사를 마친 직장인들이 밥값을 웃도는 커피를 마시기 위해 커피전문점 계산대 앞에 줄을 서고 있는 모습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으며, 지난 99년 스타벅스가 이화여대 앞에 1호점을 개설했을 당시만 해도 “자판기 커피도 맛이 좋은데 10배 이상의 돈을 주고 그 곳의 커피를 마셔야 하냐”며 주변을 타박한 이들도 지금은 자연스레 고가의 커피전문점에 드나들고 있다.
그렇게 문화가 된 커피를 둘러싸고 세계는 지금 윤리논쟁에 한창이다.
가장 최근의 논란은 1만1000개의 점포를 전 세계에 두고 있는 커피 체인 스타벅스가 고칼로리, 고지방 제품들로 소비자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며 미국의 한 소비자단체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미국의 소비자단체인 ‘공익과학센터(CSPI)’는 지난달 19일 스타벅스 제품이 비만과 심장질환 그리고 암을 유발할 수 있다면서 스타벅스 반대운동 방침을 밝혔다.
패스트푸드 업체인 KFC가 심장병 발병 위험을 높이는 전이지방을 사용한 사실을 숨겼다며 이와 관련해 법원에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한 바 있는 이 단체는 “스타벅스 제품은 패스트푸드만큼 건강에 해로운데도 건강식·세련미 등의 왜곡된 이미지로 포장돼 있다”면서 소비자들의 건강을 우려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판매하는 휘핑크림이 포함된 20온스(600㎖)짜리 대형 바나나모카 프라푸치노 커피의 열량과 포화지방이 720 칼로리, 11g에 이르며, 바나나 크림 크런치바 역시 630 칼로리의 열량과 25g의 포화지방을 함유하고 있다. 패스트푸드의 대명사인 맥도널드 빅맥 햄버거의 칼로리와 포화지방이 560 칼로리 11g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스타벅스가 소비자들에게 고칼로리, 고지방의 제품을 제공하고 있다는 지적은 무리한 게 아니다.
스타벅스는 이 같은 사실들을 홈페이지 및 매장 비치 선전물 등에서 밝히고 있다. 그러나 CSPI는 “매장 내 메뉴판에도 상품의 성분을 표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홈페이지 등에 제품의 성분 등을 기재한다 할지라도 대다수 고객은 매장 내 메뉴판에 정보가 기재돼 있지 않을 때 사실상 인지가 힘든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스타벅스 노조도 CSPI를 지원한다. 노조는 CSPI의 스타벅스 반대운동 방침이 발표된 직후 “직원들이 스타벅스에서 일하면서 살찌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전이지방(transfat)이 없고 건강에도 좋은 쇼트닝을 사용해야 한다”며 동조입장을 밝혔다.
이런 문제제기들에 스타벅스 대변인은 즉시 성명을 내고 고지방 제품을 대체할 대안들에 대해 적극적으로 연구하고 있으며, 우선적으로 계절상품들에 대해 올 가을까지 전이지방을 사용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커피 함유 영양성분? 직접 찾아봐”…스타벅스코리아, 성분공개에 미온적 태도
스타벅스코리아 측은 다소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향신문이 지난 7일 보도한 ‘묻지말고 마셔라, 스타벅스의 고(高)자세’ 기사에 따르면 스타벅스코리아 측은 “미국과 달리 동물성 기름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전이지방의 우려가 없다”면서도 영양성분 공개엔 부정적인 입장을 전하고 있다. 이들은 “영양성분이 궁금한 한국 소비자들은 미국 홈페이지를 찾으면 상세히 메뉴별로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상태다.
스타벅스코리아 측의 이런 태도는 지난 2004년 선댄스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모건스펄록 감독의 다큐멘터리 ‘슈퍼사이즈미’가 화제가 되면서 성분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패스트푸드 업체와 전세계 소비자ㆍ환경단체들이 지금까지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같은 해 한국판 ‘슈퍼사이즈미’ 실험을 통해 패스트푸드가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다시 한 번 확인한 이래 △패스트푸드 재료에 함유된 식품첨가물 성분공개 △어린이 시간대 패스트푸드 광고 TV방영 금지 등을 촉구하는 운동을 계속하고 있는 환경정의 다음을지키는사람들(다지사)의 박명숙 국장은 “어떤 성분이 함유돼 있는지 궁금하면 소비자들이 직접 찾아보라고 하는 것은 매우 오만한 태도”라고 문제를 제기했다.
박 국장은 “성분공개에 대한 법적 의무가 없기 때문에 업체들이 그 같은 태도를 보일 수 있는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정부가 이들에게 계속해서 강제하지 않을 경우, 업체들은 소비자 건강에 해로운 물질들을 사용한다 할지라도 법은 이를 감시하고 제어하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소비자의 알권리가 언제까지 암흑시대에 머물러 있어야 하냐”면서 “(업체들에게) 윤리를 강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국장은 또 스타벅스코리아가 미국과는 달리 동물성 기름을 사용하고 있다고 해서 자사의 제품들이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엔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선택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스타벅스 커피 등에 첨가할 수 있는 캐러멜, 바닐라시럽 등의 주재료가 되는 당의 성분 등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는 문제제기다. 마이클 제이콥슨 CSPI 사무총장도 지난 19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벅스 제품엔 설탕이 많고 칼로리도 높은데 이를 소비자에게 알리지 않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박 국장은 “시럽 등에 혹시라도 정백당이 사용됐고, 소비자들이 이 사실을 모른 채 즐겨 선택했다면 비만이나 당뇨 등의 위험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면서 “소비자를 생각하는 업체라면 성분공개는 너무도 당연히 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불공정한 무역, 커피 속에 빈국 농민의 눈물을 섞다
커피를 둘러싼 또 다른 윤리논쟁은 선진국과 저개발국 사이에서 이뤄지고 있는 무역에서 비롯한다.
커피 재배 농민들의 비참한 상황은 최근 널리 알려진 상태. 에티오피아, 우간다 등과 같은 저개발국의 커피 재배 농민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으면서 하루 종일 커피 재배에 매달려도 가난하기만 하다. 97년 이후 커피 원두 가격은 그 이전과 비교할 때 70% 이상 폭락하면서 농민들이 생산비용조차 제대로 회수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인 것이다.
이렇듯 농민들이 제대로 삶을 영위할 수 없을 만큼 커피 원두 가격이 폭락했음에도, 선진국의 카페에서 판매되는 커피 가격은 최근 몇 년 동안 전혀 하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커피업계는 승승장구, 계속해서 이익을 늘려왔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일까.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 팔리는 원두커피 1kg 당 소비자 가격은 평균 26.4달러(2만5천원 수준)이지만 농민들이 이만큼의 원두를 팔고 손에 쥐는 돈은 14센트(130원 수준)밖에 안된다. 97년까지만 해도 뉴욕상품거래소에서 파운드당 3달러에 원두커피가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폭락’이란 표현도 부족하단 생각이 들 정도다.
또 한 번의 질문, 도대체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시작은 98년 미국의 국제커피협정 탈퇴였다. 냉전시기 남미의 커피 재배 농민들이 가난을 이유로 공산주의자가 될까 우려하면서 미국은 국제커피기구가 62년에 커피 생산국 및 수입국들과 체결한 국제커피협정에 참여, 적극적인 지원에 나섰다. 전 세계 커피 생산량의 25%를 소비하는 미국의 참여는 1ha 미만의 소농이 전체의 70%를 차지하는 남미의 커피재배 농민들에게 안정적인 가격을 담보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미국은 구소련이 붕괴한 후 98년 끝내 협정을 탈퇴했고, 커피 값은 빠르게 균형을 잃기 시작했다.
이렇듯 수급균형이 깨진 상황에서 설상가상 베트남이 커피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90년 이후 100만 에이커의 북부 산간지대를 커피 경작지로 변화시킨 베트남은 90년 8만4000t에서 200년 95만t으로 커피 생산량을 늘렸고, 이로 인해 커피 공급량은 8%를 초과했고 가격 붕괴가 가속화됐다.
협정의 붕괴와 공급의 과잉 그리고 때맞춰 향상된 커피 블렌딩 기술을 이용, 커피회사들은 승승장구 수익을 올렸다. 반면, 커피 재배 농민들은 빈곤의 악순환 속에서 십년 가까이 허덕이고 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유럽과 미국 등에서 활동하는 글로벌 시민운동 단체들은 대안무역(alternative trade) 이른바 공정무역(fair trade)을 내놓고 있다. 저개발 국가의 커피 재배 농민들에게 경제 원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빈곤을 해결함과 동시에 지속가능한 미래를 담보할 수 있도록, 유통단계를 줄여 최소한 1달러26센트의 커피 원두 가격 수준이 유지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 같은 방식은 일견 경제논리에 어긋난 것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커피회사들이 플랜테이션(집단 대농장)을 통해 커피 원두를 조달해 오직 2%만을 생산 농민의 몫으로 돌려주는 현재의 방식을 떠나 생산자 직거래 방식을 채택할 경우, 저개발 국가의 생산자와 선진국의 소비자 모두에게 공정한 가격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게 공정무역론자들의 주장이다.
영국의 옥스팜(Oxfarm), 미국의 글로벌익스체인지(Global exchange) 등 공정무역단체들의 이 같은 주장이 십수년 째 계속되면서 전 세계의 소비자들도 조금씩 ‘윤리적 소비’에 대한 관심을 키워갔고, 공정무역 시장은 매년 40~50%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상황이 이쯤되자 커피회사들도 공정무역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99년 세계무역기구(WTO) 총회가 열린 시애틀에서 반(反)세계화 시위가 벌어졌을 당시 시위대의 주요 표적 중에 하나였던 스타벅스는 지난 2000년부터 커피원두 1파운드를 시장가격의 2배가량 높은 1.2달러에 구입하면서, 전체의 30%를 커피재배 농민들과의 직거래로 조달하기 시작했다. 스타벅스는 또 2007년까지 1년에 2억2500만 파운드의 커피원두를 사들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필립모리스, P&G, 사라 리 등과 더불어 미국의 4대 커피 회사로 꼽히고 있는 네슬레도 지난 2005년 공정무역에의 동참을 선언했다.
문화가 된 커피, 윤리와 함께 마시는 법은?
문제는 아직까지 공정무역에 참여하고 있는 커피 회사들의 비율이 높지 않다는 점과, 또 참여하고 있는 회사들의 공정무역 상품 역시 새로운 시장을 개발하기 위한 상업적 발상에 따른 것이라는 한계가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공정무역 시장이 확장되지 않을 경우 언제고 다시 과거 방식으로의 회귀가 가능하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공정무역단체들이 스타벅스와 같은 대규모 커피회사들에게 ‘그린워시(green wash; 환경친화적이지 않은 기업들이 이미지 메이킹을 통해 환경친화적 인상을 소비자들에게 줌으로써 시장을 확대해가는 것을 의미)’ 이미지를 주는데 일조하고 있는 게 아니냐”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실제로 지난 16일 MBC시사매거진2580에서 스타벅스의 커피가격에 대해 취재했던 박범수 기자는 iMBC뉴스와의 취재 후 인터뷰를 통해 “스타벅스는 자신들의 매장에 공정무역 커피를 취급하고 있다는 선전물을 비치하고 있지만, 막상 그 커피를 사려고 하자 살 수 없었다. 이는 공정무역에 대한 의지가 없음을 반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한계에 대한 해법으로 세계의 시민사회 일각에선 새로운 형태의 FTA를 고민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미FTA(자유무역협정) 2차 본협상이 한창이던 지난 12일 한미FTA저지범국민행동 주최로 열린 반(反)FTA 심포지엄에서 현재의 FTA를 치명적인(Fatal) 무역협정 그리고 불공정한(Unfair) 무역협정이라고 규정한 김제남 녹색연합 사무처장과 미국 반전단체 앤써(A.N.S.W.E.R)의 대표 브라이언 베커 씨는 새로운 FTA, 공정무역협정(Fair Trade Agreement)의 필요성을 조심스레 말했다.
한국언론정보학회 주최로 지난 12~13일 열린 심포지엄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한 영국 로프버러 대학의 그레엄 머독 교수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한국에 필요한 것은 자유무역협상이 아니라 공정무역협상”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자유무역은 역학관계가 동등한 위치의 국가 사이에서 가능한 것인 만큼, 지금 대다수 국가들에 필요한 건 공정무역 협상이라는 지적이다.
자유무역의 시대 불공정 거래의 대표 상품이면서도 하나의 문화로 자리한 커피를 윤리와 함께 마시는 방법, 윤리적 소비에 대한 소비자의 의지와 더불어 공정무역협상으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세계인의 고민이 필요한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