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about 나
그녀의 존재를 알게 된 그 때쯤,
나는 거의 유령 같은 존재였다.
유령?? 혹시 내가 "디아더스" 영화에 나오는 귀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진 않겠지?
유령이란 건, 발을 담그고 있는 소속이란게 없단 거다.
대학 3학년 때 휴학을 하고 군에 갔다와서
복학을 할까 아님 다른 일을 할까 궁리하다
집 앞 피씨방에서 소일거리 삼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던 나의 신세…
하기야 밤 새워가며 피씨방을 지키는 생활이야말로
유령의 생체리듬과 다름이 없긴 하지만…
10시 이후면 노땅인 척 하고 앉아있는 미성년자 가려내랴,
겜비 외상으로 달아달라 애원하는 백수 떨쳐내랴,
담배연기로 꽉 찬 공기 환기하려고 문 열고 닫고 열고 닫고 열고 닫고 하랴,
주인아저씨가 한 가마니씩 퍼붓는 잔소리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랴,
그렇게 내 생활은 피씨방에서 거의 썩듯이 하고 있었다.
어쨌건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살던 내게
그녀의 출현은 흑백의 내 생활에 한 줄기 칼라 같았고,
그러한 예민한 신경쓰임을 주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처음 시작은, 그녀에 대한 순수한 사랑 감정이 싹텄다기 보단,
아무 이상 없는 나의 피씨방 세상에 이상스런 모습으로 나타나
문득 나의 세계를 색다른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그 분위기에 내가 신경을 쓰기 시작한 것이고,
또 그 이상스런 분위기에 신경을 쓰다가,
그 분위기를 일으킨 그녀에게 신경을 쓰다가,
그녀에게 호기심을 가지다가,
자연스럽게 시선이 그녀한테 꽂히면서,
그렇게 시작된 것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렇게 하루하루 그녀를 지켜보는 나날이 시작되었다.
문을 삐그덕 열고 들어오는 그녀를 보며… : 오차도 없이 11시군.
화장실에서 나오는 그녀를 보며.... : 음, 나온지 2분이 된 걸 보니, 큰일(?)을 성공못했군.
구석자리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그녀를 보며… : 지금 뭐하고 있을까…
그녀의 자리에서 담배연기가 뿜어나오는 걸 보며.. : 무슨 담배를 피고 있을까.
새벽 2시쯤 일어나 계산하는 그녀를 보며… : 오늘도 결국 한 마디도 안하는군.
이렇게 말이다.
그러던 어느날,
그러니까 어떻게 좀더 그녀에 대해 알아볼 수 있을까 고민하던 어떤 날이었다.
의외로 그녀에게서 먼저 신호가 왔다.
To be continue…………..
4. 캔커피 사건
그날도 다른 날처럼, 저녁 11시가 되자, 그 여자가 삐걱 문을 열며 피씨방으로 들어왔다.
구석진 자기만의 자리로 가서 가방을 내려놓더니,
자판기로 가서 캔커피를 뽑는 것이었다.
그런데, 하나가 아니라 두 개를 뽑는 것이 아닌가..
오늘은 밤샐일이 있나.. 싶었는데.
자리로 돌아간 그녀가 3분도 안 되서 내게 다가 오는 것이었다.
한 손엔 캔커피를 들고…
"이거… 제가 방금 딴 건데, 미리 따놓은 게 있는 줄 몰랐어요…
다 못마실 것 같은데…드실래요..?"
아니, 이런 일이???
"아.. 예 고맙습니다…."
하고 얼결에 커피를 받았다. 이런, 이런 건 이 여자한테 안 어울리는 거 같아.
너무 정상적이잖아.
(아, 물론 그녀에게 특이한 걸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 그녀스럽지 않았다.)
커피를 건네주고 돌아가는 그 여자의 그 검은 코트 자락을 보며
그래도 마음 한 켠으로는
"그래, 저런 무뚝뚝한 여자에게도 다정한 구석이 분명히 있었어…"
하는 따뜻함이 밀려들었다.
한 모금 들이켰을 때, 심장까지 찡~~다가오는 그 짜릿한 따뜻함.
혹시… 그녀도 날 좋아하고 있는 건 아닐까?
갑자기 캔커피를 들고 있는 내 손이 미세한 떨림을 보이고 있었다.
어쩌면… 그녀가… 나의 시선을 알아챈 것일까…??
갑자기 목이 타고.. 긴장이 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가온 사랑의 감정을 어떻게 수습해야하지?
난 다시 커피를 꿀꺽꿀꺽 마셨다………………???
?
??
???
근데, 물만 나와야 할 캔에서…
뭔가 찝찝한 건더기가 걸리는 것이었다….
????
?????
그건 다름 아닌
담
배
꽁
초
였다!!!!!!!
담.배.꽁.초.
이것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원래 캔 안에 이게 들어있었던 걸까?
아니면, 그녀가 실수로 담배를 떨어놓고 모른 채 나를 준 걸까?
아니면, 그녀가 의도적으로 집어넣었단 말인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난 몰래 그녀 옆 자리를 닦는 척 하고
그녀의 행동을 살펴보았다.
그녀가 피는 담배를 보니, 타임 맨솔!!
분명 내가 마신 캔 속에 있던 담배는 타임 맨솔이었는데!!
그럼 그건 분명 그녀의 의도적인 행동??
지난 화장실 사건에 대한 의도적인 보복이란 말인가??
난 황당해서 그저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데…
모니터에 집중하며 담배를 피우던 그녀가 갑자기 재를 자기가 마시던 캔에 떠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곧 담배꽁초를 넣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조금 있다가 그 커피를 마시려고 캔을 입으로 가져가는 것이 아닌가!!
"잠깐만여!!!"
내 목소리에 그녀를 캔커피를 마시려다 말고 나를 바라보았다.
"거기에 꽁초 넣었잖아요!"
그러자 그녀는 캔커피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그제서야 캔커피 입구에 묻어있는 담뱃재를 확인한 듯,
얼굴을 찌푸렸다.
"…… 누가 여기에 떨었지…??"
.
.
.
.
이렇게 해서 알게 되었다.
그녀는 무척 집중력이 뛰어난 여자라는 걸.
난 그녀에게, 아까 내게 준 커피에도 꽁초가 들어있었다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정말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실수였다고 말했다.
이렇게 단 몇마디 뿐이었지만,
이 일은 싸움이 아닌 제대로 된 대화를 나누게 된 시작이었다.
어쨌건 그 캔커피 사건 이후, 난 그녀에 대해 용기를 가져보기로 맘을 먹었다.
순수한 맘으로 커피를 주는 그 마음에 일단 감동.
그리고 솔직하게 미안해 할 줄 아는 그 순진함에 이단 감동.
그리고 집중력 강한 그 정신력에 삼단 감동.
그리하여, 미미한 움직임을 시작했다.
그런데, 이 미미한 움직임으로 인하여,
드디어 난 그녀가 왜 피씨방에 오는지,
피씨방에서 무슨 게임을 하는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알게 된 것이다.
To be continue…………..