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살 어느 봄이었다.
특종티비연예였나..임백천씨가진행하던..
신인 가수들이 나왔다.
처음엔 그룹이름이 눈에 안들어왔다.
뭐라고 하는지도 잘모르겠고..
다만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에 남는건
얇아 보이는 입을 꽉다문 하얀얼굴의 신인가수 모습.
긴장했는지 굳은채로 가타부타 말없이 서있던 작아보이던
소년같던 한 가수의 얼굴표정이 기억에 남았다...
1. 시작.
그러고서 2주정도 지났을까
짝이 쉬는 시간마다 뭐라고 뭐라고 중얼거렸다..-_-;;
참다 못해 조용히좀 하라그랬더니
서태지와 아이들 노래라고..'난 알아요'도 모르냐고 했다.
그래~ 모른다! 어쩔래..이러면서 옥신각신 하다보니
기억이 났다. 그 굳은 표정의 하얀얼굴의 신인가수...
다시 2주가 지날즈음해선 그 그룹의 노래는 우리반 최고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다.
처음 봤을때 그렇게 긴장해있던 사람은
무대위를 휘저으며 '난 알아요요요'를 외치며 방긋방긋 웃었다.
귀여웠다...와 예쁘다...춤 멋지다...
또 2주가 지날무렵엔 태지들의 노래는 전국을 강타했다.
굳이 스케줄 이런거 알 필요도 없었다.
채널만 돌려도 태지들이 나왔고
서태지 벙거지 모자..서태지 목걸이 형광잠바 형광티...
문방구에 쌓인 엽서, 아이들 필통을 뒤덮어버린 태지들 스티커..
92년은 태지들이 한반도를 집어삼켜먹은 해였던듯하다..
가슴에 손을 얹고서 생각컨데
나 역시 대다수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휩쓸려서.그 거대한 에너지에 휩쓸려서 태지들을 알게됬다.
왜 모든것이 무너지는데 환상속에 그대가 있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순 없었지만..(단순...무지의 극치..)
가요가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외워본적도 없던 난데
난생 처음 음반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또들었다.
친구가 녹음해준 테잎이라 락엔롤 댄스와 미싱은 들어있지도 않았다.
환상속에 그대를 편곡해서 부르고 너와함께한 시간속에서를부르고
이밤이 깊어가지만 뮤비를 찍었다.
요즘 공중전화 박스건으로 덧붙이자면
그 뮤비에 태지가 까페안으로 들어선다.
왜 가사에 있지 않은가..^^ 옛 생각에 까페 문을 열고~-.-;;
이유는 알수 없었지만 그냥..무지 좋았다.
쏟아져나오던 비디오들이 불법인줄도 몰랐고
그때나온 영상집이 태지 허락없이 나온건줄도 몰랐다.
그냥 나오니까 좋아서 사고 모았다.
태지가 초상권문제들로 힘들었다는것도 몰랐다...
하긴 아무것도 몰랐다.
1.5 200일
음반을 내기 위해 쉰다고 했다.
그게 가요계의 통상을 뒤집는 건지도 몰랐다.
그냥 오래 못본다고 하니 아쉽고 빨리 다시 나왔으면 했다.
ivy팬클럽 창단식이 겨울에 있었는데
어머니한테 졸랐다가 진짜 무지하게 혼만 났다.
목동 살때였는데 목동 아이스링크에 온다기에
그날 괜히 그주위를 뱅뱅 맴돌았다. 그때 가입비가
12000원이였던거 같다..그돈이 너무 절실했다.
어머니는 비디오나 잡지사는 거 이상 경계선을 넘으면
그냥 좋아하는것도 허락 안한다고 하셨다..어쩔수 없었다.
야쿠자 피살설과 해체설이 나왔던듯 하다..
느무느무 순진했던(바보같던) 난 스포츠신문에 전화를
걸어 떨리는 목소리로...
저기여..오빠들 진짜 해체해여?-_-;;; 지우고 싶은 기억이다..
2. 하여가
공교로게도 컴백쇼가 시험을 얼마 남겨두지 않을때 했다.
우리집은 시험 1주일전부터 티비를 절대 못보게 했기에
결국 그날 공부도 못하고 티비도 못봤다..
담날 학교를 가니 서태지가 이상해져서 돌아왔다고 난리가 났다.
옷하고 머리가 거/지/ 같다는거다..-_-;;;;; 아..왕 쇼크...
그래도 그당시에도 꿋꿋하던 열렬팬들은 뭐가 이상하냐고
태지 옹호하느라 정신없었다...
애들이 티비에서 나온 노래를 녹음해서 가져왔다.
'예이예이' 하고 '난 그냥 이대로 '말고 아무것도 들리질 않았다.ㅠ.ㅠ
녹음상태가 안좋은거 아니냐고 그랬더니
너무 빨라서 자기들도 모른다고 했다.
그래서 머리 맞데고 앨범도 안나온 그 노래 가사 파악한다고
쇼했다..제대로 파악한거 하나도 없었다...
태지는 이때부터 자기 팬들의 귀를 소머즈화 시켰다..
결국 레게머리와 귀걸이가 방송심의에 걸렸다.
태지들은 레게머리를 풀었다.
난 방송국에 졌다든가 그런 생각은 안들었다.
그저 방송에 다시 나올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진정한 오빠부대의 전형이었다..-_-;;;;)
중학교 올라간 기념으로 워크맨을 선물받아
태지들 나오는 라디오도 이때부터 들었다...
주위에 워낙 열렬팬들이 많아 ivy팬들 못지않게
회지며 자료며 스케줄 체크며 공유할수 있었다.
그래도 회원이 아니어서 생일날 사인들어간
선물 못 받은게 제일 눈물겨웠다.
팬들하고 캠프간거...눈물로 친구들 배웅했다..-_-;;;
태지가 밥떠줬다고 친구는 한달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때..이때 얻어먹었어야 했다..일평생 언제 그런 기회가 다시 오나)
주구장창 음반을 듣다가
어느날 방 창문을 보며 '마지막 축제'를 듣는데
갑자기 이렇게 좋은 노래를 들을 수 있다는게 너무 감사했다..--;;
'신비한 채로 가려져 있던~'이부분이였는데
태지가 등골이 오싹해질 정도로 신기하고 또 고마웠다.
이런 노래 만들어줘서...
지금 생각하면 되게 신기한(?^.^) 꽁트인지 드라마인지
많이 찍었는데 기억나는건 우주복입고 손흔들던거랑
(컴백 무대였나..무슨 화성으로 공연하러간다고.--;;
기타들고 빌딩앞에서 켈켈거리던 장면도 있었다.)
우리들만의 추억을 배경으로 백혈병걸린 팬(이재은 이었던가)
이야기 찍은거...1집때보단 덜했지만 재미난(--;;) 프로에 많이 나왔었다...
난 그때 태지가 초상권문제때문에 그렇게 힘들었는지 몰랐다.
표시 안냈으니까...그냥 싸운다는것만 알았다.
그냥 태지가 알아서 다 잘하는줄 알았다.
2집 음반 만들때 위염때문에 죽었다 살아났다는것도 몰랐다.
은퇴하고 나서 기자들이나 매니저들이 하는 얘기 듣고서야
알았다...그떄도 많이 힘들어했다는거..
신문에서는 태지더러 돈독 오른 아이돌스타라고 했다.
난 그때 태지가 가수 그만두고 기자들 한대 때리고 싶어했는지
진짜 몰랐다..-.-;;;
태지가 학 좋아한다는 발언을 하기 시작해서
친구가 7777마리 학접는다고 설쳐서 밤새 학접느라고
보낸 2집이였다..==;;; 말이 팬이지 태지한테 뭔 도움이 됬겠는가
마지막축제 콘서트 보면서
우리 다같이 멋진 어른이 되가자는
태지의 따뜻한 말에 우앙...이러면서 좋아만 하던 팬이였다.
너무 따뜻하고 행복하고 또 고맙고 그랬다.
웝빠만 줄기차게 불러데던 팬이였다.
2.5
8개월..
다시 기다렸다. 음반 발매일은 자꾸 늦춰졌다.
태지가 더 속이 탔는지 우리가 더 속이 탔는지는 모르나
그해 여름은 정말이지 살인적인 더위였고
난 어서어서 태지들 나오게 해달라고 비는 심정으로 여름을 났다.
사서함이 큰 힘이 됬었다. 친구들은 요요와 포트로 흩어져다.
어머니하고 또 한바탕했다.
어머니는 더더욱 강경해지셨다. 음반과 자료를 모두
내다버릴거라는 엄포앞에서야 난 고집을 꺾었다...
어머니는 팬클럽을 조직폭력배쯤으로 아셨다..--;;
3. 발해왕자
수능 100일전이고 광복절이기도 한 8월15일을 끼워서
컴백콘서트가 열렸다. 물론 난 어머니의 결사반대로
콘서트 문턱도 못가봤다. 갔다온 친구가 태지가 칠판을
뚫고 나왔다 그래서 차력쇼한지 알았다..-_-;;
3집은 7장의 음반중에 내귀에 가장 빨리 꽂힌 앨범이었다.
한트랙돌리고 두번째 들을때 넋이 나갔으니까...
침대옆에 걸터앉아 음악을 듣다보면 날이 밝곤했다.
누구에게나 인생의 영화처럼 인생의 음반이 있겠지.
한장을 굳이 뽑아야 한다면...난 3집을 꼽을 수 밖에 없다.
내겐 '어떤 답안지'가 바로 3집이였으니까...
좀 치사해도 하라는데로 얌전히만 따라준다면 가장 안전한
곳이 학교였던 나였다...
됐어! 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줄이야...
사람들은 피상적으로 태지가 교육문제를 다루네 어쩌네 했지만
내겐 이후에도 이전에도 있을수 없었던 화살과도 같은
외침이였다...그 외침이 그대로 가슴에 와 꽃혔다...
내 삶에 작은..그러나 정말 큰변화들의 출발점이였다.
3집에 대한 구구절절한 반응들과..--**
그 케비에스 컴백쇼 방영!!!!!
태지가 울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 피디는 태지에게 악감정이 있거나 혹은
난생 처음 프로를 맡아봤을것이다...
아니 단한번도 공연실황비됴를 본적이 없었던게 틀림없다.
그렇게 엉망인 방송은 '난 알아요'때도 없었다...
뭘 예감이나 했는지 태지는 눈병이 걸렸다.
그러게 제주도까지 가서 팬들과 악수하래~~
솔직히 발해왕자보다는 그때 초반에 입었던
청치마나 검은 모자같은게 더 자유스러워보였는데...
뭐가 어떤 순서로 일어났더라...
먼저 방송금지부터였지 싶다... 치마와 귀걸이가 문제였다.
태지는 2집때처럼 방송을 나갈 생각이 없었나보다..
굴복하지 않겠노라고 했다...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태지 나이 스물셋이였다...휴...
3위까지 올라갔던 발해를~은 소리소문도 없이 순위에서
사라졌고 3집때 태지들의 티비출연횟수는 10번을 넘지 않았다.
그중 2번이 뉴스였다....에휴..
사탄설(설은 무슨..--;;)이 터졌다..
하늘이 노랬다..밑도 끝도 없는 전쟁이였다.
연예가 중계는 비슷하게 들리네요~ 이러면서
거꾸로 돌린 테잎을 한마디 해명발언 없이 여과없이 내보냈고
주간연예지 표지는 '우리 사탄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