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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군신화'라는 말은 언제부터 사용되기 시작했나?

정지웅 |2006.08.13 10:57
조회 27 |추천 0

단군신화'라는 말이 이 세상에 나타난 것은 겨우 60년 정도 밖에 되

지 않았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왜곡·말살하기 위해 1922년 12월 이완

 

용, 이병도, 신석호, 최남선 등을 앞세워 조선총독부 산하에 '조선사

 

편수회'를 만든 다음, 1938년까지 본문만 35권이 되는 를 발간했는데, 이때 처음으로 '단군신화'라는 말이 등장하

 

게 된다. 그 이전에는 '단군신화'라는 말조차 없었던 것이다. 그 당

 

시 쌀 한 가마니가 10원 미만이었다고 하는데, 일제가 편

 

찬을 위해서 쓴 돈이 100만원 이상이었다고 한다. 즉 그 책을 쓰는

 

데 쌀을 10만 가마 이상을 썼다는 얘긴데, 그 많은 돈을 들여 가지고

 

우리 나라 역사를 식민사관에 입각해서 쓴 것이다. 그런데 우리 나

 

라는 1945년에 해방이 되었지만, 아직까지도 일제가 왜곡한 식민사

 

관에서 헤어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단군사화는 각자의 종

 

교관이나 민족관, 그리고 인생관 등에 따라 다른데, 일본의 역사학

 

자와 일제하에서 교육을 받은 국내 식민사학자와 배타적이고 편협

 

한 종교관을 가진 일부 기독교 단체는 배달국의 한웅천황이 곰이 변

 

한 여인과 결혼하여 단군을 낳았다는 것을 문자대로 해석하여 믿고

 

있다. 이들은 단군사화(檀君史話)를 그리스나 로마의 어느 신화처

 

럼 비사실적이고 즐거운 이야기 정도로 치부하면서 우리 민족의 건

 

국사를 왜곡하고 민족의 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들의 주장은 우

 

리 민족의 상고사를 축소하고 왜곡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자주성과

 

정통성을 말살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에서 '일웅일

 

호(一熊一虎)'로 표기한 것은 당시의 토테미즘 사상에 의하여 곰을

 

숭배하는 종족의 공주와 호랑이를 숭배한 종족의 공주를 상징적으

 

로 표현한 것이다. 그런데 일제는 단군을 신화로 조작하기 위하여

 

'일웅일호(一熊一虎)'를 '한 마리의 곰과 한 마리의 호랑'이라고 해

 

석하였으며, '웅녀(熊女)'를 '암콤'이라고 해석했다. 단군은 그 당시

 

부족을 다스리는 최고의 통치자를 지칭하는 것으로서 초대 단군조

 

선을 건국한 사람은 왕검이며, 단군조선의 마지막 단군은 고열가이

 

다. 단군 왕검에서 고열가까지 47대가 2,096년간 다스렸다. 그런데

 

일제는 단군을 한 분으로 축소했으며, 암콤이 사람으로 변했다고 조

 

작했다. 식민사관의 논리대로 해석을 한다고 해도 중국 순임금 시대

 

에 곰이 사람으로 변했다는 것은 너무나 비과학적인 발상이며, 더구

 

나 이러한 말을 곧이 듣는 것을 보면 정말로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1960년대, 월남전에 우리나라 군대를 월남에 보내면서 '맹호파월

 

(猛虎派越)'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직역하면 월남전에 호랑이를 파

 

견한 것이 된다. 여기서 '맹호(猛虎)'라는 것은 군부대의 강함을 상

 

징적으로 사용한 것이지 호랑이를 지칭하는 것이 아님을 삼척동자

 

라도 알 수 있는 일이다.

 

출처:한민족의 비밀과 사명    http://cafe.daum.net/mookt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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