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지겨운 카니발 시간이 돌아왔다.
이것저것 준비할 것도 많고 해야할 일도 배로 늘어나기에
나는 그닥 반기지 않지만 마을의 전통 행사니까, 하는 마음에
감히 불평하지 못하고 묵묵히 끌려다니는 실정이다.
참 어른들도 대단하지. 어떻게 몇십년이나 이런걸 잘도 준비해서
똑같은 걸 보고 웃고 즐기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
나라면 10년만 봐도 질려서 혀를 내두를 텐데 말이다.
그러나 어쨌든, 카니발은 카니발인 것이다.
나의 개인적 기호따위와는 상관없이 일단은 준비해야 한다.
동네 할아버지까지도 부지런히 일하고 계시니까 말이지.
내 이름은 토마스. 아직도 팔팔할 스물 일곱의 청년이다.
스물 일곱이라 하면 왠지 나이가 들어 보이는데 나는 왠만한
스무살짜리들 보다 체력도 좋고 젊음이 넘친다. 아마도.
우리 마을에서는 내 나이가 딱 좋을 나이라고들 한다.
어리지도 늙지도 않아서 부지런히 일하고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미래를 기약하며 사랑할 나이라고.
근데
도무지 이 마을엔 여자다운 여자가 없다.
이런 사실을 어른들은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여기저기서
이여자, 저여자들을 잘도 갖다붙이시고들 있다.
"여어 토마스! 여기서 일하고 있었냐? 한참 찾았네!"
"엉? 니가 왜 나를 찾으러 다니냐? 예쁜 여자라도 봤냐?"
"넌 왜 생각이 늘 거기로 돌아가냐..어른들이 너 도와주라더라."
"내참 혼자서도 할 수 있구만. 너 정도의 도움은 필요없어."
"그러면서 매듭만 하루종일 묶고 있는거냐? 후후.."
"잡소리 그만하고 도와주려면 빨리 묶기나 해 이자식아."
카니발의 마지막 날에 사용할 무대를 고정시키는 중이었다.
근데 밧줄이 너무 굵어서 실은 쉽게 묶이지 않던 참이었는데
어른들이 어떻게 알고 저자식을 보내가지고는..
저녀석은 헨리. 나랑 동갑이긴 한데 아무리 봐도 어리다.
생각도 어리숙하고 행동도 어리버리한것이 또 기묘하게 어울려서
사실 저녀석의 나이는 나보다 한참 아래는 아닐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들게 하는 놈이다.
그래도 밧줄 하나만큼은 꼼꼼하게 잘 매는 것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재주 한가지씩은 타고 난다더니 헨리 저녀석은
아무래도 평생 밧줄이나 묶을 팔자인가 보다. 후후후.
장난이 심하긴 하지만 성격 자체는 원만하게 밝은 덕분에
여기 마을의 촌스러운 여자애들한테는 인기가 꽤 있는편이다.
스스로도 즐기는 듯 하고 싫어보이지 않으니
아마도 저녀석은 마을 여자중 한명과 결혼해서 살겠지 싶다.
나? 나는 다르다. 아무래도 여기서 계속 살기는 싫다.
매년 카니발을 하기도 귀찮고..여자들도 너무 촌스럽고..
아, 여자가 그렇게 중요한 이유는 아니라고. 단지 그뿐이지..
아무튼 나는 이곳이 아닌 다른곳에서 살아보고 싶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인정받고 싶기도 하고
뭔가 스스로 새로운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 같아서 좋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 어머니가 곡괭이를 들고 쫓아오시겠지만.
아아, 자유로운 영혼은 어딜가나 피곤하다.
이번 카니발이 끝나면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다녀와야지.
좀 더 넓은 세상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떠나기 위해서는.
내가 이렇게 밖으로 돌고 싶어하는 것은 마을이 싫어서가 아니다.
단지 한곳에 오래 머무르면 구식이 될 것만 같고
나 자신에게도 안좋지 않겠는가, 이런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실상, 이대로 하염없이 늙어 죽는게 억울하기도 하다. 하하.
우리 아버지도 머나먼 곳을 다녀오겠다고 배를 타고 나가셨다가
폭풍이 하도 몰아쳐서 결국에는 집으로 바로 돌아왔다고
어머니는 늘상 농담삼아 아버지를 놀리신다.
남자가 그렇게 용기와 배짱이 없어서 어디에 쓰겠냐고.
그래 남자는 역시 용기지! 아무래도 난 엄마 피를 받았나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